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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섣달 그믐밤이면 ‘제야의 종이 울린다. 서울의 보신각에서도 올리고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도 울린다. 제야의 종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것은 훌륭한 범중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종은 서양 종과 달리 육중한 나무 봉으로 몸체를두드려 울리게 하여 ‘땡그랑땡그랑‘ 하는 것이 아니라 ‘둥둥‘ 하고 울린다. 그중 유독 우리 좋은 맥놀이 현상의 긴 여운이 아름다워 음향학에서는 한국종Korean bell이라는 별도의 학명을 갖고 있다. 반세기 전에 주한미군 라디오방송AFKN은 전국사찰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범종소리를 녹음하여 임택근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테이프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에밀레종을 비롯하여 이미 깨져 칠 수 없는 오대산 상원사종 등 수십 개의 종소리가 들어 있는데 영어 해설 마지막엔 이런 말이나온다. ‘서양의 좋은 귀에 들리고 한국의 좋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린다.
종은 형태도 형태지만 역시 소리가 좋아야 한다. 우리 범종 중 최고의 명작은 통일신라 때(771년) 주조한 높이 3.7m, 무게 18.9%의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이다.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장중한 소리이면서도 옥처럼 맑은 소리를 울려내어 많은 공학자들이 그 음향 구조의 신비를 밝히는 여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P106
이장무 박사는 종의 키와 폭의 비율이 √z=1.414의 값에 가깝고, 당좌撞座(봉이 닿는 자리)는 스위트 스팟 sweet spor이라고 해서 야구에서 홈런 칠 때 공이 방망이에 맞는 점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병호 박사는 종소리의 톤 스펙트럼을 분석한다음 음색과 음질을 채점해보니 다른 종들은 100점 만점에 50점대에 머무는데 에밀레종만은 86.6점이 나왔다고 했다.
무엇이 이런 신비로운 소리를 만들어냈을까? 에밀레종 몸체에 새겨진 1037자의 명문을 보면 "종소리란 진리의 원음인 부처님의 목소리"라고 했다. 그런 종교하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 해 전부터 이 종을 더 이상치지 않고 있다. 종은 쳐야 녹슬지 않는다는데. 그래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면 에밀레종 소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P106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다운 바둑판이라 할 자단목바둑판에는특이하게도화점 9개 이외에 8개가 더 찍혀 있다. 바둑해설가 박치문 씨는 17개화점은 우리나라 고유의 순장바둑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백제인들이 바둑을 좋아했다는 것은 개로왕이 바둑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다가 고구려에포로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바둑알은 상아로 만든 바둑돌에 붉은색과 검푸른색을 칠하고 그 위에 입에 꽃을 물고 나는 새를 선으로 새긴 다음 흰색으로 메운 것이다. 이런 기법은발루라고 하여 일본에서는 홍감아발루기자紅紺牙撥鏤碁라고 부른다. 꽃을 물고 나는 새를 새긴 기발한 발상의 디자인에는 백제 공예의 난숙함이 유감없이드러난다. 백제는 어떻게 이런 난숙한 공예문화를 갖고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장인에 대한 국가적 대접이 높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백제에선 경전을 깊이 이해하면 경학박사라고 했듯이 기와를 잘 만들면 와박사라고 했다. 무령왕비의 은팔찌에는 다리가 만들었다는 사인이 새겨져 있다. 문화는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가 만들어낸다. 공예는 사회적 수요와 대접만큼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P108
현재까지 국보로 지정된 조선 백자는 모두 19점이다. 그중 국보 제222호 백자청화매죽무늬항아리(호림박물관 소장)는 국보 제219호 백자청화매죽무늬항아리(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와 함께 조선 초기 청화백자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거의 모든 도록에서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이 항아리는 경기도 광주 도마리, 우산리 등 조선초기 가마에서 구워진 것으로 청진동 피맛골 발굴 때 이와 똑같은 질의 백자 도편이 출토되기도 했다.
그릇의 형태를 보면 풍만한 어깨가 허리 아래로 곧게 내려뻗어 아주 당당한 느낌과 함께 안정감을 준다. 백자의 빛깔은 해맑은 상아빛으로 차분하며 청화 안료는 페르시아산 고급 회회청을 사용하여 밝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 도자의 3요소인 기형, 유약, 문양 모두에서 완벽에 가깝다.
몸체에 가득 그려진 매화는 장식도안이라기보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뒷면은 매화가지 아래로 대나무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당시 유행하고 있던 세한삼우도에서 매죽만으로 청순한 분위기를 그려낸 것인데 필치와 농담의 표현이 아주 능숙하다. 일반 도공의 솜씨가 아니라 전문화가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성현의 《용재총화>를 보면 도화서 화원들이 경기도 광주에 있는 백자가마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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