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길 위에서

마음이 있을까. 어떻게 마음을 말할 수 있을까. "얼마나 옳은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는 마음은 어느 고개 너머에 있는것일까. 너머라는 말은 거창해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거창하지 않은 오해로부터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고개를 넘고 넘는다. 누구에게나 생활이 있다. 생활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정황들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너머에는 호명되지 않은 생활과 마음이 있다. 그곳에는 "같이 살기 싫던 마음"과 "같이 살게되던 마음이 동거하고 있다. 오해를 거듭하는 생활은 도처에놓여 있던 그림자의 그림자" 같은 마음들과 고개를 넘어가고있다. 먼저 생활하고 있다.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선생이라 부를 것이다. 그들은 고개 너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묻는 사람생활이라는 숭고한 일을 어떻게 바르게 오독할 수 있을지 받아 적는 사람일 것이다.
시인은 살다보니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나는 열심히 했다고 살 것 같던 마음을 오독했노라고 말할 테지만 읽고 있자니 "살 것만 같던 마음"이 "반짝이며 헤엄쳐" 범람하고 있었다고 되레 고백하고 싶어진다.
비로소 "살 것만 같던 마음"으로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을 하고 있는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라보고 있자니 숭고해진다고, 그 얼굴들을 사랑하지 않을 용기"가 도무지 없다고.
홍지호 시인- P-1
시인의 말


시 쓰는 시늉을 해온 것 같다. 시는 크고 나는 작다보니 별수가 없었다. 연인이었던 인연들을 인연인 연인들로 바꾸어모시려 한 것이 한 시절 내 시늉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가 조금씩 사라져간다고 느끼지만 이 봄에도 어느 바람결에나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많다. 온전해지고 싶어 험난하게 애쓰는, 그 모든 실성기를 사랑한다.

2024년 늦봄
이영광- P-1
평화식당


오래전에는 식당에 혼자 가면 미안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젊어서는, 식당에 혼자 가면 받는 홀대에 분개하는 인간으로 바뀌었고요 얼마나 옳았는지 몰라요 쉰이 넘자 다시, 식당에 혼자 오면 미안해지는 것으로 돌아왔습니다 벌레처럼요 얼마나 옳은지, 몰라요 얼마나 미안한지..…

기뻐하지 않기 위해 기뻐할 것
자랑하지 않기 위해 자랑할 것
옳지 않기 위해 옳을 것
옳음의 불구처럼 옳을 것

구가하지 않을 것

가난하지 않기 위해 가난할 것
분개하지 않기 위해 분개할 것
미안하지 않기 위해 미안할 것
미안의 불구처럼 미안할 것

구가를 구가하지 않을 것- P8
슬퍼하지 않기 위해 슬퍼할 것
살지 않기 위해 살아갈 것
죽지 않기 위해 죽을 것
죽음의 불구처럼 죽을 것- P9
강가에서


떠남과 머물이 한자리인
강물을 보며,
무언가를 따지고
누군가를 미워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나쁜 생각인 줄
모르고서
흘러도, 답답히 흐르지 않는
강을 보면서,
누군가를 따지고
무언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상하지 않고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란 걸
모르고서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서- P10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