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밀수, 결코 명예롭다 할 수 없는 사건으로, 통영에 와서는 유치장 그 어둡고 캄캄했던 기억, 부끄럽고 음침하고 처참했던곳, 살벌한 그곳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상의에게 오욕, 오욕 그 자체로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에 대하여 정다울 수없는 감정도 그 일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영이를위시하여 친한 친구들은 상의가 병적으로 예민하며 상처받기 쉬운성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상의에게 대하여 묘한 보호 심리 같은 것을 가지게 되는데 특히 진영이가 그러했다. 그것은 참 이상한 현상이다.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보호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의였으니까 말이다. 사카모토 선생은 상의를 다만 평범한 학생, 희미한 존재로 보고 있었다. 소심하고 온순하며 늘 선생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여 쩔쩔매는 학생으로만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밤 상의의 태도는 강심장인 학생도 감히 취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사카모토 선생이 경악하는것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었다. 방 안의 하급생까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간 2료에서 온, 원한 찬 패거리들이 은근히 사카모토 선생을 골탕먹이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간접적인 행동이었다. 결코 정면 대결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생으로서그 한계를 넘을 수도 없었다.
"리노이에상! 그 태도가 뭐냐? 그게 학생으로서 취하는 태도야! 고개 빳빳이 쳐들고 누굴 노려보는 거야!"
"그럼 선생님이 취하시는 태도는 어떤 것이지요? 떳떳하신가요?"- P54
얼마간 안정은 되었지만 상의는 자기 자신이 그 얼마나 망가졌는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치욕감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빌었다는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처음부터 죄책감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상의의 경우는 달랐다. 그들과함께 마룻바닥에 꿇어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더할 수 없는굴욕감이었다. 요와무시! 하고 내뱉던 사카모토 선생의 비아냥거림은 아직 귓가에 쟁쟁했고, 누구 누구가 왔느냐 하고 물었을 때도사카모토 선생은 상의가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잘못했다고 비록 빌지는 않았지만 꿇어앉았다는 자체가구차스런 일이었다. 그럴 바에야 뭣 땜에 따지고 반항을 했는가. 상의는 물론 퇴학당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떠나고 싶었다. -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