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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우리 봇물을 트자
-여성 해방의 문학에 부쳐


치맛자락 휘날리며 휘날리며
우리 서로 봇물을 트자
옷고름과 옷고름을 이어주며
우리 봇물을 투자
할머니의 노동을 어루만지고
어머니의 보습을 씻어주던
차랑차랑한 봇물을 이제 트자
벙어리 삼 년 세월 봇물을 투자
귀머거리 삼 년 세월 봇물을 트자
눈먼 삼 년 세월 봇물을 트자
달빛 쏟아지는 봇물을 트자
할머니는 밥이 아니다
어머니는 떡이 아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한반도 덮고 남을 봇물을 터서
석삼년 말라터진 전답을 일으키자
일곱삼년 가뭄든 강산을 적시자

오랫동안 홀로 어둡던 벗이여
막막한 꿈길을 맴돌던 봇물,
- P93
스스로 넘치는 봇물을 터서
제멋대로 치솟은 장벽을 허물고
제멋대로 들어앉은 빙산을 넘어가자
오천 년 이 땅을 좀먹는 암벽,
억압의 암반에 굴착기를 내리고
사랑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캄캄한 수맥에 커단 빛을 내리자
하나보다 더 좋은 백의 얼굴이라
백보다 더 좋은 만의 얼굴이어라
형제여, 자매여,
마침내 우리 서로 자유의 물꼬를 열어
구구구구 구구구구
비둘기떼 날아와 하늘을 덮게 하자
끼룩끼룩 끼룩끼룩
갈매기떼 날아와 수평선을 덮게 하자-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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