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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그는 혼자였다. 그는 주목받지 못했으며, 행복했고, 삶의 야성적 핵심 가까이에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

"He was alone. He was unheeded, happy, and near to the wild heart of life."
-James Joyce-
편집자 주

위에서 언급된 문장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등장한다. 리스펙토르의 데뷔작 제목은 이 문장의 ‘near to the wild heart‘라는 구문을 그대로 옮긴것이다. 이 제목은 리스펙토르의 친구이자 작가인 루시우 카르도주가 제안한 것이었는데, 그때까지 조이스를 읽어 본 적이 없었던 리스펙토르는 작품의 맥락보다는 나열된 단어들이 주는 인상에 매료되어 이 제목을 받아들였다.
리스펙토르가 데뷔작에 담은 메시지 중 하나는 언어를 넘어선 심상의 세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진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어들의 관습에 도전하고, 낯설게 하고, 거기서 예측할 수 없는 이미지를 탄생시키곤 한다. 본 작품의한국어판 제목 역시 그러한 특성을 반영했다. 즉, 주로 ‘야성의 중심(핵심) 가까이‘
정도로 번역되는 한국어 번역의 관례를 따르지 않고 ‘wild heart‘를 ‘야생의 심장‘이라는 이미지로 변형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타자기 소리가 탁탁...... 탁탁탁...... 이어졌다. 시계가 먼지 없는 뎅그랑 소리로 깨어났다. 정적이 잠잠잠잠잠잠 이어졌다. 옷장은 뭐라고 말했지? 옷- 옷- 옷. 아니, 아니야. 시계와 타자기와 정적사이에는 귀가 하나 있다. 듣는, 커다란, 분홍빛, 죽은귀. 세 가지 소리는 햇빛과 반짝이는 작은 나뭇잎들의바스락거림으로 이어져 갔다.
그녀는 반짝이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웃집 마당을, 저- 죽을- 줄- 모르는- 암탉들의 커다란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단단히 다져진 따스한 흙, 그 흙의 몹시도 향기롭고 건조한 냄새를 마치 바로 코밑에 있는 것처럼 맡을 수 있었고, 지렁이 한두 마리가사람들이 잡아먹을 암탉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기지개- P12
를 켜는 걸, 저절로, 그냥 알아차렸다.
커다랗게 텅빈 고요의 순간.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공백. 그러더니 갑자기 그날의 태엽이 감기면서 모든 것이 위잉 되살아나, 타자기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아버지의 담배가 연기를 피우고, 정적이, 작은 나뭇잎들이, 알몸의 닭들이, 빛이, 물건들이 끓는 주전자처럼 다급하게 활기를 띠었다. 빠진 건 너무도 예쁜 시계의 뎅그렁거림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 시계 소리와 존재하지않는 리드미컬한 음악이 들리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발끝으로 섰다. 날아가듯 가볍고 빠른 춤 스텝을 세 번 밟았다.- P13
그녀는 이미 인형 옷을 입히고, 벗기고, 인형이 파티에가서 다른 모든 딸들 사이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상상을 했었다. 아를레치는 파란 차에 치어 죽었다. 그 다음엘 요정이 나타나 그녀를 도로 살려 냈다. 딸과 요정과파란 차는 주아나 자신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 놀이는 따분했을 것이다. 그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어면 등장인물이 집중 조명을 받는 순간에 그 역할을 자기 자신에게 맡기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냈다. 그녀는침묵 속에서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진지하게 임했다. 아를레치 역할을 하기 위해 아를레치 가까이로 갈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멀리서도 사물을 소유했다.
그녀는 판지 쪼가리들을 갖고 놀았다. 그녀는 잠시 그것들을 바라보았고, 판지 쪼가리 하나하나가 학생이었다. 주아나는 선생님이었다. 어떤 학생은 착하고 어떤 학생은 나빴다. 그래, 그래, 그래서 뭐? 이제 이제 이제 뭐? 그리고 그녀가 …… 기다릴 때면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P15
악은 나의 소명이라는 확신, 주아나는 생각했다.
억눌린 힘. 눈을 질끈 감은 채, 야수 같은 무모한자신감을 통해, 폭력으로 터져 나올 준비를 마친 그 억눌린 힘을 모조리 발산하고 싶은 갈망을 달리 어떻게설명할 수 있을까? 오직 악 안에서만 공기와 허파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두려움 없이 숨을 쉴 수 있지 않았던가? 내겐 기쁨 그 자체도 악만큼 큰 기쁨을 주진못했어, 그녀는 놀라며 생각했다. 그녀는 모순들과 이기심과 활기로 넘실대는, 자기 안의 완전한 짐승을 느꼈다.- P21
자책하지 마. 이기심의 근본을 탐구해 봐: 내가 아닌 것은 내 흥미를 끌 수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넘어선 존재가 될 수는 없다ㅡ그럼에도 나는 정신이 혼미하지 않을 때에도 자신을 초월하며, 따라서 나는 거의 늘 나 자신을 넘어서 있다ㅡ. 내겐 몸이 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 시작으로부터 이어진 것들이다. 마야 문명이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그건 내 안에 그 얕은 돋을새김 조각들과 관련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태어난 원인을 미처 자각하지 못한 내가 나도 모르게 아주 중요한 것을 짓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가장 위대한 겸허함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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