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극단 사이의 중간 길이 있다. 숲을 지나가는 길이ㄷ 언어와 이미지는 거짓말이나 참말이 아니라 무언가를 그린그림이다. 그려져 있는 것이 그리려고 했던 것에 완벽하게 상응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시 그리기와 고쳐 그리기는 가능하다. 그리려고 했던 것에 가닿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리려고 했던 것에 다가가기는 가능하다. 니체에 따르면, 진리란 은유라는 사실을 망각당한 은유다. "진리란 은유법들과 수사법들의 기동부대요. [.....] 은유와 수사를 통해 고양되고 변모되고 미화된 상태•로 오랫동안 통용됨으로써 불변성, 진정성, 규범성을 얻은 인간관계들의 총체요, [......] 닳고 닳은 탓에 감각적 위력을 잃어버린 은유들이다." - P239
메타포가 그리스어라는 특정 언어에서 기원하는 단어이자 그리스라는 특정 지역에서 운행하는 교통수단이라면(자연사박물관 장(章)에서도 한 번 했던 이야기다.), 진리란 그저 맥 빠진 메타포다. 뉴에이지 신도들은 은유를 모르는 사람들, 갖가지 모순된 것들이 글자 그대로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절대적 진리를 간직하고 있을 절대적 출발점 또는 절대적 종착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여행을 멈출 수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그들은 여행을 그만하고 싶어 하고 나는 여행을계속하고 싶어 한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P239
세로로 길다는 것은 나무가 또 하나의 직립 생명체인인간과 비슷한 점이다. 킬라니의 나무들에서도 고대인들과 증언자들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뿌리와 가지로 땅과 하늘을 연결해온 존재들, 온몸으로 땅과 하늘을 감당해온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그 나무들을 바라보던 나는 온갖 재난과 격변 속에서 하나의 장소를 지킨다는 것,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를지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기는 어렵지 않다. 고대 그리스신화에는 나무가 되는 인간이 많이 나온다. 두 발이 땅속에 박혀서 움직이지 않게 되고 두 팔이 축복기도를 하듯 들어 올려진 상태로 굳어지고 그렇게 나무로 변하면 엄청난 평화가 느껴진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중력에 시달릴 일이 없다. 초현실주의- P240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레드우드숲에 갔을 때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 때도 살아있었던, 자연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생명체들이다. 따뜻한 색감의 목피는 살처럼 물러 보인다. 그들의 고요는 포효하는 폭포들과 나이아가라보다, 그랜드캐니언에서 치는 천둥의 메아리보다. 터지는 폭탄보다 웅변적이지만, 그들의 웅변에는 아무 위협도 없다. 내가 있는 낮은 곳에서는 100미터 남짓한 높이에서 재잘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고 몇 달 동안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다니던 때가 기억났다. 공원에는 프랑스혁명 때도 살아 있었을 것 같은 나이 많은밤나무가 있었는데, 아주 자그마한 나무였지만, 나는 그 나무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무로 변해서 그렇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P241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관광지였다. 늑대를잃고 시를 얻은 숲은 관광지인데, 유럽에서 자연 하면 떠올리는것이 바로 그런 관광지의 풍경, 늑대는 다 없어지고 자연 그대로의 숲도 거의 없어진 풍경이다. 러시아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에 따르면, "자연과 대면하겠다고 생각한 유럽인은 친구들,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시골 별장 또는 작은 여관에 갔다가 혼자 저녁 산책을 나간다. 산책 중에 한 나무와 마주친 유럽인에게 그 나무는 역사의 소개로 안면을 트게 되는존재, 역사가 증인으로 내세우는 존재다.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릴 때, 의미들이 함께 바스락거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P242
은 즐거우면서도 차분하다. 삶에 활력을 주는 만남이었을 뿐 삶을 바꾸어놓는 만남은 아니었다. [......] 반면에 자기 집에서 걸어 나와서 한 나무와 마주친 미국인에게 그 만남은 대등한 두존재 간의 만남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나무라는 존재가 어떤소개장도 없이 각자의 원초적 능력만 가지고 대면한다. 둘 다 과거가 없는 존재이고, 둘 중 어느 존재의 미래가 더 위대할지는아직 미정이다. 미국인은 자기 손으로 지은 집으로 돌아오면서충격과 공포를, 아니면 최소한 당혹을 경험한다. 세상은 유럽일 것이고 자연은 관광지일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못한미국인이라면 그런 만남에서 당혹과 충격을 경험하겠지만, 불안정한 번역, 곧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상징물을 선호하는 미국인이라면 그런 만남에서 희열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를 덜 먹었을 때는 유럽을 부러워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유럽은 문화가 있는 곳, 모든 사람, 모든 장소에 기나긴 역사와 전통이 달려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럽에 가면, 유럽에서 내려지는 인간의 정의가 너무 협소하고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P243
아침에 클레어 해변과 모허 절벽행 버스에 오를 때도 장신의 여성과 함께였다. 나에게 상세지형도를 사게 했던 서퍼청년은 꼭 클레어에서 모허 절벽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라틴치에서 내렸다. 다시 혼자 걷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여자가 본인의 일정을 혼자서 용감히 소화해 나가는 여행 대신 나를 따라다닌다는 훨씬 쉬운 여행을 택하지 않기를 바라서이기도 했다. 내린 곳은 모허 절벽까지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대상의 진가를 알아보는 데는 대상이 막간에 바뀌어버린 무대처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보다는 대상이주변 풍경으로부터 서서히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모래 바닷가를 지나시내 중심가, 시내 중심가를 지나 단조로운 국도, 단조로운 국도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걷는 내내 시야는 해안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몇 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지도상으로는 탑 하나가 나와야 할 때였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안길로 들어온 나는 눈에띄는 사람에게 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 P284
망각이 기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려면켈트족이 항상 아일랜드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아일랜드인이 항상 켈트족이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해야 하고, 옛날에는 목축 부족이었던, 그리고 그 후에 몇 번이나 크게 변해온 아일랜드인들에게 지금의 보수적이고 완강한 전통은 임의의 선택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피(종족의 실체성)를 부정하면서 피보다 더 유동적이고 피보다 더 파악하기 힘든 시작점을 제시한다. 동아프리카의 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있고, 그렇게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있다. - P304
생물학자들과 함께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피라는 체내의 박동은 태고의 바다에서 원시 생물들에 부딪히는 체외 파동이 된다. (피와 바닷물은 아직 염분을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시작점을 찾는 인류학자들은 유인원이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걸어나온 시점, 곧 두 발로 똑바로 걷는다는 의미에서의 보행이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들이 보행을 인간다운 인간의 시작점으로 꼽는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숲을 떠난인간이 숲에 있던 나무처럼 직립 보행한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하늘을 향하는 나무. 인간의 시작점을 찾아 그렇게 점점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정된 한 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이 나온다. 아니,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P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