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안에
잘라낸 뒤엔 모체 가까운 곳에 두세요
고무나무의 삽수를 설명하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밝다
물을 너무 자주 갈아주어도 안 됩니다
가지치기는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는 과정이에요
흠칫 놀라게 되는 말들이다
밝음을 신뢰하지만 밝기만 한 사람은 무섭다
난간에서 바닥으로
벽에서 창으로
주인은 나의 거처를 여러 번 옮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곁
홀로서기 좋은 위치를 궁리중이다
밤이 되면 독 안에 든 기분이 들 거야
그때까지 햇볕 이불을 충분히 덮어야 해
해결되지 않은 마음을 우후죽순 밀어올리는 계절,
봄이라 했다
태양과의 눈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여름 - P130
마른잎을 전리품처럼 매달았다, 가을
생장점이 닫히는 계절, 겨울
독 안에서
독 안에서
깨버리면 그만일 독이더라도
연두를 밀어올리려는 발걸음
당신은 나의 가지를 잘라 간다
무성하다는 뜻이다- P131
굉장한 삶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내려왔는데
발목을 삐끗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런 것이 신기하다
불행이 어디 쉬운 줄 아니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또 늦은 건 나다
하필 그때 크래커와 비스킷의 차이를 검색하느라
두 번의 여름을 흘려보냈다
사실은 비 오는 날만 골라 방류했다
다 들킬 거면서
정거장의 마음 같은 건 왜 궁금한지
지척과 기척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
장작을 태우면 장작이 탄다는 사실이 신기
해서
오래 불을 바라보던 저녁이 있다
그 불이 장작만 태웠더라면 좋았을걸
바람이 불을 돕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솥이 끓고
솥이 끓고- P144
세상 모든 펄펄의 리듬 앞에서
나는 자꾸 버스를 놓치는 사람이 된다
신비로워, 딱따구리의 부리
쌀을 세는 단위가 하필 ‘톨‘인 이유
잔물결이라는 말
솥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기를 신비로 바꿔 말하는 연습을 하며 솥을 지킨다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