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침
내가 우는 건 좀 하지
낮부터 저녁까지 일하다가
밤이 깊으면,
다 큰 어른이나 된듯
술병을 딴다
새벽에 잠들어 아침 늦게 일어난다
스물 때도 이랬는데
조금만 마시거라,
나무라기도 달래주기도 하던 말씀이
이젠 없고
어느 먼 곳이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눈을 감는다
늦은 아침이 어리고,
또 어리다
내가 한 눈물 하지- P112
노인이 온다
내장에 꽃이 피고 관절에 불꽃이 튀어요
노인이 되느라고
현인도 선인도 악인도 아니고
삐걱거리는 노인이 될 줄은
몰랐는데
눈사람처럼 우물거리다 고개 푹 꺾는
노인이 될 줄은
알고도 몰랐는데,
활처럼 휘고 못처럼 굽은
노인이 온다
흔해빠진 그 노인이라는 마지막
사람이 돼야 할 줄은
모르고도 알았지만,
뇌 속에 안개가 퍼지고 심장에 음악이 흘러요
기운 없고 정신없고 내일 없는
노인이 되려고,
너는 이제 새 세상이 왔는데도 결코- P109
해방되고 싶지 않은
해방 노예처럼
그 사람을 업고 다니고 품고 다니며
주인처럼 병아리처럼
눈물처럼 모셔라
노인과 살아라 버리지
말아주세요.
노인에게 빌어라
가장 오래 기다린 마지막 인생
마지막 연락,
첫 사람이 온다
원한 없고 인생 없고
노인도 없는
노인이 웃으며 온다
노인들이 사방에서 몰려온다
노인을 사랑하라- P110
원수를 기뻐하라
꽃처럼 불꽃처럼 타올라라
안개처럼 음악처럼
흘러가라- P111
강
예버덩문학의집 앞에 주천강이 흘렀다
나는 밤이면 강에 나갔고
어머니는 강 건너에 나타났다
나는 취해 강을 건너가다 빠지고
어머닌 강을 건너오다 사라져
안을 수 없었다 가으내,
주천강가에 예버덩문학의집이 흘렀다
물은 차고
목은 탔다
술 그만 마시라는 말씀이 달아서
들어드리지 못했다- P114
잎들은
등나무 긴 줄기에서 잎들이
늦었다고
더디다고
돋아난다
깨알만한 손톱만한 것들이
많이,
아주 많이
늦었다고
그러나 어느 봄 숲 여름 계곡에도
바쁜 잎들은 없네
등나무 마른 줄기에서 잎들이
빠르다며
이르다며
떨어진다
다 커서 더는 자라지 않는
시든 것들이,
이건 너무
금방이지 않느냐고
그러나 어느 가을 산 겨울 들판에도
게으른 잎들은 없네-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