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암에서는 늦게까지, 소지감이 영가를 위하여 목탁을 치며 지장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백골이 되어 돌아온 지난날의 동지, 아니친구,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친구일 수도 없었고 동지일 수도 없었던 이상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던 교류를 생각하면서 소지감은 목탁을 두드리고 독경을 하는 것이었다. 진보적 사회주의자였던 이종이범준, 그가 진주의 형평사운동에 가담하면서 동지가 된 송관수, 그 인연으로 하여 알게 된 송관수와 소지감, 살아온 역정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생리적으로도 친구가 될 수 없었으며 더더구나 동지도 될 수 없었던 사이, 그런 그들의 교류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민족의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운동권 밖에 있었던 소지감이 십여 년 전 군자금 강탈 사건에 미약하나마 가담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민족의 동질감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소지감이 산사람이 된 데는 해도사의 존재도 컸지만 송관수와의 만남이 무관하다 할 수 없고 삭발하고 가사 걸친 중으로 변신한 것에는 군자금 강탈 사건의 영향이 컸던 것을 부인 못한다. 소지감은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토록 긴 방랑, 그토록 깊은 고뇌를 끝내고 젊은 날입산한 일이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와 지금 목탁을 치고 있는 것이다. 소지감의 마음은 비통하지 않았다. 평화스러웠다. 소지감의 마음은 서글프고 쓸쓸하지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도 송관수를 위해서도 어딘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고 교류가 아닌 합류(合流)를 느끼는 것이다.- P145
강쇠가 어찌 그들 마음을 몰랐겠는가. 하루 이틀 사귄 사이도 아니요 십여 년을 산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처지, 신분의 차이라든지 식자유무 따위는 벌써 옛날에헐어버린 담이었다. 그것은 강쇠가 인간으로서 그릇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청춘을 다 바쳐 그림자같이 따라다녔던 김환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강쇠의 판단력, 사고의 깊이는 본래의 소박함, 우직을 능가했고 한 우두머리의 풍모를 엿볼 수 있어 결코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들의 노는 푼수가 그러했고 유독 오늘 밤 강쇠 비위를 긁은 것은 말하자면 참담한 일에대한 살풀이 같은 것이라 할까. 송관수의 죽음은 사실 죽음 그 이상의 의미로서 이들을 응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술잔을 메어치고 강쇠는 밖으로 나왔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무작정 걷는데 가슴이 타는 듯했다. 입속이 바싹 말라서 혀가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발에 익은 산길을 한참 지나서 개울가까지 온 강쇠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물을 굴컥컥 들이켠다. 손바닥으로 입가를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안간 중천에 떠 있는 서늘한 달이 슬렁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마치 밤바다에 떠 있는 차디찬 해파리처럼. 동시에 산기운이 싸! 하고 전신을 감싸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한기가 든다. 그러나 얼굴은 뜨거웠다. 목에서는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개울가에 있는 썩은 등걸나무에 걸터앉은 강쇠는 옷 앞자락을 끌어당겨 얼굴을 문질러본다.
‘다아 끝장난 기라. 끝장이 났어‘- P153
도솔암으로 돌아온 일행은 철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우두커니 서있다가 여자들과 안서방 짝쇠는 집으로 올라갔고 나머지 다섯 명의 사내들은 절방에 모여 앉았다.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시종 말이 없었던 영광이 호주머니 속에서 접은 봉투 하나를 꺼내었다.
"먼저, 이것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저씨."
봉투를 강쇠에게 건네주려 하자
"아저씨라니, 사돈어른이라 해야지."
해도사가 나무라듯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저씨믄 우떻고 아부지믄 우떻노. 괜찮다, 한데 이기이 멋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홍이형님한테 남긴 유서입니다."
"그래?"
언해는 겨우 해독하는 강쇠가 봉투 속에 든 것을 꺼내었다.
홍이 보아라. 내가 아무래도 심상찮은 병에 걸린 것 같다. 신경으로 돌아가자니 심상찮은 병 때문에 어러불 것 같고 가다가 죽어도 곤란한께, 아무튼지 만일을 생각해서 한자 적기로 했다. 자손한테 물리줄 전답 한때기 없는 처지에 무신 놈의 유서인가 할지 모리겠다마는 이대로 내가 가믄 남은 사람들 가심에 한을 심을 것 같애서…… 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이상타.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장돌- P158
뱅이로 장바닥을 돌믄서 투전판이나 기웃거릴 놈이, 하늘 밑의 혈혈단신 계집이나 어디 하나 얻어걸리겠나. 그렇다믄 많이 출세한 거 아니가.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넘한테 큰 실수 안 하고 이렇기 가는 것도 다행 아니겠나. 이것은 진정이다. 여한이 없다. 자식들은 제 갈길 갈 것이고 다만 내 모친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자식된 도리, 시신이 어느 산천에 묻혔는가 모리고 가는 것이 나한테 남은 응어리다. 그라고 내 내자가 불쌍할 뿐이다. 그러나 본시 심성이 착하고 가는베(布) 재놓은 듯키 말이 없는 사람이니 크게 남한테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사람을 당부한다고 전해주라. 홍이 니한테는 신세 많이 졌다.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피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겠나.- P159
"그것도 마 괜찮겄십니다. 당분간 절에 기시믄서 관수 명복도 빌고 그러는 기이 신양에 좋을 깁니다. 너거들도 너무 우기지 마라.
어무이가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기라."
강쇠는 단을 내리듯 말했다. 영광과 영선은 서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식들과는 함께 살지 않으려 하는가, 영선이나영광은 알고 있었다.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영선네 결심을. 어쩌면 그는 지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의 출생의 멍에는 무겁고도 가혹한 것이었다.
영광은 산에서 이틀을 더 묵었다. 그러는 동안 매부 김휘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산속을 헤매어 다니기도 했다.
산에 남은 영선네와 그곳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산을 떠날 때는 영선의 식구들과 함께였다. 그들도 통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화개까지 나와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하구(河口)를 향해 배가 내려갈 때
"처남 이거 받아두소."
하며 휘가 접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통영 우리집 주소요."
영광은 그것을 받아 호주머니 속에 간직한다.
"오빠 꼭 한번 오이소. 우리 사는 것도 보고"
아이를 안고 옆에 있던 영선이 말했다.
"그래 갈께."-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