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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시인의 말


의자도 거울도 전부 사막이다.
집도 절도 붉은 모래다.
무수한 나사로 조여진 문명 속에서
마주치는 원형의 세계, 그 굳건한 적막에
하루하루 아득하다. 막막하다.

고생대의 숲이 지금도 살아 분열하고 있는
사하라는 가장 치열한 생명의 땅이며, 오늘 내 삶의 현실이다.
말의 틈새기로 먼지처럼 분열하는
몸과 꿈의 뜨거운 분신들이
아프고 그립고 고맙다.
때문인지 이 시집엔 발끝을 세우는 것들이 많다.


이천오년, 가을옷을 꺼내며
수우헌에서
聖발바닥


사하라의 노을을 넘다가
신발을 벗고 동쪽을 향해
무릎 꿇는다
모래비탈에 입맞추며 기도하는
흰옷 입은 모슬렘 사내
왜 엎드린 사람의 키가 더 클까
위대한 건 신이 아니라
모래로 빚어진 나그네다
흙먼지에 수만큼 갈라진 聖발바닥
옷자락 날리며 핏빛 산맥을 다시 걸어가는
모래만 내짚는 모랫덩이의
맨꿈, 맨뒤꿈치
그 삼억만년 퇴적된.
낙타의 젖이 달다


결혼을 앞둔 딸의 단지에
어미는 낙타젖을 따른다°
이는 세상의 강물이니 다 마셔야 한다
코끼리 같은 허기가 기다리리니
저 펄럭이는 사막을 안아야 하리니
딸아, 이것을 다 마셔야 한다
사람이 네게로 흘러오리니
사람이 네게서 넘쳐나리니
일곱 살에 색칠했던 하늘, 한뼘한뼘 완성되어
말라깽이 가슴도 젖살이 오르리라
낙타등에 올라탄 언덕을 보아라
야자나무가 키우는 낮달을 보아라
이 세상 강물이 달지 않느냐

어미 젖가슴에서 쏟아진 사막
딸의 앞자락 속으로 감겨든다


•사하라 모리타니에서는 결혼을 앞둔 딸에게 낙타젖을 먹여 살을 찌우는 전통이 있다.
광야


비쩍 마른 염소를 치는
빼빼 야윈 아이에게
사하라는 한 벌 남루한 옷일 뿐이니
그 옷을 입고
염소는 아이처럼 웃는다
아이는 염소처럼 달린다

둘 다 발꿈치가 단단하다
뿌리


사막에서는 소문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 막막한 신의 등짝에서는
뿌리가 몸통의 두 배라는
바오밥나무가 자랍니다
하늘을 본다는 건
제 넓이 두 배의 침묵 위에 서는 일,
제 키 두 배의 고요를 키우는 일임을 알아
바오밥은 바람이 먼데서 실어온 말까지
그냥, 삼킵니다, 깊은 데로,
깊은 데로 발목만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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