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치가 산골에서 처음 이 항구에 왔을 때, 이곳이 그에게는 경이로운 신천지였다. 항구 가득히 정박한 작은 배들과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장식한 어마어마하게 큰 윤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입항하는 광경이며 상점마다 물건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고 잡화상의 밤은 화려했으며 홍등가(紅燈街)의 불빛은 그 얼마나 매혹적이었던가.
그러나 몽치는 이내 그런 황홀감과 작별을 했다. 소금에 전 누더기를 입고 파도에 휩쓸리며, 파도가 오면 뒤로 나자빠지고 파도가 가면 앞으로 고꾸라지며 고기떼를 쫓아가는 배,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나뭇잎 같은 배, 어로 작업은 그야말로 혈투였으며 흥분의 도가니였다. 몽치는 생사를 건 것 같은 생생한 그 삶의 현장을 사랑했다. 수만 맹수들의 포효 같은 파도와 맞서는 것이 통쾌했다. 걸걸한 바다사내들의 목청이며 핏발선 눈동자, 힘줄 솟은 적동색 팔뚝이며 짧게 해치우는 대화, 욕설로 정을 주고 속담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내들, 누더기의 모습으로, 막걸리 한잔 국밥 한그릇 입가심하고 항구의 거리를 누비는 몽치였지만 그는 자꾸만 가슴이 커지는것을 느꼈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두려움은 산중, 바람소리밖에 없었던 아비 시체 곁에서 이미 다 겪어버렸다.- P286
산짐승의 울부짖음과 산 속에 있는 모든 생령(生)들의 그 가만가만 부르며 화답하는 숲속을 치닫고 벼랑을 타며 바람이 키웠고 햇빛이 보살핀 아이, 지감은 지식을 베풀었으며 해도사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주었다. 휘는 우의를, 영선은 누이 같은 사랑을주었다. 그렇게 예비된 육신과 영혼이 파도에 부딪치고 바다에 내던져지고, 나약하며 사악하고 선량하면서 노회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열정과 냉담, 온갖 특성의 인간들 속에서 몽치는 폭을넓히며 대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간신히 소주 한 병을 구한 몽치는 서문고개 언덕, 휘의 집으로 갔다. 빈집같이 집안이 조용했다. 안방은 깜깜했고 작은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P287
눈을 부릅뜨고 죽은 조준구의 형상은 끔찍했다.
몽치는 부릅뜬 조준구의 눈을 쓸어서 감겨주었다.
끔찍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기능, 존재했던 육체의 마지막 한오리 한방울까지 훑어내고 짜내버린 종말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고 머리끝이 치솟는 것 같은 공포감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연민을 느끼게 했다. 생명에 대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연민이었다. 호박덩이 같았던 두상은 쪼그라져서 조그맣게 돼 있었다. 몸도 줄어들어서 아주 작아져 있었다. 손가락은 모두 펴진 채, 그 다섯손가락은 갈고리처럼 굽어져 있었다. 3년을 넘게 병상에 있었는데 어쩌면 조준구의 마지막 일 년은 살아 있었다기보다 죽음을 살았는지 모른다. 죽은 후의 과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었으니 말이다. 시신을 씻을 때 욕창으로 탈저(脫疽)된 부분이 문적문적 떨어져나왔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의를 입히고 갈고리 같이 된 손가락을 펴고 두 팔을 가지런히 한 뒤 염포(殮布)로 묶고,
그러는 동안 몽치는 땀을 많이 흘렸다. 거들어주는 휘도 땀을 흘렸다. 염습을 끝내고 나왔을 때 별안간
"아이고 아이고오!"
머리를 푼 병수댁네가 들린 사람같이 곡성을 올렸다. 그 소리는 심야의 정적을 찢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곡성은 마치 한줄기 빛이되어 시공을 뚫고 저 머나먼 저승의 나라, 명부(冥府)의 캄캄한 삼도천까지 울리어 가고 있는 듯 이상하고도 이상한 귀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