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과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아도르노의 세대는 나치의 유대인 (그리고 집시, 동성애자, 나치 반대자)홀로코스트가 유일무이한 대량학살이라고 믿는 세대였다. 그세대에게 아일랜드의 크롬웰, 아르메니아의 터키인들, 케이스먼트의 두 보고서는 이미 망각 속에 묻힌 과거였고, 캄보디아, 과테말라, 르완다는 아직 예견되지 못한 미래였다. 아우슈비츠 안에 시인이 있었다. 수감 중에 단테를 인용한 프리모 레비 같은작가도 있었다. (레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수용소를 규탄하는 서정적인 책을 썼다.) 그런 참혹한 순간에도 경험에는 어떤 복잡한 면, 단순화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라고 케이스먼트의 나비는 말하는 듯하다.- P104
아일랜드 토착어의 복잡한 문법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사람들이 일구어낸 혁명. 케이스먼트의 푸투마요 나비처럼 경이롭다. 경이로운데, 좀 난데없다. 지나치다. 시문학 자체에 그런 중력과 무중력이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적 차원의봉기가 있으려면 먼저 국민적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아일랜드 문화의 융성이 부활절 봉기로 이어지던 그때만큼 시문학의 정치적 중력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경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일랜드공화국 선언」의 서명자 일곱 명 중에서 세 명은 시인, 두 명은 교사, 한 명은 음악가, 한 명은 노조원 겸 역사가였다. 케이스먼트는 봉기의 실질적, 즉각적 결과만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그렇게 봉기의 상징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시인처럼 계산하지 않고 정치가처럼 계산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봉기에서 수행한 역할은 부활절 주일의 전국 봉기를 취소시킨 것, 이로써 봉기가 부활절 월요일에 더블린에서만 시작되게 만든 것이었다. 그가 시인의 생각을 이해했더라면, 아니, 그가 외부 지원이 없으리라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가 아예 상륙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P108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예전에 그곳에 살았을 사람의 유형도 아니고, 7년 전 애인의 유령도 아니었다.(전에인과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고 1년 만에 두 사람의 삶이 다른 곳을 향하고있음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헤어졌다.)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7년 전에 나였던 여자의 유령이었다. 리로부터전 애인의 가족사를 들어서였는지, 전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어서였는지, 그때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심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서늘한 우울을 떨쳐버리려면 전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생긴 좋은 일을 하나하나 되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창문 앞에서 갑자기 나는 옛날의 나 자신이 여기 죽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모든 꿈들. 그 여자의모든 실현되지 못한 계획들이 여기 죽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있었다. 모든 인체 세포가 7년에 한 번씩 새것으로 바뀐다면,
7년 전에 여기 있었던 그 여자, 지금의 나보다 어리고 소심한 그여자가 물리적인 의미에서 내게 남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여자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한 장의 여행사진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희미한 기억뿐이었다.- P152
어느 한낮, 나는 로어링워터만()의 끝자락인 발리드홉에서 밴트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혼자 걷는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지만,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의 경로를 정할 때만 해도, 서해의작은 도시들을 하나하나 답파한다는 계획이었다. 밴트리, 켄마어, 킬라니, 트랄리, 리스타월, 글린, 그렇게 남쪽에서 북쪽으로올라가는 지명들 자체가 근사한 느낌을 주었다. 기대 자체가 큰기쁨이고, 계획은 기대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내가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을 좋아했던 것은 둘째 오빠와 함께 가출 계획을 세웠던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부터였다. 그때의 가출은 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리라고 짐작되는 물건의목록을 적는 데서 끝났다. 이 아일랜드 여행도 출발에서부터 어긋났다.- P155
하지만 여행한다는 것,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은그 자체로 깊은 충족감을 준다. 이야기 중에는 여행 이야기가많고, 삶은 여행이 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여행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깊은 충족감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삶을 여행에 비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로 가고 있을때는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우리가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나무가 자라는과정에 비유했다면, 길에서 운명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157
하지만 우리는 삶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고, 길에서 운명을 느끼고 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만날 수없었을 온갖 위험과 온갖 기회를 만난다는 것, 낯익은 운명을뒤로 하고 낯선 운명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길은 그저 약속, 어겨진 것도 아니고 지켜진 것도 아닌 약속이다. 길이 나라라면 길기는 이 세상의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면서 좁기는건물 하나만큼 좁은 이상한 나라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있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있다. 견고했던 것들, 고정되어있던 것들이 이 나라에서는 유동하고 변화한다.-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