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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4일 부산의 피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이던 1962년에 가족을 따라 하와이로 이주했다. 2년 후인 1964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UC버클리에서 비교문학과 미술을 공부했다. 이때 한국 현대시를 비롯하여 유럽의 모더니스트 작가들을 많이 탐독했는데, 그중에서도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스테판 말라르페,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을 즐겨 읽었다. 그리고 "프로듀서, 감독, 연기자, 비디오와 영화작가, 공간설치예술가, 공연과 출판문학가" 라고 자평할 만큼 전방위적인 작품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197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영화 이론을 공부한 뒤, 1980년 뉴욕으로 가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친구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작가 및 편집자로 일했다. 1979년 말에는 한국을 떠난 지 18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으며, 1981년 다시 방문해 기획 영화 「몽골에서 온하얀 먼지 촬영을 남동생과 같이 시작했다.
그러나 31세이던 1982년 11월 5일,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사진작가 리처드 반스와 결혼한 지 6개월, 그의 첫 책 『딕테』가 출간된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육신보다 더 적나라하고, 뼈대보다 더 강하며,
힘줄보다 더 질기고, 신경보다 더 예민한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사포
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 저녁 식사 때 쉼표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따옴표 닫고 적어도 가능한 한 최소한의 말을 하기 위해 쉼표 대답은 이럴 것이다 따옴표 열고 한 가지밖에 없어요 마침표 어떤 사람이 있어요 마침표 멀리서 온 마침표따옴표 닫고- P11
그녀는 말하는 시늉을 한다. 말과 비슷한 것을 무엇과 비슷하다면.) 노출된 소음, 신음, 낱말들로부터 뜯겨 나온 편린들. 그녀는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주저하기 때문에, 입으로 흉내 내는 짓을 할수밖에 없다. 아랫입술 전체가 위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는다. 그러곤 그녀는 두 입술을 모아 뾰족이 내밀고 무엇을 말할듯. (한마디. 단 한마디.)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숨이 떨어진다.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어깨에 힘을 모아 이 자세로 남아 있는다.- P13
오 뮤즈여, 나에게 이야기해주소서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오 여신이여, 제우스의 딸이여
원하시는대로 어디에서든지 시작해, 우리에게까지도 이야기해주십시오.- P17
유관순

출생: 음력 1903년 3월 15일
사망: 1920년 10월 12일 오전 8시 20분

그녀는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P35
그녀는 삶의 시간을 완성시킨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완성시켰듯이 그들은 자신의 생애를 끊이지 않는 신화로 만들었고, 역사의 재고에 따라 자신의 행적이 거짓이나 진실 중 어느 것으로 판명될지 따져볼 여유도 없이 그들의 행동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다.


진리는 그 자체 외의 모든 절제를 진실과 함께 포용한다. 그 밖의시간, 그 밖의 공간, 자체의 시간의 유유한 광휘, 죽음의 유유한 표식을 상관하지 않고, 다른 삶들과 병행한다. 그 자체에게는 전혀 모르게. 그러나 노래하기 위하여. 누구에게 노래하기 위하여, 아주 부드럽게.- P38

그녀는 잔 다르크 이름을 세 번 부른다.
그녀는 안중근 이름을 다섯 번 부른다.


국가가 없는 민족은 없고, 조상이 없는 민족은 없다. 아무리 영토가 작다 해도 자주성을 지킨 나라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일본에 그것을 빼앗겼다.
"일본은 즉시 의회를 창립했다. ‘그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천황의 이름으로, 이 의회는 처음에는 날마다 열렸는데, 후에는 더 긴 기간을 두고 열렸다. 서울에는 50명이 넘는 일본인 고문들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경험 없고 책임은 더욱 없는 남자들이었으며 그들은 하루 해가 떠서부터 질 때까지 그사이에 한국을 변형시키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P38
관순은 애국자 아버지 어머니의 네 자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의 행동은 남달랐다. 역사는 그녀의 짧고 격렬했던 삶의 전기를 기록한다. 그녀의 행동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역정과 갈라놓는다. 그러한 인생 역정의 정체성은 역사 속의 어느 다른 여성 영웅들과 바꾸어도 상관없다. 그들의 이름, 시대, 행위들은 관대함과 자기희생의 헌신으로 따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
관순이 16세 되는 해, 1919년, 한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일본의 음모는 명성황후와 그의 왕족들을 암살함으로써 성취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관순은 동료 학생들과 함께 항거 단체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혁명운동을 시작한다. - P40
이미 민족적으로 조직된 운동 단체가있었는데, 그들은 관순의 진지함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린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그녀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를 설득해 단념시키려고 했다. 그녀는 용기를 잃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적 대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그녀는 40여 군데의 마을을 도보로 여행하며, 천명을 받은 사신의 역할을 해냈다. 이날은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이날의 시위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지배에 항거한 최대 규모의 시위였으며, 그들은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네 자녀 중의 외동딸인 그녀는 다른 형제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P40
삶을 완성해나갔다.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아버지 그녀의 오빠들.


"나는 네 곳에서 적군과의 교전을 보았다. 한 곳에서는 일본이 다섯 명의 사상자와 함께 후퇴한 무승부 전쟁이었다. 다른 세 곳에서는 장거리 총과 우세한 탄약으로 인해 일본이 승리했다. 그중 사상자 없이 이긴 곳은 단 한 군데였다. 일본인들에게 이것이 단순한 소풍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보았다."
"산도적에 불과한 이 남자들은 도대체 누가 지휘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전쟁 방식은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미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해낸 것 같다. 이것이 그들의 목표인가? 아니라면, 왜 그들은 이다지도 악랄하고, 광적인 정책을 실행하는가? 공권력으로 하여금 호의를 잃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정당하게 순찰하거나, 아니면 한국에 대한 통치에 있어서 무능력함을 고백하라!"- P41
‘원수‘. 누구의 적, 적국, 전체 민족에 대항하는 또 다른 민족 전체.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제도화된 고통을 즐거워한다. 적은 추상화된다. 그 관계는 추상화된다. 그 민족, 그 원수, 그 이름이 그 자신의 정체성보다 더 거대해진다. 그 자신의 크기보다 더 커진다. 자신의 속성보다도 더 커진다. 자신의 의미보다도 더 커진다. 이 국민에게는 그들의 원수인 국민들에게는, 그들의 통치자의 지배와 통치자의 승리인 국민들에게는.
일본은 기호가 되었다. 알파벳, 어휘, 
이 원수의 민족에게. 그것의 의미는 도구이며, 살갗을 찌르고, 살을 저미는 기억, 기록으로 남아있는 낭자한 피, 물리적 실체인 피의 양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적으로 남아 있다. 이 원수 민족의.- P42
목격해보지 않은 민족은, 이와 같은 억압으로 지배받아보지 않은민족,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 특수 용어들: 원수, 악랄, 정복, 배신, 침략, 파괴, 그것들은 다만 한 적대 국가가 다른나라의 인간성을 말살시켰다는 명백하고도 어김없는 기록, 즉 역사적 기록에 대한 커다란 지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실로 실체적이 못 된다. 살과 뼈로 된, 골수까지, 각인된, 개입이 필요한그 지점까지, 이 경험을, 이 결과를, 표현을, 새로 발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하기를 그치지 않는 그것과는 다르다.
다른 민족에게는, 이 이야기들은 (또 하나의) 먼 땅, (다른 어떤)먼 땅과 같이, 이야기에 나타나는 아무런 특징도 없이, (다 똑같이)- P42
다른 어느 것과 마찬가지로 멀리 들릴 것이다.
이 기록은 전달된다. 똑같은 수단으로, 아무런 특징 없이 같은 경로로 같은 양식으로 전달되어 알려진다: 그 말. 그 영상, 대중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여 단조롭고, 속되게 만들어버린다. 그들의 연출이 아무리 매혹적이라고 해도 더 이상 그들 자신의 공모의 수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응은 미리 정해져 있다. 아무리 수동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무반응을 성취하기 위해, 흡수시키고, 일방적 소통에 순응시키기 위해 중화되어 있다.
왜 지금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는가. 과거로부터 역사를, 그 오랜 상처를 지난 감정을 온통 또다시. 그것은 똑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지금 그것을 불러일으켜 잊힌 역사를 망각 속에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말과 영상 속에서 또 다른말과 영상을 조각조각 끄집어내어, 잊힌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P43
1919년 3월 1일. 모든 사람들은 자신 속에 나라의 국기를 지니고 다닐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이 행동에 따른 처벌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행진이 시작되고, 태극기는 꺼내져, 보이고, 물결치고, 개인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부르짖는다. 이에 따른 처벌을 잘 알면서도 앞장서서 행진하던 그녀의 부모가 쓰러졌다. 그녀의 오빠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적의 군대가 무차별하게 휘두른 칼에 찔렸다. 관순은 혁명의 지도자로 체포되고, 거기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녀는 칼로 가슴을 찔리고, 문초를 받지만 아무 이름도 밝히지 않는다. 7년의 형이 내려지고 그때에 그녀의 대답은 나라 자체가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어린 혁명가 어린 애국자 여자 군인 민족의 구원자. 영원히 기억될 한 행위. 한 존재의 완성이다. 한 순교. 한 나라의 역사를 위한, 한 민족의- P47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모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시간이 멎는다. 시간은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는 멈추어 준다. 그들을 위해 특별히, 영원의 시간. 나이가 없는 시간은 일부 사람들을 위해서 고정된다. 그들의 영상, 그들의 기억은 쇠퇴하지 않는다. 자신을 재생산과 번식으로, 영혼으로부터 추출되어 잡힌 이미지와는 달리, 그들의 면모는 성스러운 아름다움, 계절의 부패를 모르는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며, 피할 수 없는 것이나, 죽음도 아니고 죽는것 자체를 상기시킨다.- P47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대보면, 그것은 빠져 있다. 그것이 빠져 있다. 여전히. 시간은 어떠한가.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에 머물러 있다.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시간이 말이다. 나머지 모든 것, 모든 나머지 것들. 모든 다른 것은, 시간에 지배된다. 시간에 대답해야 한다. 다만, 사산된. 무산된. 겨우. 영아. 씨, 씨눈, 새싹, 그보다도 못한 잠자고 있는 정체되어 있는, 사라져버린.


목이 잘린 형상들. 낡은. 흉진, 이전의 형상의 과거의 기록, 현재의 형상은 정면으로 대면해 보면 빠진 것, 없는 것을 드러낸다. 나머지라고말-해-질, 기억. 그러나 나머지가 전부다.


기억이 전부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열망, 빠진 것을 지킨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부정의 사이에 고정되어 진보의 표시라고는 보이지않는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다. 단지.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없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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