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니까
동그란 눈알과 동그란 입술이
나란히 벌어질 때까지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이 튀어나올 때까지
뺨이 번질 때까지
휘파람이 될 때까지
숲에서 바람이 새지 않을 때까지
구역을 잃어버릴 때까지
허공을 건너는
긴팔원숭이가 되어
떨어지는 꽃잎들을 받아먹을 것
꽃나무 옆에 게워낼 것
토사물의 울음소리가 될 것
0이 될 때까지 셀 것- P78
후렴
웅크린 채로 알게 되었죠
상자 속에 있었어요
빛은 언제 출발했는가- P88
사람은 탄생하라
우리의 심장을 풀어
발이 없는 새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하나의 돌은
바닥까지 내려온 허공이 되어 있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봄이 혼자 보낸 얼굴
새벽이 받아놓은 편지
흘러간 구름
정적의 존엄
앞에
우리의 흰 심장을 풀어- P133
꽃
손잡이의 목록
그림자를 품어 그림자 없는 그림자
침묵으로 덮여 그림자뿐인 그림자
울음이 나갈 수 있도록
울음으로 터지지 않도록
우리의 심장을 풀어
따뜻한 스웨터 한 벌을 짤 수는 없다
끓어오르는 문장이 다르다
멈추어 섰던 마디가 다르다
그러나 구석은 심장
구석은 격렬하게 열렬하게 뛴다
눈은 외진 곳에서 펑펑 쏟아진다
거기에서 심장이 푸른 아기들이 태어난다- P134
숨이 가쁜 아기들
이쁜 벼랑의 눈동자를 만들 수 있겠구나
눈동자가 된 심장이 있다
심장이 보는 세상이 어떠니
검은 것들이 허공을 뒤덮는다고 해서
세상이
어두워지지는 않는다
심장이 만드는 긴 행렬
더럽혀졌어
불태워졌어
깨끗해졌어
목소리들은 비좁다
우리의 심장을 풀어
비로소 첫눈- P135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허공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랑은 탄생하라
우리의 심장을 풀어 다시
우리의 심장
모두 다른 박동이 모여
하나의 심장
모두의 숨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심장
우리의 심장을 풀면
심장뿐인 새
*사람은 절망하라/사람은 탄생하라: 이상, 「선에 관한 각서 2」에서-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