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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과거의 무수한 오브제들은 우리가 역사의 일방통행로를 얼마나 달려왔는지를 말해주는 이정표이다. 과거의 재산이 된 것들을 이렇게 없애버리면서 사는 사람은 영원한 현재를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과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억과 이야기로 전해질 수 있는 과거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문화는 머리에 넣을 수 있는 데까지였고, 물질문화는 언제나 자기를 둘러싼 풍경으로부터 새로 창조되는 중이었다. 이런 식의 영원한 재창조(re-creation)를 전제하는 구전 역사에서는 창세(creation)의 몽환시(幻)와 현재 사이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탄력적이다. 현재는 과거에서 출발해서 한 발 한 발 올라오는 지형이라기보다는 창세에 둘러싸인 메사(mesa) 지형이다. 기억에 그 용도가 있듯 망각에도 그 용도가 있다. 둘 사이의 균형점이 어디냐는 여기가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P25
이런 역사관은 자기가 자기를 둘러싼 풍경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선언이자, 자기는 새로운 풍경에 적응해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풍경 속에 있었다는 선언이자, 다른 곳으로떠나거나 새로운 집을 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언으로서 정치적 의미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역사에 다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태고에 인류의 이주가 있었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고(물질적 차원의 역사), 거주민과 거주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다(문화적 차원의 역사). 거주민의 정체성과 거주지의 풍경 사이에 그토록 밀접한 관계가있다면, 그 사람들이 그 풍경 속에 거주하기 전에도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풍경이 그 정체성의 기원이자 얼굴이라면 그 사람들이 그 풍경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에 비하면 나머지 우리는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P27
나는 법적 유럽인이다. 타고난(natural) 유럽인은 아니지만 귀화된(naturalized) 유럽인인 것이다. 내가 아일랜드 여권을 얻은 것은 명탐정 엉클 데이브(외삼촌)가 우리 가족과 아일랜드를 잇는 출생증명서와 혼인증명서의 긴 사슬을 발굴해낸 덕분이다. 피라는 신화적 액체가 국적이라는 법률적 지위를 보장해준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직 놀랍기만 하다. 내 계보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3세대쯤 되는 것 같지만, 가족 이야기를 거의 못듣고 자란 나에게는 아일랜드에 대한 기억이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를 부모로 두었던 아버지를 둔 나를 아일랜드계라고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가톨릭 신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주로 거주해온 곳은 캘리포니아라는 잡종 지역, 세계 제일의 망각력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아일랜드 여권이 생겼을 때 나는 유산을 받은느낌이라기보다 횡재가 굴러 들어온 느낌이었다. 열쇠에 비유하자면 내 집의 열쇠가 아니라 모르는 건물의 열쇠였고, 초청장에비유하자면 나에게 온 초청장이 아니라 내가 거의 잘 모르는 아일랜드 이민자 네 명(엄마의 조부모 네 명)에게 온 초청장이었다. 핏줄, 뿌리 등의 관습적 의미에 따르면, 아일랜드라는 내가 잘모르는 나라가 내 나라였다.- P29
내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어떻게 보자면 여행 그자체였다. 사람이 한 번에 온전히 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편의적 픽션이고, 여행문학은 그 픽션을 수호하는 장르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한 종족이 처음부터 한 장소에 있었다는 생각은그 종족의 신화 혹은 그 종족의 이상일 뿐이다.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대개 혼혈이고, 강제 이주라는 돌발적, 폭력적 상황을 겪으면서 조상의 과거를 일부 상실하기도 하고 미국의 지배적 문화를 다수 채택하기도 한 사람들이다.(미국의 문화 자체가 유럽에서 온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뒤섞인잡종 문화다.) 우리는 한 번에 두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개의 경우 최소한 두 곳에 있다. 그 두 곳이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항상 한 번에 여러 곳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유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다호의 동굴을생각하면서 영국의 감옥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뉴펀들랜드로 짐작되는 곳의 상공을 날면서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었다.- P31
더블린은 아일랜드 안에 있으면서도 아일랜드와는차이가 있다. 아일랜드공화국의 350만 인구 중에 4분의 1 이상이 이 차이를 공유하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아일랜드에서 더블린이라는 도시는 실로 다르다. 아일랜드에서 도시는 더블린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블린을 뺀 나머지 아일랜드에서는 아직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농경시대의 고요한 운명론이 생활의 속도를 지배하는 것 같고, 촉촉한 녹색의 풍경이거의 어디나 펼쳐져 있다. 관광객에게는 그림 같은 광경이고, 원주민에게는 고립적 환경이다. 대학교 때 읽은 아일랜드 역사책에 켈트족은 "읍내(town) 개념을 모르는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나오는데, 이 나라의 다른 인구 밀집 지역(리머릭, 골웨이, 코크)은 지금까지도 읍내가 좀 커진 느낌이고,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이 아직 농촌 인구로 간주된다. 혼잡하고 번화한 명실상부한도시는 더블린 하나다.- P36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다. 관광객에게서 순례자의 메아리가울리기도 한다. 물론 세속의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더 변덕스럽다. 예컨대 태양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특정한 지형이나 기후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축제를 찾아다닐 수도있고 과거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은 묘한인종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과 묘미는 그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P49
불공평과 불의, 흙과 똥에 대한 스위프트의 깊은 관심에는 성 패트릭 대성당 동네라는 글자 그대로의 기반(ground)이 있었다는 것이 문학사 연구자 캐럴 패브리컨트(CaroleFabricant)의 지적이다. 문학사는 스위프트를 영국 작가로 분류하면서 그의 염세, 그의 분노, 육체의 비교적 역겨운 측면들에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개인적 기벽 또는 정신질환의 징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런 테마들을 선택했던 데는 근거(ground)가 있었다. 스위프트의 냉혹한 반(反)낭만주의에 아일랜드 빈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생활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은 그의 친구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의 꾸밈 많은 시에 영국 시골저택에서 하인을부리는 생활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와 묘한 관계였다. 그는 "아일랜드에 살아야 하는사람은 불행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진정 불행하다고 하기- P55
는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자유인들 사이에서 노예로사느니 차라리 노예들 사이에서 자유인으로 살겠다."라고 말하면서 런던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하기도 했다. 크롬웰 이후에 아일랜드로 건너온 조부모를 둔 그가 영국인인가 아니면 아일랜드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확연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욕망과 정치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둘 다였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일 듯하다. 나고 자란 곳은 아일랜드였고, 청년기를 보낸 곳은 영국의 문학적, 정치적 동인사회였고, 인생 후반기를 보낸 곳은 고향 아일랜드였다. 어느나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안락과 양심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던 그는 어느 나라에 있든 다른 나라 사람 같은 데가 있었던 것 같다.- P56
영문학 그 자체가 영국 시골저택 같다. 영국 문학은고색창연한 중앙 건물이고, 영어권의 다른 문학들은 헛간이나신축 부속 건물이다. 서사시, 서정시 소설은 중앙 건물의 중심공간을 차지하는 익숙한 가구들이고, 에세이는 사이드 테이블들과 캐비닛들이다. 내가 영문학 전공생일 때 읽은 교과서들을보면 아일랜드 문학도 섞여 있었지만, 가장 비중 있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익숙한 작품은 거의 항상 영국 문학이었다. 밀턴은어두운 왕좌였고, 셰익스피어는 파티장이었고, 시드니에서 셸리까지의 소네트는 파티를 장식하는 부케였고, 영국 소설은 커다랗고 희고 푹신해 보이는 깃털 침대였다. 반면에 스위프트의작품은 통로에 놓여 있는 딱딱한 의자이고(그곳에 앉으면 벽면의틈새를 통해서 바깥의 전망이 보인다.), 조이스의 작품은 하인의 방에 걸려 있는 거울이다.("금이 간 하인의 거울"이 "아일랜드 예술을 상징"할 수 있다는 스티븐 디덜러스의 말은 거울의 예속된 상태를 암시할 뿐아니라 거울에 비치는 균열된 모습, 의외의 모습을 암시한다.) 물론 조이스는 밖으로 나가서 새 집을 지은 작가였고, 그 집에 들어가보면 더블린을 기리는 기념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P57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관습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관습, 언어의 관습, 전통의 관습을 모두해체한다. 그중에서 『걸리버 여행기』와 『율리시스』는 각각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처음과 끝이다. 스위프트는 더블린을 망명지로 삼은 아일랜드인이고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망명자가 된 아일랜드인이지만, 어쨌든 두 책 다 조롱과 망명과 방랑의 책이다. 최초이자 여러 의미에서 최고의 실험적 영국 소설인 『트리스트럼 샌디』는 아일랜드 태생의 성직자 로런스스턴(Laurence Sterne)이 1759년에서 1767년 사이에 펴낸 작품이고, 요크셔 지역의 습지와 동일시되다시피 하는 브론테 자매도 아일랜드인 아버지의 격정적인 아일랜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브론테 자매는 자기만족적인 빅토리아 소설 속에 음울하고 폭력적인 요소들을 들여왔고(깃털 침대 한복판의 뱀장어들), 이어서 와일드, 조이스, 싱, 쇼, 베케트도 놀라움을 안겨주는 여러요소들을 들여왔다. 좀 더 복잡하고 좀 더 신랄하고 좀 더 위태로운 상상력이야말로, 문학 형식들이 자의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런 문학 형식들을 전복할 기회를 좀 더 예민하게 인지하는감수성이야말로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특징인 것같다.- P58
하지만 스위프트는 18세기에 이미 이런 종류의 지도 개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프트 자신이 속해 있는 우아한 사교계가뒤에서, 밑에서,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까발려주는 작업이었다. 유머 그 자체가 이중적 시야를 갖는 방법, 당위와 실상의간극을 감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위와 실상의 간극은 논리,
언어 등의 형식 요소에도 존재하고 사회생활, 정치생활의 위선에도 존재하는 만큼, 유머라는 동력은 단순한 농담에서도 작용할 수 있고 장문의 풍자에서도 작용할 수 있다. 스위프트의 시에서 유머가 고상함과 저속함을 끊임없이 오가는 데 있다면, 그의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에서 유머는 식인을 아일랜드의 빈곤에 대한 합리적 해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착취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식인과 다르지 않음을 까발리는데 있다. 유머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기성 질서의 수혜자들이었고, 유머는 언제나 그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놀이이자 연장이자 무기였다. 더블린에서 바라본 세상은 비극적, 영웅적, 감상적일 때가 많았지만, 뼈 아프게 웃긴 경우도 있었다.- P59
이제 그들에게 가축의 세계는 인간의 속성을 묘사할 능력이 없는 세계였고, 엄한 통제라는표현은 점점 무의미해지는 표현, 머잖아 멸종할 표현이었다.(나는 최근에 말을 타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당근(carrot)과 보조 막대(stick)를 사용해본 다음에야 비로소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장소들, 이런 존재들과 접촉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영어는 마침내신어(newspeak)‘로 전락하지 않겠는가는 우려도 생긴다. 노새(mule)의 발길질(kick)에 얻어맞아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벌 떼가 직선 코스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언어가 공허해진다는 것은 상상력이 공허해졌다는 징조가 아닐까? 자연사박물관은 언어, 상징, 메타포, 상상력의 박물관, 한때 우리의 삶 속에서 서식했지만 이제 우리의 언어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는 피조물들의 박물관이다.- P75
메타포는 장소의 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petapopk)에서 온 단어인데, 아테네에서는 대중교통편을 메타포라고 부른다. 다른곳에서는 메타포가 그저 상상의 여행을 도와주는 비유법일 뿐이지만, 아테네에서는 메타포를 타고 일하러 갈 수도 있고 마지막 메타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어쨌든 메타포는생각을 태우고 가는 차량, 아니, 생각을 통해서 별개의 두 존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다만 메타포의 이런 연결은 직관적, 심미적 연결이며, 그런 의미에서 메타포는 생각의 본질, 곧 기계로는 수행될 수 없는 인간적 생각의 본질이다. 메타포는 이 존재와 저 존재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가늠할 통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아찔할 정도로 다양한 동시에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를 그려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메타포가 사라진다면모든 것이 무서울 정도로 형체가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런 세상은 우리와 너무 똑같아서 지겨운 곳, 아니면 우리와 너무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느껴질 것이다. 메타포는 동물(우리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동시에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P76
‘인간의 입에서 말이 나오게 한 최초의 힘이 감정이었듯, 인간의 입에서 나온 최초의 말은 비유였다. 비유가 오히려 최초의 언어였고, 본질적 의미가 오히려 최후의 부산물이었다.‘ 최초의 은유가 동물의 은유였다면 그 이유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은유 관계라서였다. [.....]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할 때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말이 그저 대상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무관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언어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런데 최초의 상징이 바로 동물의 상징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였다는 뜻이다.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creation)이다. 세계라는 신의 창조물(Creation)의 희미한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라는 인간의 창조물은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세계로 거듭 되돌아가서 새로운 힘과 새로운 색을 거듭 되찾아와야 한다. 언어라는 창조물을 세계라는창조물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자연계(풍경, 육체, 동물계)와 접촉할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메타포다.- P77
마지막 진열장 앞에서 진화의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때 나무 위의 유인원이었던 존재가 숲에서 나와서 이족 보행이라는 힘겨운 여정에 오른다. 시선은 처음 보는 먼 지평선에 닿고, 자유로워진 두 손은 붙잡을수 있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입에서 나온 소리가 탁 트인 들판에 울려 퍼진다. 그런 상상이었다. 진열장 천장에 매달린 머리를 보면 하늘에 속한 존재, 날개를 얻어서 지상에서 더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았지만(두 발 짐승은대개 날개가 있다.). 바닥에 닿은 두 발을 보면, 지상으로 돌아와야하는 존재, 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았다. 씻지 못한 몸의 찝찝함과 시차로 인한 피곤함 사이에서 인간의 해골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인간의 직립은두 가지 상반된 소망의 증거인 듯했다. 새도 되고 싶고 나무도되고 싶다, 떠돌고도 싶고 머물고도 싶다, 뿌리를 내리고도 싶고 날아가고도 싶다, 머물러 있을 때는 어디론가 날아가고만 싶고, 떠돌고 있을 때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만 싶다. 그런 소망이었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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