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우리는 너무 떨어져 살아서 만날 때마다 방을 잡았다.
그 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파티를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면 한 사람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그 방 창문을 나는 한 번쯤 올려다보았다.
2023년 9월
김소연
흩어져 있던 사람들
선생님 댁 벽난로 앞에서 나는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 사과를 깎았고 누군가
허리를 구부려 콘솔 위의 도자기를 자세히 보았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타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갔다 누군가 창 앞으로 다가가
뒷짐을 지고 비를 올려다보았고 누군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뭘 보는 거야?
비 오는 걸 보는 거야?
선생님 댁 벽난로에서 장작 하나가 맥없이 내려앉았다- P9
다 같이 빗소리 좀 듣자며 누군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때 말벌 한 마리가 실내로 날아들었다
누군가 저것을 잡아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모두가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처마 밑에 벌집이 있는데요?
119를 불러서 태워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선생님을 처마 아래로 불러 세웠고 누군가는
날아다니는 말벌만 쳐다보았다
겨울이 되면 말벌이 떠나고 빈집만 남는댔어
가만히 기다리면 적의 목이 떠내려온다구- P10
선생님 댁 벽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옆에 와 앉으며
말벌의 독침은 연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옆에 다가와서 누군가는 어린 시절 벌에 쏘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2층으로 올라가서
벌집을 들고 내려왔다 이건 작년 겨울에
처마 밑에 있던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저 벌집도 내 차지야
벌집은 정말로 육각형이었다
까끌까끌했지만 보석 같았다- P11
근데 말벌은 어디 있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벌집을 에워
싸며
처음으로 가까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다
말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선생님은 2층에 벌집이 하나 더 있다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