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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져, 나름의 삶의 방식-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을 찾도록 선고받은 불행한 동물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진다.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는 그 어떤 생명보다도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때로 나무나 꽃을 질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에 절망하게 되면, 뿌리를 박고자라 꽃 피고 햇빛 아래서 시드는 식물처럼 완벽한 무의식 속에살고 싶어진다. 대지의 생산 활동에 참가하고 싶어지고, 흘러가는 생명 속에 이름 없는 표현이 되고 싶어진다. 내 존재를 식물의 존재와 맞바꾸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P120
이상을 품고 역사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 현실에 내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 중대한 사실이다! 비극적 사실이다. 인간은 자연 질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극적인,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 질서 속에 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멀어질수록 존재의 극적 밀도가 약해진다. 인간은 비극과 고통의 독점권을 제멋대로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이란 까다롭고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현상의 경험을 끝까지 밀고 가보았으니까. 깊이 있게 그 경험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만이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은 아직도 인간이 되기를 지향한다. 그 이끌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의 단계를 겨우 벗어난 사람들이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것은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인간만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한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매일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 될 것이다. 번갈아가며 온갖 종류의 꽃들, 장미, 가시나무, 잡풀, 가지- P121
가 뒤틀린 열대 나무, 파도에 떠다니는 해초 아니면 산에서 자라 바람 따라 흔들리는 식물이 되겠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나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포식 동물, 철새나 텃새, 숲에 사는 야생 짐승이나 가축이 되고 싶다. 의식이 없는 야생 에너지의 모든 유형을 경험하고 싶다. 자연 영역 전체를 편력하고 싶고, 꾸밈없이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과정을 따르고 싶다. 새 둥지, 동굴, 인적 없는 산악지대, 바다, 언덕, 평원 속에서 얼마나 많은 모험을 할 수있을 것인가! 무궁무진한 생명의 형태와 식물의 생동감을 경험하는 우주적 도피는 다시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일깨워줄 수 있을 것이다. 동물과 인간은 서로 다르다. 동물은 동물 이외의 것이 될 수 없지만, 인간은 비인간, 다시 말해서 인간 이외의 것이될 수 있다. 거기에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비인간이다.- P122
순간을 온전하게 체험하고 그 매력에 빠져 들어가는 것, 이는시간을 무효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느끼는, 영원한 현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시간과 생성, 이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영원한 현재는 실존이다. 영원한 현재를 경험하면서 실존은 자명해지고 확실해진다. 순간의 연속에서 떨어져 나온 현재는 없음을 벗어나 존재를 생산한다. 순간의 기쁨 그리고 사물의 온전한 있음이 주는 매력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 순간 속에 살 수 있고, 현재를 빈틈없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사랑은 절대 순간에 도달하게 한다.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은 슬- P155
픔과 번민으로 방해받게 될 뿐 아니라 시간성을 극복하지 못하게된다. 우리 모두의 적인 시간, 그 시간에 전쟁을 선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P156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허용되고,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선택한 길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다른 길보다 가치 있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인가 실현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하나이다. 마치 소리를 지르거나 침묵하는 것이 결국 마찬가지이듯. 모든 것에 정당한 논리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논리도 없을수 있다. 모든 것이 현실적이며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동시에 비논리적이고, 화려하며 동시에 시시하다. 어떤 것이다른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으며, 어떤 생각이 다른 생각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왜 당신은 자신의 슬픔을 슬퍼하고, 기쁨을 기- P206
뻐하는가? 우리의 눈물이 쾌락에서 오든 고통에서 오든 무슨 상관인가? 당신의 불행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혐오하라. 모든것을 뒤섞고, 모든 것을 휘저어라. 바람에 흔들리는 눈송이가 되고, 파도에 흔들리는 꽃이 되라. 저항할 필요가 없을 때 저항하고, 저항해야 할 때 비겁해져라. 누가 알겠는가-당신이 이길는지. 당신이 진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세상에서 얻을 것이나잃을 것이 있겠는가? 얻는 것이 잃는 것이고, 잃는 것이 곧 얻는것이다. 왜 항상 분명한 태도와 명백한 사고, 사리에 맞는 말들만기대하는가? 내게 했던-한 적이 없었던-모든 질문들에 대한대답으로 불을 뿜어내야 한다고 느낀다.- P207
사람은 행복에 근접할수록 그만큼 아름다움에 민감해진다. 아름다움 속에서는 모든 것이 나름의 존재 이유와 균형 그리고 정당성을 갖는다. 아름다운 대상은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나 경치를 바라볼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외에는 다른 상상을 하지 못하고 몰입한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이 있어야 할 그대로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찬란하기만 하고 조화롭기만 하며,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그 매력과 광채를 강조하기만 할 뿐이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행복에 가까이 가도록 한다. 모순된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객관적 관점에- P211
서만 본다면 아름다움은-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매력이자 특성인데-하나의 역설을 제시한다. 즉 미적 현상 속에서는 ‘형상를 통하여 절대‘가 구현되고, 유한한 형상을 통하여 무한성이 구현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미적 감흥을 느끼는 사람만이 형상으로 구현된 유한한 표현으로 구체화된 절대성을간파할 수 있다. 미적 이외의 시각에서 유한한 형태로 표현된 절대성이란 ‘언어 형용 차원의 모순‘이다. 그러므로 모든 미적 이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상이 내재되어 있다. 심각한 것은 미적 이상의 기본 전제, 즉 세상이 마땅히 그래야 할 상태에 있다는것이 지극히 간단한 분석에서도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세상은 지금 상태만 제외하고, 어떻게든 다른 모습이 되었어야 했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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