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테˝를 읽기 전에 ˝마이너 필링스˝를 다시 읽기로한다.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다. 내용을 다 잊어서인가, 새롭게 읽히는 시야탓인가. 모르겠다... 끝까지 읽어보면 알게될까?
「마이너 필링스」는 나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내 나름대로솔직하게 성찰하고 따져본 결과물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수필집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몸 안에 살면서 느끼는 나 자신의 상반된 감정을 가능하면 투명하게 풀어놓고자한다. 또한 이 책은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겪는 세대 간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다룬다. 우리 부모님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오로지 앞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고 무엇이 우리에게 상처나심지어 굴욕을 주었는지 밝혀내지 않으면 진전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겪는 정신 질환 문제를 숨기지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인들은 정신 건강 문제를 수치로여겨서 그것이 개인적, 사회적 치유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P14
마지막으로 이 책은 창의력과 예술 창작에 관해서 다룬다. 나는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항상 지지해주신 부모님을 고맙게생각한다. 부모님은 내가 가려는 길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로 성공해보려고 힘겹게 고투하는 내내 무척이나 필요했던 격려를 보내주셨다.
나는 남들에게 좀 더 이해받고 눈에 덜 안 보이는 존재가되고자 이 책을 썼다. 한국 독자들이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면서 아시아인을 예속시켜온 백인 우월주의의 복잡하고도 견고한 근원을 더 잘 파악하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책 속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7월
캐시 박홍- P15
한 공간에 아시아인이 너무 많으면 짜증이난다. 이 아시아인들을 다 누가 들여보낸 거야? 속으로 투덜거린다. 다른 아시아인들과 함께 있으면 결속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경계선이 흐려지고 한 무리로 뭉뚱그려져서 더 열등해지는기분이 든다.
자기를 혐오하는 아시아인은 내 세대를 끝으로 사라질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가르친 세라 로런스 칼리지의 학생들은 맹렬하여 -자율적이고 정치적 참여도 열심히 하고 똑똑했다- 참 다행이다, 이 학생들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시아인 2.0이다. 고함을 내지를 준비가 된 아시아 여성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그러다가도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가보면 머리만 예쁘게 매만지고 아무 말 없이 생쥐처럼 얌전히 앉은 아시아 여학생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는 닦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너 입 좀 열어라! 안 그러면 저들에게 완전히 짓밟힌다고!- P27
1917년 미국 정부는 이민 금지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 적용했으며, 필리핀은 한때 미국의 식민지였는데도 필리핀 사람들의 이민마저 제한했다.
기본적으로 그런 이민 금지 조치는 전 세계적 규모의 인종 분리정책이었다. 1965년에 미국이 "하급 인종"을 다시 받아들이게된 것은 소련과 이념 경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난한 비서구권 국가에서 일렁이는공산주의의 물결을 막아내려면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법의 이미지를 지우고 재부팅해 미국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해야했다. 해결책은 비백인의 미국 유입을 허락해 직접 실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모범 소수자 신화가 대중화되어 공산주의자들 - 그리고 흑인- 을 견제하는 작업에이용되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 신화를 퍼뜨려 자본주의를 선전하고 흑인 민권 운동을 깎아내렸다. 우리 아시아인은 뭘 요구하지도 않고, 근면하고, 절대로 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차별은없다며, 저들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P42
미국의 인종 구분에서 이 부분이 바로 우스운지점이다. 일본이 한때 한국과 중국의 일부를 식민지로 삼았고2차 세계대전에서 필리핀을 침략했어도 상관없다. 인도와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 유혈 영토분쟁을 일으켰든, 라오스가 베트남전쟁 후 몽족을 체계적으로학살했든, 알 바 아니다. 너의 민족이 다른 아시아 민족과 어떤권력 다툼을 벌였든 -그 분쟁의 대부분은 서구 제국주의 및냉전의 영향으로 발생했다- 차이에 무지한 미국인들에 의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당선된 직후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급증했는데, 대개는 그리고 특별히 무슬림이나 무슬림 같아 보이는 아시아인이 표적이 되었다. 2017년 어느 백인 우월주의자가 인도인 힌두교도 기술자두 명을 이란 테러리스트로 착각해서 사살했다. 그다음 달에는 어느 인도인 시크교도가 시애틀 교외의 자택 차고 진입로 밖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와 함께 총격을 당했다.- P43
작가 제프 창은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싶다"라고 적으면서,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 불확실함에 동의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아시아계 미국인 의식이라는 관념은 도대체 존재하는가? 그것은 W. E. B. 뒤부아가 한 세기도 더 전에 확립한 이중의식 같은 걸까?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딱지에 칠해진 페인트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이 용어는 거추장스럽고, 버겁고, 나의 존재 위로 어색하게 올라앉아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운동가들이 블랙팬서와 손잡고 저항운동을 벌였던 1960년대 말 이후로 우리만의 대중운동이라고 일컬을만한 것이 없었다. 쓰기가 조심스러운 "우리"라는 대명사는앞으로 하나의 공통된 집합체로 결속될 것인가? 아니면 갈라진 상태로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외국인"이나 "갈색인"(brown:인종 범주라기보다는 피부가 갈색인 중남미,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을 아우르는 용어로 최근 영미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옮긴이)으로 남고, 다른 일부는 부를 늘리거나 인종 간 결혼으로 백인 세상에 "입장할" 것인가?- P50
나는 "다음은 아시아인이 백인이 될 차례"라는 소리를 들으면 "백인이 될"을 "사라질"로 교체한다. 다음은ㅈ아시아인이 사라질 차례다. 우리는 성취가 대단하고 법을 잘지킨다는 평판을 듣다가 기억상실의 안개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권력자가 되지 못하고 그저 권력에 흡수될 것이고,
백인의 권력을 나눠 갖지 못하고 우리의 조상을 착취한 백인 이데올로기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인종 정체성은 쟁점에서 벗어나며, 괴롭힘을 당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매번 발언을 방해받는 것도 인종 정체성과는 무관한 거라고- P57
이 나라는 우긴다. 우리 인종은 심지어 이 나라와도 무관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론조사에서 흔히 "기타"로 분류되고 신고된 강간, 직장 내 차별, 가정폭력 사건의 인종별 집계에서도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사회적 신호를 박탈당해 나의 행동을 타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가늠할 수단이 없으니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을지, 무슨 말을하면 좋았을지 내 생각을 샅샅이 점검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 무한대로 커져서,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결코 충분치 못하다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더 잘하고, 더 잘되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하며, 자기 이익이라는 이 나라의 복음성가를 맹목적으로 따라 부르고, 내 순가치를 늘려 내 개인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는 짓을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한다.- P58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농담을 경향성 없는 농담과 경향성 있는 농담의 두 범주로 분류한다. 경향성이 없는 농담은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들려주듯 무해하고 무독하다. 경향성을 갖는 농담은 공격적이거나 저속하거나 아니면 둘 다여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 억눌린 부분을 캐낸다. 1940년대 미국 흑인 연예인들은 무대뒤에서 터무니없이 과장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런 농담을 가리켜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그 ‘거짓말‘은 경향성을 지녔으며, 고지식한 백인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길모퉁이, 당구장, 이발소에서 구전되었다. 프라이어는 이야기를 왜곡하고, 시끄럽게 불평하고, 큰소리치고, 볼링핀이든 오르가슴에 이른촌놈이든 닥치는 대로 흉내 내며 -거짓말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프라이어가 들려주는 거짓말은 내가 당시 읽고 있던 대부분의 시와 소설보다 인종에 관해서 솔직했다.- P62
우리 시인들은 청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시인들도 위상에 집착할 수 있고 내가 알기로 남의 인정을 무척이나 받고 싶어 한다. 환심을 살 청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시인들이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외부인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사실 시인의 청중은 제도다. 우리는 학계, 심사위원단, 펠로십 제도라는 고등한 관할권에 의존하여 사회적 자본을 획득한다. 수상 제도를 거치는 것은 시인이 주류적 성공에 이르는 소중한 길이며, 수상 결과는심사위원단이 공들여 이뤄낸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이 타협은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수상작에 아무 위험성이 없음을보장한다.
프라이어를 보며 나는 내가 아직도 그 제도를 상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리기 어려운 습관이었다. 나는 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이 욕망이 내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것은 백인의 환심을 사고싶어 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피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