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는 심하게 외로웠고 별로 활기도 없었다. 나는미술을 할 때, 나중에는 시를 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생기를 되찾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왜냐하면 내 육체가 비물질화되고, 내 정체성이 떨구어지고, 내가 다른 삶을 사는것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모든 글이 이 자유를 인증했다. 존 키츠에 따르면 시인은 "정체성이 없다 - 시인은끊임없이 어떤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그 사람의 역할을 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문학은 모든 주체가 피해 가는 그 중립자,
그 합성물, 그 모호성이며, 글을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비롯하여 모든 정체성이 실종되는 덫이다".- P67
그러나 시집을 내고 시인으로 데뷔하자, 내가 무슨 글을 쓰든지 아시아 여성이라는 내 정체성을 결코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육체의 개입이 없더라도 저자로서의 내 정체성은 귀신처럼 독자에게 내 목소리가 도달되는 강도와 범위를 제약했다. 내가 독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얼마나순진한가! 휘트먼 작품 속의 나가 다중을 담고 있다면, 내 작품속의 나는 이 나라 인구의 5.6퍼센트를 담고 있었다. 가슴으로 진정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라면 뭐든지 써도 좋으나 기왕 아시아인이니 아시아인에 관한 주제를 꾸준히 다루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독자, 스승, 편집자 등이 여러 방식으로 내게 조언했다. 아시아인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예컨대 자연에 관해서 쓰면 자연에 관해서 쓰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할 테니 내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P68
시인 프라기타 샤마가 말한 대로, 미국인은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기한을 정해놓고 하듯 인종에 관해서도 유효 기간을 설정한다. 미국인들은 일정 기한이 지나면 우리가 인종 문제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비록 나는 회의적이지만, 이 기회에 우리가 미국 문학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동으로 규정하는 낡은인종 서사, 우리의 삶을 백인 청중의 구미에 맞추면서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다양한 현실을 삭제해버리는 낡은 인종 서사를 갈아치우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어진 공식에 따라 우리 자신을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P75
지난 20년 동안,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줌파라히리의 작품들은 아시아계 이민자는 순응적인 노력가라는 환상을 지탱하는 인종적 소설의 전형이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독자를 몰입시키는 이야기꾼인 라히리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이민자의 삶에 대한 "단일한 이야기"로 포지셔닝했던 출판업계의 잘못이다. 라히리는 문화적 차이를 찾는 백인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딱 적당할 수준으로 편안한 인종적소품을 이용해 무덤덤하고 억제된 어조로 글을 썼으며, 작품속 인물들은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고 그저 행동한다. "나는..은행 계좌를 트고, 우체국 사서함을 빌리고, 울워스 마트에 가서플라스틱 그릇 하나와 수저 하나를 샀다." 라히리 작품에 나오는 인물은 언제나 절제되고 그 어떤 내면 지향성도 회피한다.
이것은 제인 후가 『뉴요커』 기고문에서 지적한 대로 독자에게- P75
아시아성(사실 남아시아보다는 동아시아적 성격)을 암시하는상당히 전형적인 문학적 정서가 되어버렸다.
라히리의 단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에서 주인공은 콜카타에서 보스턴으로 이민 와 집 주인인 백인 할머니와 함께사는데, 할머니는 그를 어린 소년처럼 취급한다. 주인공은 그런 구식 인종주의에도 개의치 않고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고 그들은 암묵적으로 문화적 이해에 도달한다. 나중에 주인공의 아내가 보스턴으로 와서 합류하고 그들은 놀랄 만큼 쉽게 동화하게되며 "우리는 이제 미국 시민이야" - 아들은 자라서 하버드대학에 입학한다.
라히리의 소설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라는 문예창작 과정의 교리를 대체로 잘 따르고 있다. 그렇게 하면 독자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체험하면서도, 수전 손택이 말한 대로 자신의 특권을 등장인물의 고통과 "동일한 지도" 위에 위치 매김하지 않아도 된다. 등장인물의 내면적 생각이 제거되었으므로 독자는 빈번한 사견 개입에 방해받지 않고 등장인물의 의식이라는 조종석에 앉아 영화 보듯 등장인물의 시각을 체험할수 있다.- P76
물론 유색인종 작가는 인종적 트라우마를 이야기해야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너무나 오랫동안 백인이 상상하는 대로 구성되어왔다. 출판업계는 작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사적인것으로 간주하기를 기대한다. 즉 등장인물이 특이한 가족 관계나 역사적 비극에 의해 시험에 들었다가 결국 자기 긍정이라는 계시에 도달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작가가 트라우마의 배경을 머나먼 고국 땅이나 고립된 아시아계 가족 내부로 설정하여, 그들의 아픔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정학이나 미국 내 인종주의에 대한 새삼스러운증거가 아님을 확실히 해두는 작품이 많다. 그들에게 고통을주는 외부적 요인은 -가부장적인 아시아인 아버지, 과거 시대의 백인들- 독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충분히 멀찌감치 설정한다.- P77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 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 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 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P95
퀴어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퀴어 아동이 어떻게 옆으로(sideways) 자라는지" 적으면서, 퀴어의 삶이 흔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말한다. 스톡턴은 유색 인종 아동 역시 옆으로 자라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도 퀴어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백인 아동이라는 모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어린시절을 옆으로 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어린 소녀가 내 시선을 피해 숨으면서 나의 기억들을 깜박거리는 환상의 그림자놀이로 유도한다.
옆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것을 함축한다. "곁눈질"은 의심, 의혹, 심지어 경멸을 암시한다. 나는 사춘기 때 학교에서 온갖 성장 소설을 잔뜩 접했다. 교사가 비타민 풍부한 채소처럼강권하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과는 달리, 성장 소설은 우리도 이제 주인공과 공감할 수 있을 연령이니 좋아할 것으로 여겼다.- P101
번스틴에 따르면 인종적 순수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아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상태"로서 "음, 나는 인종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데"와 같은 언급속에 엉켜 있으며, 여기서 ‘나‘는 보는 일을 가로막고 있다. 순수는 하나의 특권이자 인지 장애, 즉 잘 보호된 무지의 상태이며, 일단 이것이 성인기까지 오래 이어지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굳어진다. 순수는 성적인 것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굳이 특정해서 "표시되지 않으며"(unmarked) "자유롭게 본연의 너와 나가 될 수 있다"라는 신념에 기대 사회경제적 위계 속에 놓인 자신의 지위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순수가초래한 아이러니한 결과는 백인이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학자 찰스 밀스는 말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인종적 서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집요하게 상기당하고 그 위치 때문에 심지어 범죄자가 되면 순수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리처드 프라이어가 농담한 대로다. "나는 여덟 살때까지 아이였어요. 그 후 깜둥이가 되었지요."- P108
순수를 뒤집으면 수치심이 된다. 아담과 하와가 순수를 잃었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수치심을 느꼈다". 수치심이란 원숭이의 뻘건 엉덩이처럼 훤하게 노출되었다는 것을 매섭고 따갑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낸 신경증적인 상처다.
수치심을 일으킨 공격자가 내 삶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나는 계속 존재한다고 상상하고 내 그림자를 그자로 착각하여 몸을 움츠린다. 수치심은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같아서, 집밖으로 잠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수용체가 자극받아 나는 반응한다. 체면을 잃는 것과는 다르다. 수치심은 내 얼굴을 깔고 앉아버린다.- P109
사람들은 흔히 수치심을 아시아적인 속성과 유교적인 명예 체계, 그리고 그와 관련된 불가해한 수치심의 의례와 연결짓지만, 내가 말하는 수치심은 그 수치심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수치심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상호 관계에 영향을 주는 권력의 역학을 뼈아프게 인식하는것이며, 그 서열에서 내가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서 점하는위치를 깨닫고 몸이 오그라들도록 느끼는 치욕이다. 나는 개들이 목에 두르는 수치의 깔때기이다. 나는 남자 소변기에 부착하는 수치의 변기 탈취제다. 이 감정이 내 정체성을 갉아먹어 결국 몸은 껍데기만 남고 나는 하얗게 불타오르는 수치심 덩어리로화한다.- P109
수치심은 나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분리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사르트르가 쓴 대로 "타자가 나를 보는 대로" 나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다 자란 지금에야 나는 어렸던 내가 의도치않게 저지른 불복종에서 유머를 발견한다. 양반다리를 하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에 열중하는 여섯 살짜리들에게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데 얌전하고 어린 아시아 소녀가 난데없이 이야기 중간에 태연하게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간다. 이듬해, 그 얌전하고 어린 아시아 소녀는 포르노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다.
인종주의의 한 가지 특징은 아동을 성인처럼취급하고 성인을 아동처럼 취급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아이처럼 굴욕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깊은 수치심을 유발한다. 우리- P111
부모가 백인 성인에게 무시당하거나 놀림당하는 것을 수없이보았다. 그런 일이 너무 관행처럼 발생해서, 엄마가 어떤식으로든 백인 성인과 상대할 때면 나는 늘 바짝 경계하면서중간에 끼어들거나 엄마를 옆으로 잡아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굴욕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우리는 아시아인은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들어 있다. 근면성을 발휘하면 존엄성으로 보상받으리라 믿고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근면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들 뿐이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 온 나라가 초래한 것이되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아시아인이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은 너무나 은근히 퍼져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남들에 비하면 나쁜 처지가 아니었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종적 트라우마는 누가 앞서고 뒤지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문제는 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례적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 전형적이었다는 데 있다.- P112
시인 바누 카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극우파가 득세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려면 그냥 눈만 감으면 된다. 그리고 내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된다." 친구들도 그 심정에 똑같이 공감했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촉발되었다고했다. 아이들은 잔인하다.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에게 들은 인종차별적인 개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직설적인 방식으로 앵무새처럼 재생한다. 트럼프 행정부 밑에서 요즘 인종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인종주의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 기억의 촉발은 꼭 특정한인종차별 사건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되살린다.
한 오라기의 두려움과 수치심, 동물처럼 바짝 긴장한 경계심같은 것 말이다. 순수한 상태로 향수에 젖어 회귀하는 것이든 불안과 걱정을 갑작스럽게 떠올리는 것이든 간에, 어린 시절은 하나의 정신 상태다. 어린 날의 순수가 보호받고 위안받을때의 정신 상태라면, 어린 날의 불안은 그 사람이 최소한으로만 보호받고 위안받는다고 느낄 때의 정신 상태다.- P113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왔건, 아프가니스탄에서왔건, 한국에서 왔건, 1965년 이후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역사는 미국을 넘어서 각자의 출신국으로 확장된다. 그곳에서 우리의 동족들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이 세우거나 지원한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살상을 겪었다. 미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애쓰느라고 우리는 인생에서 제2의 기회를 선사받은양 황송해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뿌리는 이 나라가 우리에게 부여한 기회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의 자본주의적 확장이 우리의 조국의 피를 빨아 부를 챙긴 방식이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백인 순수의 유아론을 뒤집어, 우리의 국민 의식이 그 이란계 미국인 소년 같은 아이들의 정신과 더 비슷한 모습이 되도록 일조할 작정이다. 그 아이의 정신은 글도 깨치기 전에 벌써 이 나라가 어떤 폭력을 가할 수있는지를 인지하는 무방비 상태의 의식이며, 역사에 시달리는 아이의 의식이 언젠가 다수를 차지할 때 새하얀 이미지들을 퇴색시킬 것이 틀림없다.- P126
나는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지 않을 때면 걷잡을 수 없이 거만했다. 우리 셋 모두 그랬다. 우리는 백인 남성의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자신감은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때 우리는 경력을 쌓는 모든 단계에서 매번 과소평가 당했기때문에 각자 능력을 되풀이해서 증명해야 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전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우정으로 배양된 창의적 상상력에 꾸준히 충실할 수있었으며, 그 상상력은 우리의 불만족스러운 의식의 진실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엄밀성과 깊이에 의해 다듬어졌다. 다른사람은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예술가가 되라고 촉구한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P203
1982년 11월 5일, 그러니까 그해 가을 들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추워진 날에 31세의 미술가 겸 시인 테레사 학경 차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직물 부서에서 사직했다. 그는 하얀앙고라 스웨터에 빨간 가죽 코트를 입고 적갈색 베레모를 썼다. 가죽 장갑도 끼고 양말도 두 겹으로 신었다. 그는 다운타운 행지하철을 타고 허드슨 거리에 있는 비영리 갤러리 아티스츠스페이스(Artists Space)에 가서, 큐레이터 발레리 스미스가 준비 중인 합동 전시회용 사진 작품을 큼직한 서류 봉투에 넣어 제출했다. 차의 사진은 갖가지 손짓을 하는 손을 소재로 했으며, 고대 중국 판화에서 근대 프랑스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에서 얻은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현했다. 스미스는 뉴욕주 대법원에서 증언할 때 차가 피로하고 긴장한 모습이었으며 15분동안 머물면서 전시회 홍보물에 서명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는 차가 아티스츠 스페이스에서 4시경에 떠났다고 했다. 갤러리에서 나가 북동쪽으로 걸어갔다고 했다.- P207
여기서부터 나는 16밀리 영화를 보듯 차를 상상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고서, 판자로 창문을 막은 버려진 주철 건물과 도로 복공판 위를 터덜거리며 굴러가는 구식 쉐보레 카프리스 택시들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그가 입은 가죽 코트의 붉은색이 흐릿하고 뿌연 영화 조명 속에서 바래 보인다. 나는 그가 자신의 책 「딕테』를 교정하며 여러 시간을 보낸 화이트 거리의 태넘 출판사 사무실을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다음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한때 배 돛에 쓰는 천을 짜는 공장이었던 하얀 주철 건물을 끼고 좌회전한다. 그로부터 25년 후 나는 남편과 그 건물에서 임대료- P207
안정화 제도의 적용을 받는 재임대 아파트에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심사한 경연대회에 출품된 시들을 거대한 봉지 두 개에 담아 재활용 쓰레기로 거둬 가라고 그리로 끌어다 놓을 것이며, 그 봉지들은 밤사이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러면 내가 사는 블록은 색종이 가루 흩날리는 축하 퍼레이드처럼 시로 뒤덮일 것이다. 시가 자동차 앞 유리와 청바지 상점 진열장에 붙고, 자전거거치대 주변에 구깃구깃 널리고, 나무 위에 천막처럼 걸리고,
우리 건물 건너편 아파트 정면에서 태극권을 연습하는 중국인 할머니들의 발치에도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시가 없었다.
텅 빈 하역장에 쓰레기만 쌓여갈 뿐이었다.
차는 뉴욕에 지쳐 있어2년 전이- P208
차는 뉴욕에 지쳐 있었다. 그는 개념미술계에 진입하려고2년 전인 1980년에 남편 리처드와 함께 뉴욕으로 이사 왔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미술계는 줄리언 슈나벨, 프란체스코클레멘테, 데이비드 살리 같은 스타 미술가들의 번쩍거리는 전성시대에 평정당해 이미 활기를 잃었다. 오빠 존에게 보낸 1982년 6월 25일 자 서한에서 차는 성공하려면 "도덕의 찌꺼기, 돈, 기생충 같은 실존 상태"를 감수해야 하는데 "솔직히 구역질이난다"라고 적고 있다.
그날 밤 차는 절친한 친구 수전 울프, 샌디 플리터먼 -루이스와 만나 퍼블릭 극장에서 영화감독 듀오 장마리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의 영화 한 편을 감상할 계획이었다. 뉴욕이 불만스럽기는 해도 경력 면에서 슬슬 진전을 보이고있었다. 그는 12월에 열릴 합동 전시회에 참여할 예정이었고, 지난 몇 년 작업한 책 『딕테』도 막 출간된 참이었다. 존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P208
느끼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자유롭다고 느끼고, 또 벌거벗은 느낌도 들어. 원고는 작업할 시간이 없을 때조차 내 몸에서 물리적으로 떠난 적이 없어. 어디든 원고를 휴대했고 그야말로 잘 때도 끼고 잤는데, 이제 완성됐어... 근무 시간과 휴식 시간 사이에, 자는 동안에, 리처드와 말다툼하는 사이사이에, 이 직업, 실업, 가난이 초래한 그 모든 미친 절망감속에서도 일을 조금씩 차곡차곡 진행해서 뭔가 작업이 완성된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깜짝 놀라."
그날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기 전에 라파예트 거리의 퍽(Puck) 빌딩에서 5시에 남편과 만나야 했다. 남편은 그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했다. 퍽 빌딩은 붉은벽돌로 지은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소호 지역의 한 블록을 통째로 차지한다. 9층 높이로 솟은 그 건물은 아치형 창문과 밝은청록색 창틀을 갖추었다. 건물 정면 출입구 위에는 장난꾸러기 아기 요정 퍽이 실크해트를 쓰고 열린 프록코트 사이로 통통한배를 드러낸 모습을 형상화한 금빛 소형 동상이 올려져 있다.
- P209
퍽이 만년필을 지팡이처럼 짚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유유히 응시한다. 일몰 직후에 차가 멀베리 거리 쪽으로 난 퍽 빌딩 뒷문으로 들어가는데 경비원 조지프 산자가 보였다.
내가 최초로 차의 『딕테」를 접한 것은 1996년 오벌린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 과목을 수강했다. 객원교수로 온 시인 명미 킴이 가르치는 과목으로,
나는 그의 지성을 존경했고 그의 시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 P209
킴이 「딕테」를 읽기 과제로 냈는데 나는 딕테』의 내용보다도 그 형식에 더 호기심이 일었다. 분류는 자서전으로 되어 있으나「딕테」는 회고록, 시, 에세이, 도표, 사진을 혼합한 브리콜라주에 더 가까웠다.
지금은 사라진 태넘 출판사에서 1982년에 출간된 『딕테」는 어머니들과 순국자들, 혁명가들과 항쟁들에 관한 책이다. 그리스신화의 아홉 뮤즈의 이름을 따서 아홉 개의 장으로 나뉜 『딕테」는 저자의 어머니가 겪은 이야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대일 항쟁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고문받고 옥사한 17세의 순국열사 유관순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의 잔혹상을 기록한다. 또 다른 장에서는 잔 다르크를 호출하되 프랑스 수녀 성 테레즈드리지외 등 다른 여성들에 의해 재현된 인물로서 그려낸다.- P210
차는 전통적인 서사를 피하고 그 대신 내가 볼 때 일종의구조주의 영화 대본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를 취한다. 장면은 무대 연출처럼 묘사된다. 시는 영화 중간에 들어가는독백처럼 배치된다. 환히 빛나는 하얀 화면처럼 보이도록 영화스틸컷 사이사이에 텅 빈 백지가 삽입된다. 차는 딕테」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번역하거나 이승만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의 맥락을 짚어주거나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 나오는 프랑스 배우 르네 잔 팔코네티의 사진에 설명 붙이기를거부한다. 독자는 나름대로 단서를 연결해 퍼즐을 풀어가는 탐정이 된다.
당시 나는 이래저래 접한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 소설과 시에 공감하지 못했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해 하는 말이지만- P210
작품이 마치 백인 배우에 의해 연기된 듯 진정성이 느껴지지않았다. 혹시 영어가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한테는그게 확실히 문젯거리였다. 영어는 단조여야 할 체험을 장조로 바꾸어놓았다. 영어로 써놓으면 한국어에 서린 친밀감과 우수가 사라졌다. 영어는 내가 어릴 때부터 세관 직원, 위협적인 교사,
홀마크 카드와 연관 짓던 언어였다. 영어를 배운 지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어도 영어로 글을 쓰려면 아직도 빈칸 채우기를하거나 남의 원문을 재인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어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고, 자신의 의식을 결코 진정으로 반영할 수 없고, 하나의 표현 형식인 만큼이나 자신의 의식에 지워진 부담이라는 것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차가 구사한 언어는 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딕테』가 진실하게 다가왔다.- P211
차가 뉴욕에서 경비원에게 강간 살해당했다는 것을 킴의 수업에서 처음 들었다. 킴이 그 이야기를 어떤방식으로 전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 들은 사실관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딕테」를 다시 읽어보거나, 교재로 삼아 가르치거나, 강연회에서 소개하면서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차의 죽음은 내가 ‘딕테」를 읽고 이해하는데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책에 신들린 듯한 예언자적 아우라를 부여했다. 어쨌거나 『딕테』는 폭력적인 죽음을 맞은 젊은 여성들에 관한 책이 아니던가. 내가 강의나 강연에서는 그런- P211
식의 해석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차에 관해 논평하는 글을 쓰면서 나는 차가 강간살해당한 날짜를 확인하기로 했다. 차에 관한 문헌을 뒤지다가 그 범죄를 다룬 문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어쩌다 살해가 언급되는 경우에도 학자들은 간단히 한 문장 정도를 할애해 그것을 불쾌한 사실로 취급하고 넘어갔으며 서둘러「딕테」의 서사적 "불확정성"을 논하기에 바빴다. 더 황당한 것은 차가 강간도 당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 집요하게 그 사실이 누락되어, 나는 차가 정말로 성폭행도 당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판기록까지 들춰봐야했다. 그 사실을 몰랐나? 조심스러워서 그랬나? 살인은 범죄통계쯤으로 둔감하게 인식되지만, 그게 강간이라는 단어와 합쳐지면 여성의 육체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