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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나는 늘 배수아가 어렵다.
단편 ‘눈먼 탐정‘이 대하소설만큼 오래 걸린다.

배수아의 낯선 소설들이 내내 환기시킨 것도 바로 이런 우리세계의 사정 아니었을까. 내러티브를 성립시키는 최소 조건, 예컨대 한 방향으로 linear 흐르는 시간이나 주체 대상 같은 구도에서 자유로운 그의 이야기들은 단지 요약되기를 원치 않는 소설의 완강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시공간이 동시적으로 한 프레임 안에 뒤섞이고, 엄밀하게 식별되지 않는 인물들이그려가는 장면은, 구획하고 정체화하는 온갖 지표가 부재하거나그것을 재배치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구두점을 찍거나단락을 구분하는 일에 기대지 않는 이 소설들은 비현실이나 초현실이 아니라, 일정하게 접힌 이 세계의 주름들을 하나하나 펼쳐낸 이미지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수아의 세계에 들어선 독자가 번번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필연이다. 재귀적 자기로 귀결되는 공감 같은 말은 여기서 부질없어진다. 배수아의 소설세계는 오히려 우리를 헤매게 한다. 소설 속 세계가 그러하듯 스스로가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들을 내어놓지 않고는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철저한 이방인 혹은 타인으로 경험한다. 익숙한 인식이나 감정의 회로를 이탈하며 헤매는일은 미지에의 모험에 근사하다. 그러하니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일(소유)이라기보다 자기(라고 여겨지는 것)를 내어놓고, 약간의 불안과 설렘을 감각하며낯선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보는 사건에 가깝다.- P227
하지만 그 모든 반복과 변주 속에서도 모든 만남과 작별은 처음과 같지 않은가. 우리는 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듯 만나고,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는 듯 헤어진다. 소설 속 ‘나‘가 뒤늦게 "최초의 작별"을 인지하며 울음을 멈출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순간들과 관련된 진실의 한 장면 아닐까. 소설 속 ‘편지‘란 어쩌면 이 영속적인 만남과 헤어짐 사이를 부유하는 심장박동이다. 그것은 나그네의 말처럼 당장 정확한 수신지에 닿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대신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어쨌든 오늘의 산책을 가능케 하고, 다시 계속 먼길을 갈 수 있게 한다. 편지에 쓰인 내용에 아랑곳없이, 걷다보면 무언가가 홀연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전모를 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감각하는 일인지 모른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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