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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에밀 시오랑&mil Michel Cioran 1911-1995

"언어를 바꾸면서 나는 내 인생의 한 시절과 결별했다." 모국어인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사유한 모든 것을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옮겨놓은 허무주의 철학자. 수필가.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불린다. 시오랑은 1911년 4월 8일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라시나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에 속해 있었는데, 아버지 에밀리안 시오랑은 조국이 헝가리화되는 데 대한 저항의 표시로 자식들에게 라틴어 이름을 지어주었다. 시오랑은 우수적 기질을 이미 드러내 보이긴 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다. 192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철학과에 입학한 시오랑은 불면증과 자살에 대한 충동에시달렸는데, 그는 당시의 자신에 대해, 끝없는 불면으로 기진맥진한 반항아였다고 회고한다. 니체나 쇼펜하우어에 심취했던 시오랑은 1934년 첫 작품인 ‘절망의 끝에서 Sur les cimes du désespoir』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원서명)를 출간, 신예 작가들에게 주는 루마니아 왕립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
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의 저서로는 「패자들의 애독서」, 『독설의 팡세』, 『존재의 유혹」, 「해체의 개설」, 『태어난다는 것의 불편함에 대하여』, 『고백과 저주」 등이 있다. 1987년 『고백과 저주』를 끝으로 절필했으며, 1995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시오랑은 문단과의 교류도, 인터뷰도 사양한 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생활했으며 두 차례 저명한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시대 유쾌한 절망의 대가"로 불리는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에는 죽음(자살), 슬픔, 절망, 무의미에 관한 아포리즘이 담겨 있다.- P-1
왜 우리는 자신 속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표현과형상을 찾아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버리려고 하는가?
왜 무질서하고 제멋대로인 과정을 체계화하려고 하는가? 객관화하려 하지 말고 우리 안에 뒤끓는 소란을 즐기면서 내면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 서로 다른 많은경험들이 뒤섞여 녹아들면, 밀물과 같은 혹은 절정의 음악 같은풍부한 정신적 떨림을 줄 것이다. 자만심과는 다르게, 나를 충만하게 느끼는 것, 내면의 무한대와 극도의 긴장을 이겨내는 것, 그것은 죽을 만큼 산다고 느낄 정도로 강렬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감정은 너무도 드물고 생경해서, 그것을 느낄 때는 소리를- P7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죽도록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나간 영혼의 과거가 무한한 긴장으로 퍼덕일 때가 있다. 파묻혀 있던 경험이 현재로 온전히 되살아올 때가 있다. 리듬이 획일성과 균형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때는 고통스러운 강박관념에 으레 따르는공포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죽음이 떠오르며 삶의 절정에서 추락한다. 행복의 극치에서 스치듯 강렬하게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랑을 막 느끼기 시작하는 불안한 순간에 사랑이 끝날 순간이나 버림받을 순간을 예감하는 연인들의심정과 같다.
그러한 경험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다. 왜냐하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억제하는 것은 더 이상 통제할 수없는 순간이 올 수 있기에 극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너무 가득 고이면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상태와 인간을괴롭히는 그 같은 집요한 생각들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이 될 수있다. 죽음에 대한 끈질기고 두려운 생각을 의식 속에 두면 인간은 파멸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 속의 무언가를 구해내- P8
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 속의 무언가를 잃기 때문이다. 서정성이란 자아를 분산시키는 충동이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서정은 깊은 내면의 것이고 농밀한 것이어서 그만큼 외부로 표출하려는 욕구가 절박하다. 고통스러울때, 사랑을 느낄 때, 인간이 서정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과 사랑이란 그 성질과 지향성은 다르지만, 존재의 아주 깊은곳, 즉 나의 중심으로부터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정적이 되는 것은 내면의 삶이 인간 본연의 리듬으로 진동할 때이다. 우리 각자가 유일하고 특별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주 선명하게 표현되어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편적인 차원으로 이행하게 된다. 저 깊은 곳에 있는 주관적 경험이 가장 생생한 이유는 삶의본질과 만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내면을 성찰하게 되면 사람은보편성으로 다가서게 된다. 반면, 본질의 주변에 멈추어 있는 사람은 보편성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들은 서정적인 것을 정신박약에서 오는 저질적 현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나의 가장깊고 생생한 내면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 서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 순간에만 서정적이 된다. 또 어떤 사람- P9
•들은 죽음을 맞는 고통의 순간, 지나간 시간이 되살아와 폭포처럼 덮치는 그 순간이 돼서야 비로소 서정적이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절박한 경험을 한 뒤 심층의 혼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서정적이 된다. 자기 자신이나 심층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객관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일지라도 일단 사랑에 빠지게 되면, 감정이 자신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온전한 원천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시를 쓴다는 사실은 개념적 사고가 내면의 동요를 표현하는 데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정은 비이성적이며 가변적인 표현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객관화할 수 있다. 자신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세상에는 또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 고통을 경험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주관성이라는 끝없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지대로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고통의 서정은 내면을 정화한다. 그 정화작용 속에서 상처는 내용물이라고는 없는 단순한 표출이 아니라•깊은 존재의 본질 자체와 교감한다. 서정이란 피와 살과 신경의노래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병들은 서정적 효과를 유발한다. 부끄러울 정도로 무감각한 사람들만이 병이 들어도 비인간적으로- P10
남아 있다. 병은 내적으로 심오하게 만든다.
사람은 몹시 힘든 신체적 괴로움을 겪고 나서야 진정으로 서정적이 된다. 외적 이유 때문에 돌발적으로 서정적이 되기도 하지만, 원인이 사라지면 서정은 함께 사라진다. 정신적으로 약간 미치지 않으면 서정적이 될 수 없다. 정신착란 초기 단계의 특징은 이성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신적 도취에 빠진다는 것이다. 정신병이 시작될 때 풍부한 시적 창작력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신착란은 서정의 절정인가? 서정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정신착란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서정성이란 형상이나 체계너머에 있다. 정신의 모든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집중되어 하나의 충동으로, 유연한 흐름으로 뒤섞여 완벽하고 밀도 높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프레임과 형상에 갇혀 모든 것을 위장하는 세련된 문화의 경직성과 비교하자면, 서정성은 야만적이다. 서정성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오로지 피와 진정성과 불꽃이라는 데에있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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