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길 위에서

일기를 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베를린 일기‘라는 걸 쓰지 못했다. 대신 영수증을 모았다. 빈 노트에 그날의 영수증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는게 나한테는 일기 쓰기 비슷한 것이었다.
이렇게 영수증을 모으면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하루에 얼마를 썼는지 대강 알 수 있고(약간의 반성도 할 수 있다), 어디에 갔었는지 떠오르고, 무엇을 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함께 다녔는지도알 수 있다.
물론, 영수증에 누구와 함께 다녔는지에 대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건 이상해서 영수증에 찍힌 상호명과 주소, 구매 품목, 가격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머지들도 떠오르는 것이다.
‘그날‘ ‘거기‘를 갈 때 ‘날씨‘가 어땠는지, ‘동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동행이 있었다면 그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둥둥 말이다. 그날, 거기, 날씨, 동행, 대화 등이 갖추어지면 얼추 일기가 구성될 수 있는 것- P83
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일기 대신 영수증을 스크랩했던 것이다.
365일 그런 걸 하지는 않는다. 여행지에서만 그런다. 소비 패턴을 파악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비일상 가운데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서.
2016년 나는 7월부터 9월까지 대략 3개월 동안 베를린에 있었는데, 한달인가를 남겨놓고 스크랩하는 것을 그만둬버렸다. 뭔가 알 수 없이 바빠져서 스크랩하는 게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스크랩은 밀리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때 일기가 밀리면 그랬던 것처럼 아예 하지 않는 쪽을택해버렸다.
하지만 영수증을 버리지는 못했다. 종이봉투에 넣어두었고, 그걸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영수증을꺼내서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선(거의 모르는) 독일어를 더듬더듬 읽어가는 것이다.
정리 안 된 내 영수증 일부를 읽는 것으로 베를린 생활의 세부를 기억해내보기로 한다. 모든 걸 적을 수는 없으므로 하나의 영수증에 세 가지 단서만을 적기로 하겠다.- P84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클라이스트는 죽고 나서 자신이 엄청난 비난과 오명에 시달리리라는 걸 예상했을까? 비그리스도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교회에 묻히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을까? 클라이스트 가문에서 죽은 그를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알았을까? 그것까지 그의 죽음프로젝트 안에 있었을까?
그가 죽기 전에 했던 기행이라 불릴 만한 이런저런 일들과 남겨놓은글들을 보면 그랬을 법도 하다. 그런데 또한 그가 남겨놓은 글들에서 그토록 미움받는 건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죽기 전날, 그러니까 11월20일에 그의 누이에게 쓴 편지가 있는데 자신을 제발 용서해달라고 더이상 미워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클라이스트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으로써 그간 자신의 과오와 잘못과 불화를 다 씻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딱한 사람.- P99
나는 그의 누이가 클라이스트를 용서했을 것 같지 않다. 죽음으로써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는 사람을, 더군다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분명한 그 사람을, 용서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또한나는 이 남자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그게 클라이스트라서가아니라 모든 사람의 외로움이라는 게 그렇다.
상상할 수 있으나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할 수밖에 없다.
죽은 지 100년 후 비로소 묘비가 놓였다고 한다. 클라이스트 가문에서 세웠다. 그리고 다시 100년 후 클라이스트의 묘비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어떤 일로 훼손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렇다. 묘비가 복원된 건 2011년, 그가 죽은 날인 11월 21일이었다.- P99
두 번 보내던 해에비스마르크에게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을 상표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비스마르크는 직접 답장을 보내 허락했고, 이 절인 청어 요리가 비스마르크 청어가 되었던 것.
비스마르크 마케팅의 승리다. 비스마르크라는 동명의 이름을 가진 빵과 비스마르크 피자도 아마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독일에서가장 즐겨 마시던 맥주인 라드베거는 ‘비스마르크가 즐겨 마시던 맥주라는 게 여전히 마케팅 포인트였다.
‘비스마르크 청어‘ ‘비스마르크 청어‘ ‘비스마르크의 청어‘ 이런 검색어를 넣어 검색하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비스마르크의 청어』라는 책도 있다. 프랑스 정치가 랑 뤼크 멜랑숑이 쓴 독일 비판서라고 하니 이 제목이 어떤 내용을 상징하는지 알 것 같다.
비스마르크라는 이 강력한 상징!- P103
그러면, 글을 쓰지 못한다. 글을 쓰지 못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고, 기분이 좋지 않으므로 글을 여전히 못 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분이 계속해서 좋지 않아지는 그런 순환 반복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면,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써야 한다. 애쓰더라도 잘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필사적이 되고 싶지 않고, 애쓰지 않고 싶기 때문에 나는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내가 얼마나 감정적인 사람인지 잘 알고 있고, 얼마나 쉽게 그 감정이 흔들릴 수 있는 나약한 사람인지도 잘알고 있다. 또한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의지나 통제에 따라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 감정을 살살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게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정말이지 엉망으로 살았다. 내 감정의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다녔고, 책을 한 줄 읽지도 못했고, 산책을 하지도않았다.- P133
그 상태를 간신히, 간신히 벗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문장을 적었고, 또 한 문장을 적었고, 계속해서 썼다.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품었던 소망, 내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일인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계속쓸 수 있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나로서는 난생처음이었고, 그전까지운동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정말 그렇다)하는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다.
누가 알려준 게 아니다. 매일같이 글을 쓰다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고, 알게 되었으니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 살아온 시간에 대한 반성과- P133
반동의 일환으로써,
그래서 그렇게 살고 있다. 내 감정에 아부하면서 ‘나 좀 잘 봐줘, 제발, 응? 거의 이런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제대로 된 글을. 마음을 움직이거나 하다못해 마음을 건드리는.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글을 쓸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력과 규칙과 질서가 필요하고, 나는 내가 그렇게 지속적으로 단조롭게 살아야만 평생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P134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던 작가 중의 하나가 토마스 만이다. 뤼벡은토마스만이 태어나 자랄 때까지 살았던 곳이고, 토마스 만의 소설에는 뤼벡으로 추정되는 곳이 많이도 나온다. 그러니 나로서는 뤼벡에 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뮌헨과 프라하에 가보라는 말을 들을수록 반동 심리에선지 뤼벡에 가고 싶어졌다. 한 군데 더 가고 싶은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드레스덴이었고, 왜 그랬을까? 그 끌림을 단 몇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정리하자면 뭐 이런 거였다. 뤼벡> 토마스만, 드레스덴 > 파괴된 바로크.-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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