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土地』 제1부를 『현대문학』지에 연재중이던 1971년 8월, 암이라는 진단에 의해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수술 전날 병실 창가에서동대문 쪽으로부터 남산까지 길게 걸린 무지개를 보았다. 참 긴 무지개였었다. 아마 나를 데려가려나 보다, 하고 나는 혼자 무심히 중얼거렸다. 그날 회진 온 의사에게 물었다. 수술은 몇 시간이나 걸리느냐고 세 시간쯤 걸린다는 대답이었다. 대수술이군요, 하고 되었다. 삶에 보복을 끝낸 것처럼 평온한 마음이었다. 휴식으로 들어가는 기분이기도 했다. 야릇한 쾌감 비슷한 것도 있었다.
정작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은 가을,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언덕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같았고 그것들을 위해 좀더 일을 했으면 싶었다.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土地』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
장을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壁)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妄想)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더란 말인가. 달리 할 일도 있었으련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전신에 엄습해오는 통증과 급격한 시력의 감퇴와 밤낮으로 물고늘어지는 치통과, 내 작업은 붕괴되어가는 체력과의 맹렬한 투쟁이었다. 정녕 이 육신적 고통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 자를 걸어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자의(自意)로는, 그렇다, 도망칠 수는 없다. 사슬을 물어 끊을수도 없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 모른다.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악마의 간계에 의해 ‘우스‘의 정직한 한 사내를 전능자 하나님이악마의 손에 넘겨준 『구약』의 「욥기」를 독자들은 기억하리라 믿는다. 악마에게 시험을 당하게 된 그 불운한 사내는 일시에 모든 것을 잃고 자식도 가산도 다 잃어버리고 끝내는 그 자신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惡瘡)에 시달리며 신음하는데, 환부(患部)에서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는 욥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부끄럽다.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詭)을 발하지 아니하고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하고 말한 욥을 생각하면 그의 발 아래 꿇어앉고 싶어진다. 시험은 끝나고 모든 잃은것을 찾은 욥을 염두에 떠올리며 위안을 받을 적에 나는 슬프고 내자신이 가엾어진다. 이 미물(物) 같으니라구.
승리 없는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고 버리곤하던 아픔의 연속이 내 삶이었는지 모른다. 배수(背)의 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이 나는 차근히 발을 내밀 수가 있었다. 아무리 좁은 면이라도 희망의 여백(餘白)은 두렵다. 타협이라는속삭임이, 꿈을 먹는 것 같은 무중력이, 내가 나를 기만하는 교활한술수가, 기적을 바라는 가엾은 소망이⋯ 희망은 이같이 흉하게약화되어 가는 나를, 비천하게 겁을 먹는 나를 문득문득 깨닫게한다.
나는 표면상으로 소설을 썼다. 이 책은 소설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하고많은 분노에 몸을 태우다가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잔해(殘)다. 잿더미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울부짖음도 통곡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일 따름, 허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진실은 참으로 멀고 먼 곳에 있었으며 언어는 덧없는 허상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진실은 내 심장 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영원히 침묵한다는 얘기도 되겠다. 칠팔 년 전에 나는 어느 책에다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性)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진실이 머문 강물 저켠을 향해 한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의 언어, 그럼에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전율(戰慄)없이 그 말을 되풀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명리(名利)를 두고 한말이 아니었나 싶다. 혹은 잡사(雜事)에서 손을 떼고 일에 전념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그들 각도에서 본 행, 불행에는각기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노여움을, 때론 모멸감을 느끼며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무궁무
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짓이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 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그 어느것과도 나와는 별 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분명 환난을 겪는 옵에게는 행복의 비밀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土地』 제1부를 쓰던 삼 년 동안의 내 심경이며 그것을 적어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1973년 6월 3일 밤
作者
신판(版) 서문
사정에 의해 1989년 가을부터 나는 인지를 발부하지 않았고 ‘토지』의 출판은 중단 상태로 들어갔다. 문학을 포기할 생각도 해보았고 서점에 『토지』가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심한 혐오감에 빠지기도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은 꽤 오랫동안 나를 침잠하게 했으며 내 문학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가를 깨닫게도 했다. 그리고 독자들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하며 출판 중단을 비난하는 내주변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고 시간을 응시하며 겨울나무가 바람에몸을 흔들며 고엽을 떨어뜨리듯 나 역시 새봄을 맞기 위하여 분노의 쓰레기를 떨꾸려고 호미를 들고 텃밭에 나가곤 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무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생 생명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찰나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종결편인 『토지』 5부의 연재를 시작했으며 주변의 비난을 수용하여 『토지』 출판의 재개를 결심했다. 젊고 맑은 감성들이 모여서 하는 솔출판사를 선택하여 이 책이 나가게 되었는데 바라건대 조약돌처럼 이 강산 사방에 깔려 있는 문화라는 허상
속에서 진정한 문화에의 회귀에 성과 있기를 빈다.
1993년 6월 8일
박경리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후우이이 요놈의 새떼들아!"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는 와삭와삭 풀발이 선 출입옷으로 갈아입고 타작마당에서 굿을 보고 있을 것이다. 추석은 마을의 남녀노유,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의 날인가 보다.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퍼지는 징 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참판댁 사랑에서는 흐느- P11
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日常)을 잊으며 굿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참판댁에서 섭섭찮게 전곡(錢穀)이 나갔고, 풍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 테니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
이날은 수수개비를 꺾어도 아이들은 매를 맞지 않는다. 여러 달만에 솟증 풀었다고 느긋해하던 늙은이들은 뒷간 출입이 잦아진다. 힘 좋은 젊은이들은 벌써 읍내에 가고 없었다. 황소 한 마리 끌고 돌아오는 꿈을 꾸며 읍내 씨름판에 몰려간 것이다.
최참판댁 사랑은 무인지경처럼 적막하다. 햇빛은 맑게 뜰을 비쳐주는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새로 바른 방문 장지가 낯설다.- 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