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화요일 오후 아홉시 구분
오전에 집수리 기술자가 젊은 수습생을 데리고 왔다. 세면대 수도를 새것으로 바꿔 달았다. 조용하고 꼼꼼하게 일하는 기술자였다. 약속을 바꾼 것은 내 쪽인데 늦게 와 미안하다며 품삯을 덜 받겠다고 했다. 그러지 마시라고, 내 아버지도 기술자라서 품삯은 깎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삼만원이나 덜 받았다.
현관에서 배웅하는데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토요일에 결과가 실망스러워서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현관에 붙은 손팻말을 본 것 같았다. 자기는 처음엔 홧김에 계엄을 선포한 줄 알았는데 매일 나오는 뉴스를 보니 너무 무섭다고 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렇죠, 무섭죠, 보통 일이 아니죠. 실망했다는 말을 하기는 싫어서 그냥 웃었다. 또 가죠뭐.
쓰기와 읽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유튜브에 접속하면 누군가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음악 대신 뉴스를 틀어두고 원고를 본다. 집중이 어려우니- P24
까 집중을 해야지,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다.
저녁엔 퇴근하는 김보리를 마중 나간 김에 메밀국수를 먹으러 갔다. 매운 양념에 비빈 콩나물을 먹고 싶어서비빔메밀을 먹었다. 국수를 먹으면서 랩이 터진 것처럼 욕을 했다. 매국과 내란의 얼굴들, 파렴치며 몰염치가 그네들힘이다. 꼴도 보기 싫다, 곱게 늙어서 더 징그러운 폭력들, 샹, 샹. ‘국가‘와 ‘나라‘를 주제로 열렬히 말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보수인가 싶었다. 이 계엄을 옹호하는 입장들을 ‘보수‘라 칭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봉건,
내란, 위헌 중에 골라봐.
"국민들께서도 추운 거리에서 밤을 새우며 탄핵을 외치는데, 저희도 따뜻한 곳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 다섯명이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를 촉구하며 8일부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국회 앞을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취지는 알겠으나 동의할 수 없다. 뉴스를 읽으며 답답해 가슴을 쳤- P25
다. 국회에 머물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무사가 지금얼마나 중요한가. 당신들만 바라보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단식으로 스스로의 몸을 축내는 호소는 저 봉건+내란+위헌 세력에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남의 고통에 움직이는 일 없는 이들이니까. 그러니 부디 따뜻한 곳에 있으라. 잘 먹고 잘 자며 스스로를 잘 보살펴달라.- P26
2024년 12월 13일 오후 1:25
독재로 가기 위한 전쟁.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영영 이별할 사건을
오로지
자신들의 범죄를 덮고 사적인 원한을 해소하고 권력을 영영 유지하기 위해서.
‘내란성 위염‘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510명이 "윤석열의 퇴진이 국민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이라며 어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나도 문득문득 견디기가 어렵다. 계엄 직후만 해도 충동적으로 계엄을 저질렀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계엄이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어제 오늘 사이엔HID 정보사령부 특임대 요원을 동원해 각 분야의 요인을 납치,- P28
암살하려 했다는 제보가 있었고, 군을 움직여 전쟁으로 번질지도 모를 국지전을 획책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세계대전 발발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화가 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속이 뒤집힌다. 남의 삶을 조금도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 목숨을 이런저런 전선으로 내모는 계획을 세우면서,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고 없애라 명령하면서, 수많은 목숨이며 삶을 전쟁에 쓸어 넣을 계획을 세우면서, 그 머리와 가슴에 ‘사람‘이 없을수 있을까. 자신 말고 누구도 피 흘리는 생명체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는 그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닿는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삶, 그럴 의지도 없는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진 것도 사람, 악귀나 악마 아니고 사람, 내게도 있는 싹. "사람이 하는 일"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주문을 외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한다.
가슴이 답답해 밤 산책을 나섰다가 전광훈 연설을 틀- P29
어두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노인을 보았다. 삼십분 걷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골목에서 한번 더 마주쳤다. 그 목소리와•말을 뿌리며 돌아다니는 게 그의 산책 목적일까. 어쩌면 나름 거룩한 목적, 선교나 구국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누군가를 죽여, 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사이비의 연설은 어쩌다 그노인의 기도이자 신념이 되었을까.
내일 다섯시로 예정되어 있었던 탄핵 표결이 네시로 앞당겨졌다.
조금 더 일찍 이동하기로 했다.
계엄 이후로 매일 날씨를 확인한다.-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