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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설원에 생을 바친 사진작가. 진실되고 단정한 문장과 경이로운 사진들로 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을 기록하는 일에 일생을 보냈다.

1952년 출생.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후 탐험부에 가입했다. 헌책방 거리의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알래스카 사진집 한 권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시슈머레프라는 작은 마을의 항공사진에 마음을 빼앗긴 호시노 미치오는 1972년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시슈머레프 촌장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 4월, 마치 기적처럼 답장을받는다. 그해 여름, 그는 시슈머레프 마을을 찾아가 에스키모 가족과 생활하게 된다.

알래스카에서 석 달을 지낸 호시노 미치오는 자신의 인생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심한다. 일본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한 그는 2년 동안 사진을 배운 뒤, 1978년 알래스카대학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한다. 이후 알래스카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그곳의 자연과 야생동물, 사람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나간다.

해마다 그는 북극권의 툰드라지대를 향해 갔다.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경비행기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긴 고독의 시간을 담담히 견디며 카리부 떼를 기다렸다.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96년 8월 8일, 캄차카반도에서 T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취재에 동행하던 중, 쿠릴 호반에서 불곰에게 습격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알래스카의 강인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사랑했던 그는 툰드라의 식물에게 약간의 양분을 내어주며 흙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1986년 「그리즐리로 아니마 상을, 1990년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로 기무라 이해 사진상을, 1999년 일본사진협회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여행하는 나무』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등이 있다.- P-1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들이 은행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베란다에 앉아 9월의 가을바람을 맞고 있다. 쇠박새가 나무들 사이를 쓱 날아다니고, 아메리카 붉은 다람쥐가 등자나무 가지 위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고, 바람이 자작나무 잎을 사각사각흔들 때마다 아들은 세상으로 시선을 휙 돌린다. 그 순간 아이의 눈동자에서 벌써부터 부모의 존재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힘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 때문득 칼릴 지브란의 시가 생각난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인생 자체의 아들이며 딸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오지만 당신으로부터 온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줘도 되지만 당신의 생각을 주어선 안 된다. 그들의 마음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는, 꿈속에서도방문할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P11
언젠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커다란 혹이 생겨 울부짖는 아이를 앞에 두고 문득 생각한 것이 있다. 아프다고 우는 아이가 가여워서 가능하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이 아이의 아픔을 느낄 수 없다. 내가 부딪친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는 내 아이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 몸의 통증과 마음의 아픔은 다르다는 그런 뜻일까?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우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는 혼자서 살아가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부모라고 해도 아이 마음의 아픔까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않을까?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내내 지켜봐주는 것뿐이다. 그한계를 느낄 때 어쩐지 참을 수 없이 아이가 사랑스러워진다.- P13
급류는 고무보트를 점점 나무 밑으로 밀어넣었고 흰머리수리도 가만히 나를 내려다봤다. 날아갈까? 아니면 지나가게 해줄까? 나는 그저 멍하니 녀석을 바라봤다. 긴장감에 숨이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흰머리수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정말 이 순간 한순간을 살고 있다. 나 또한 먼 옛날의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고 있다. 한쌍의 수리와 내가 서로를 이해하는 기적 같은 시간. 지나가는지금이 가진 영원성.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의 심원함에 매료되었다. 강의 흐름은 나를 나무 바로 아래를 지나 빠져나가게 했고 흰머리수리는 날아가지 않았다.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이란 무엇일까? 문득생각해보니 내 경우에는 그것이 ‘자연‘이라는 말에 도달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다. ‘내면의 자연‘과의 만남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되찾는 것이다.- P16
앞으로 열흘이 지나면 동지다. 이 땅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날은 마음의 분기점이다. 앞으로 극복의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겠지만 태양이 그리는 포물선은 조금씩 넓어진다. 그리고사람들은 마음 어딘가에서 봄의 소재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오늘도 태양은 지평선에서 겨우 얼굴을 드러냈을 뿐이다. 지는 저녁 해가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잠시 동안 붉게 물들인다. 이윽고 어둠이 밀려오고 긴 밤이 시작된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백야보다 암흑으로 뒤덮이는 겨울에 더욱더 끌리는 이유는 태양을 사랑한다는 먼 기억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겨울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연약함을 슬며시 알려주는 것이다.- P17
그래서 지금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인디언 동포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교도소에 있는 인디언 청년들을 찾아가 정쟁의 길도 함께 걷는다. 그것은 전쟁 후 엉망이 된 그가 걸어간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윌리가 훌륭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자연스럽게, 저절로 우러나온 행위라는 점이었다.

이른 봄 어느 날 나는 윌리와 함께 남동알래스카의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넙치 철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옛날 클링귓족이 큰 나무 속을 파서 만든 카누를 타고 이 극의 바다에서 살았듯이 윌리도 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온 어부였다.
그날 우리는 엄청난 넙치 떼를 만난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풍어를 맞았다. 저녁 무렵에는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자정이 넘어도 생선 손질이 끝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하늘을 뒤덮듯이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너무 아름다워......"
윌리가 손질을 잠시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문득 중얼- P44
거렸다. 똑같은 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내가모르는 세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고기잡이에 나서기 전, 윌리는 작은 어선 위에서 으깬 약초를 바다 위에 살며시 뿌리며 이 바다에서 살았던 선조들의 영혼에게 기도를 올렸다.
"모든 것은 어딘가에 이어져 있어......"
언제나 농담만 하는 윌리의 눈빛이 깊어졌다.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에 그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남동알래스카의 태고의 숲, 유구한 시간을 아로새기는 빙하의 흐름, 여름이 되면 이 바다로 돌아오는 고래들......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자연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더욱 깊은 빛을 감추고 있다.
어머니 에스터도, 아들 윌리도 시대를 넘어 똑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사람은, 언제나 각자의 빛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의 도중일 것이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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