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예술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것이 아니다. 대상과 마주해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기뻐하는 감성을 환기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지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는데, 이제는 코로나 사태까지 덮쳤다.
대면 수업은 불가능하고 많은 미술관, 영화관도 폐쇄됐다.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작품을 감상한 뒤 소감이나 의견을나눌 수 없게 됐다. 이런 식으로 ‘예술‘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어느 동료 교수(소설가이기도 하다)가 교육에는 ‘육감‘과 ‘육성‘이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정말이지 그렇다.
그렇긴 하나 나는 D군의 리포트에서 다소 위로를 받았다. D군은 위에 인용한 글을 다음과 같이 이어 나간다. "만약 내일이 세상이 끝나 남은 24시간을 좋아하는 데 써도 된다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싶다. 그리고 미술관에 가서 르네상스 시대의 정열적인 작품들을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싶다."- P406
"지금 또다시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지난 9월 11일 일본 펜클럽에서 발표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긴급 메시지‘는 이 한 문장으로 끝맺고 있다. 얼마나고독하고 두려운 일인가. 나는 난처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도늘 수심에 차 있던 그의 표정을 떠올린다. 자신이 인터뷰한 수백명의 ‘작은 사람들‘(서민)이 그랬듯, 그 자신이 끝없이 이어지는고난과 고뇌 속에 있는 것이다.
나와 그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두 차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위해 대담을 했다. 첫 번째는 2000년 <파멸의 20세기-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서경식>), 두 번째는 알렉시예비치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듬해인 2016년 (<마음의 시대‘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서>)으로, 이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지를 함께걸었다.- P409
2016년의 대담 때 알렉시예비치는 이야기에 열중하다 그만약 먹는 시간을 놓쳐 고통스러운 듯 대화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했다. 지병을 앓던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런 그의 문을 지금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두드리고 있다. 나는 만년을 나치의 압박과 감시 아래 보내다가 나치 독일의 항복 직전에 고독하게 병사한 여성 예술가 케테 콜비츠를 연상하기도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지금은 벨라루스 펜클럽의 회장이자 루카셴코 정권을 비판하다 탄압받고 국외로 피신한 야당 후보자와 시민 단체 대표들이 설립한 ‘조정평의회‘라는 조직의 간부이기도 하다. 9월 9일 발표된 그의 ‘긴급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P410
"이제 ‘조정 평의회‘의 간부회에는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벗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모두 옥중에 있거나 국외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지막 한 사람 막심 즈나크가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나라를 탈취하더니 지금은 우리의 가장 좋은 사람들을 강탈해 가고 있다. 그러나 강제로 앗아 간 동료들 대신에다른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들고일어난 것은 ‘조정 평의회‘가 아니다. 나라가 들고일어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 끼인 벨라루스에서는루카셴코 대통령의 강권 정치가 1994년 이래 26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국내 출판을 금지당하는 등 언론·사상의 자유도 제한되었다.- P410
유럽행 비행기가 우랄산맥을 넘어갈 때면 눈 아래로 평탄한 숲의 바다가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나는 그 숲의 바다가눈앞에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끝없는 고뇌의 수해樹海다. 당장 20세기에 독소(독일-소련)전쟁의 주된 전장이었던 그곳에서는 마을들이 불타고 무수한 사람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유대인 주민에 대한 학살도 있었다.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 TimothySnyder는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북으로는 발트 3국,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블러드랜드‘(유혈지대)라 명명했다.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 알렉시예비치의 저작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걸로도 부족한가‘ 하고 말하듯 가득 들어차 있다.
2016년의 대담이 끝나갈 즈음 나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100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합니다. 나는 거기에 경외심을 느낍니다. 이념이나 이상을 단념한 다채 이익이나 욕망만 추구하는 상황이 러시아에서도,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계속되고 있는데,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미래를믿는지요?"
그는 말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갈 길이 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나의 답입니다.- P412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작은 일을 해 나가며 선한 쪽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히 말해 나는 그의 이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늘 "선한 쪽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과 벨라루스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지금 만일 그 사람들이 절멸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희망 자체의 절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렉시예비치의 메시지는 끝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나는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오랜 관습에 따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어째서 당신들은 침묵하는가? 지원의 목소리가 좀체 들려오지 않는다. 작은, 긍지 높은 국민이 짓밟히고 있는 것을 보고도 어째서 침묵하는가? 우리는 지금도 당신들의 형제인데 말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합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째서 당신들은 침묵하는가?"라는 물음은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에게만 던져져 있지 않다.- P413
아. 세계는 얼마나 무자비한가. 나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연대의 뜻을 전하는 짧은 메일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극동의 땅에 무력하나마 당신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가 있다. 그것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F도 연대의 메일을 보내도록 힘을 실었다.
미얀마, 벨라루스, 홍콩....... 손 닿지 않는 세계 곳곳에서, 서로 만날 수도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고뇌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고뇌에 ‘공감compassion‘하는 이는 해결되기 어려운 고뇌를 떠안고, 자신의 심신마저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감‘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공감‘하게 되는 게 인간이 아닐까. ‘연대‘하려 하는 게 인간이 아닐까. 그런 정신의 기능까지 포기할 때 ‘비인간화‘가 완성되고 ‘전염병‘이 개가를 올릴 것이다.- P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