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길 위에서

여행은 마음의 발걸음이기도 해서, 다른 장소에 가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 여행에서 내 마음의 발걸음도 한번 뒤따라 가보고 싶었다. 내 주관적, 개인적 경험을 적어나갔지만 내 평범한 삶을 미화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의 땅을 걸어가는 것이 어떻게 마음의 구석진 곳들을 탐험하는것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내 경험을 이용한 것뿐이었다. 이 책의 장르는 통상적 의미의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을 계기로 구상되고 배열된 연작 에세이다. 이 책의 글 한 편 한 편이 다양한 모양의 구슬이라면 이 책의 계기가 된 여행은 그 글들을 한데 엮는 실이었다. 글마다 소재(여행지 풍경과 여행자의 정체성, 기억하는 내용과 기억에서 사라지는 내용, 상수와 변수)가 다르지만, 여행(내가 떠났던 수수한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다른 많은 여행들이 공명했던 과거의 모든 위대한 여행들이기도 하다.) 자체는 이 책으로 엮인 모든 글의 소재였다.- P7
조이스의 『율리시스』 끝부분에 나오는 몰리 블룸의 독백이 잘포착한 것으로 유명한 의식의 흐름은 내적 자아로의 귀환이다.
내가 다른 나라라는 미지의 영토로 떠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중 하나 또한 그 내적 자아라는 연상의 영토를 탐험하는 것이었다.
여행자가 가장 여행하기 어려운 풍경은 여행자에게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풍경, 곧 여행자 자신의 생각 속에 녹아 있는 풍경이다. 자아의 두 번째 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은풍경이 마치 모기들처럼, 아니면 갑옷처럼, 아니면 향수처럼, 아니면 눈가리개처럼 자아를 에워싸고 있다. 내가 마음의 발걸음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내적 경험이라는 겹을여행에 포함시키는 것, 그리고 이로써 여행수필(travel writing)의 관행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 P9
브렌다는 철학의 역설을 수집, 편찬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었고나는 온유에 관심이 있었으니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서 어떤 친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몇 가지 정의를 찾으면서 행복해한 것은 그 전날에 스네이크 강가를 산책하며 얼어붙은 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였고, 그렇게 찾아낸 정의들을 함께 정리해본 것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으로 브렌다가 만든 토마토 커리를 함께 먹으면서였다.(브렌다는 지식욕이 왕성한 만큼 식욕도 왕성한 미인이었다.) 나의 은유와 브렌다의 역설은 한 번에 두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데가 있었다. 모종의 종점에 가닿고 싶어 하는 철학은 결국 한 곳에만 있으려는재미없는 시도가 아닐까. 비유가 아닌 진리, 곧 진리 그 자체는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소실점 같은 것이 아닐까, 끝나는 곳은시작하는 곳과 마찬가지로 신화적 장소가 아닐까, 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P21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