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에는 이미 장비가 들어와 있었으며 나무들은 뽑혀졌고 흙더미에 ‘조수 보호구역‘ 이라는 팻말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분명관에서 설치한 것일 터인데, 수상골프장으로 허가는 났다니까 보호구역도 그럼 취소가 되었는지 영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뒹굴어진 팻말이 내 눈에는 아무래도 관의 무기력, 무질서로 보였고 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장비만 있을 뿐 일하는 사람이 없었고 넓은 학교도 아주 아주 고요했습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할 수도 있겠으나 원체 그곳에서도 소리는 없는 것으로 내 마음에 전해져왔습니다.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풍경도 사람도 다 같이 무감동, 무관심으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울먹이며 아뢰는 것은 다만 흙더미와 쓰러진 나무와 내동댕이쳐진 팻말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나 있을 환경부 기자도 내 설명을 귀담아듣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스며나오는 비애, 과연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인가 그 자문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하였습니다. - P265
해악을 끼치려고 온 것은 아닌데 내심섭섭했으나 새들이 놀라서 떠나지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서둘러 모이를 뿌려주고 황망히 그곳을 떠났지요. 다음 날도 갔습니다. 이번에는 몇 마리의 새만 날아올랐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정찰하듯 빙빙 돌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지도자가있고 각기 분담하여 임무를 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이를 놔둔 곳을살펴보았습니다. 콩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보리는 없더군요. 마치 실험에 성공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갔습니다. 이번에는 한 마리의 새도 날아오르지 않았습니다. Q씨는 그때 내 마음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을 거예요. 철새들은 우리를 신뢰하고 환영했던 것입니다. 조용한 몸짓으로, 짐승은 은혜를 알아도 사람은 은혜를 모른다는, 흔히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은혜보다 신의라는 말이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P270
산이란 산에는 무시무시한 덫이 깔려 짐승들의 울음이 하늘에 사무치고 터전을 빼앗긴 동식물은 굶주려 죽고 있습니다.
수만 마리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여 강가에 밀려와 썩어가는 것도 흔한 일이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고 이미 다반사가 되어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것 같지도 않더군요. 이와 같이 황폐한 영혼의 터전에서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노래하는 걸까요. 소생의 계절이 아직도 시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요.
도대체 문학은 무엇이냐, 맨정신으로 묻는 것도 쑥스러운 노릇이나 문학은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는 것도 상투적인 정의겠습니다만. 인생은 꾸미는 것이 아니며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며 보다고통스럽게 무량한 우주의 비밀을 헤치고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진실에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생명에 대한 자비, 혹은 연민이 핵이 되는 선성의 추구 없는 아름다움이란 종이꽃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유미주의또는 탐미주의는 쾌락주의와 상통하는 일종의 허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P273
선배든 선생이든 부정과 부패에 보조를 맞추어야 관문을 통과하고 남먼저 사회에 나오게 되는, 참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거대한 물살이 되어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시대 흐름에 과연 자유가 있고 개성이 있겠습니까? 방향도 알지 못한 채 모두 한곳으로 뒤엉켜서 흘러갑니다. 경쟁이라는 채찍에 쫓겨 노예같이, 자동차의 부품같이. 이상이라는 말이 빈껍데기가된 지도 오래입니다. 흥분이나 투쟁도 얼빠진 말이 되었습니다. 네, 비켜서야지요. 다 군더더기 같은 얘기였어요.
노쇠한 봄이 지팡이를 짚고 흐느적거리듯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나 소생의계절이 한낱 수식어로서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분노 어린 마음이 망상이라면 내눈에 비치는 세태 풍경도 망상인지 모르지요.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지 세상이뒤죽박죽인지 분간키 어렵습니다. 생각이 나갈 길이 없어요. 하루에도 몇 번 망상에 시달리고 절망에 사로잡히고 생각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뭔가이 혼돈을 바로 세워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부딪치면 방향을 돌리는 것이 생존의 본능이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생명들은 삶의 방식을익혀가면서 전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했던 것이 역사 아니었던가. 자위해보- P278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정 능력이 있을 때의 얘기지요. 뭔가가 있어서도와줄 것이다,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그런 바람은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의 속성이지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우주의 질서는 가차가 없고 냉혹한 것입니다.
저만치서 서성거리고 있는 봄도 생명들의 아우성, 흐느낌을 뒤로하고 떠날 것입니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습니다. 4월이 잔인했는지 존재의 처지가잔인했는지 혼란스럽군요.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는 처지일 수도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 P279
삶은 준열하고 나날의 노동 없이는 내 자신이 분해되고 말 것만 같았고긴장을 푸는 순간 눈을 감은 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포기했으며 오로지 목숨을 부지한 것은 가엾은 내 딸, 손자의 눈빛때문입니다. 그때 머리가 다 빠지고 철색으로 변한 딸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내 마음속의 짙은 피멍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지닌 피상적인 속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절감하고 있습니다.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몸부림,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언어에서 떠나질 못합니다. 그게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절, 거부하고 포기한, 극한적 고독의 산물이 《토지》였을 겁니다.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고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만 같았던 낯선 고장 원주는 20년 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화려하고 풍성해 보이고 세련된 도시로 바뀌었으며 감나무가 자라고 백일홍의 꽃도 피게 되었습니다. 매지리로 이사한 내 집에도 감나무 세 그루, 백일홍 한 그루가 살고 있습니다. 20년 세월에 세상이 바뀌고 기후도 달라졌습니다. 아열대 기후가 북상해 온 거지요. 그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가속이 붙게 되면 시베리아까지 그리 먼 일도 아닐 것입니다.-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