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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이 남자의 근사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전적으로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아이라고 여기지 않은 지 제법 되었고, 선생이 자기들을 얕잡아보는 그 순간 그들의 마음에 이 단어가 떠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게 아닌가 생각했다.
"너희는 인생의 어떤 시점에 이르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야 하는 시점에."
에이미는 이 남자가 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염과 머리를 길게 기른 것을 보면 불쑥 화제를 돌리면서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주장할지도 몰랐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빈 의자를 옆으로 치웠다. 애초에 자연이 그를 키 크고 체격 좋은 남자로 만들려고 의도했던 것처럼 그의 손은 큼지막했지만, 의자를 옮기는 손의 움직임에는 더없이 부드러운 느낌이 감돌았다.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그뿐이다.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릴 수있게."- P51
로버트슨 선생이 주먹으로 칠판을 탕쳤다. "이 아름다움을 모르겠나?" 그가 뒷줄에서 하품을 하고 있던 앨런 스튜어트에게 물었다. "장담하건대, 너희가 조금이라도 섬세하다면, 이걸 보고울고 싶어질 거다."
몇 명이 키득거렸지만 그건 실수였다. 로버트슨 선생은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 말이다. 여기 세 개의 선이 있다. 세 개의 단순한 선이지." 그러고는 분필로그 세 개의 선을 따라갔다. "이 선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봐." 그가 갑자기 잠잠해지자 키득거리던 학생들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칠판에 그어진 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이미에게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읽은 한 시구였다. 유클리드만이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았네.
로버트슨 선생은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에이미에게 잠깐 시선을 멈추었다. "할말이 있나?" 그가 턱짓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지쳤는지 어투가 딱딱했다. 에이미는 눈을 내리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아. 그렇다면, " 그가 한숨을 쉬었다.
"수업은 이만."- P62
이저벨이 나오다가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니 그가 엄마의 이름을 부른 듯했다. 에이미가 다시 고개를 들어 흘끗 보는데 엄마의 하얀 얼굴에 순종과 희망의 표정이 어리다가 사라졌다. 에이미의 가슴속에 구멍이 뚫렸다. 방금 본 장면은 끔찍했다. 엄마의 적나라한 얼굴. 그녀는 엄마를 사랑했다. 그들을 연결하는 검은 선을 타고 맹렬한 사랑의 공이 빛을 번쩍이며 엄마에게 날아갔지만, 엄마는 이제 자리로 돌아가 타자기에 종이를 끼우고 있었다. 그 순간 에이미는 희한하게 생긴 엄마의 기다란 목과 거기들러붙은 젖은 머리카락이 끔찍이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이 싫은 느낌은 오히려 애달픈 사랑을 더욱 키우는 것 같았고검은 선은 그 무게로 바르르 떨렸다.- P83
로버트슨 선생은 에이미에게 자부심에 대해, 품위에 대해, 그리고 예의에 대해 가르쳤다. 정말로, 정말로 그랬다. 어느 날 (2월이었고, 햇빛도 바뀌어 희망을 암시하는 노란색을 담뿍 담고있었다) 그가 책상들 사이로 걸어가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옷이 예쁘구나."
에이미는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얼굴 옆으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 처음에는 그가 말을 걸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에이미." 그가 말했다. "옷이 예쁘구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주 예뻐" 그가 그녀 쪽으로 걸어왔고, 고개를 주억거리며정말 그렇다는 뜻으로 생강 색깔의 눈썹을 치켰다.
"만들어 입은 거래요." 대화에 끼고 싶은지 엘시 백스터가 거들었다. "에이미가 전부 혼자 만들었대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가정 시간 숙제였으니까. 에이미는 이저벨과 함께 포목점에 갔고, 같이 심플리시티 견본책을 뒤지다가 텐트 드레스에 어울리는 무늬를 찾았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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