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닛이 내어준 언어의 방에 머물면서 내 깊고 어둑한 곳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놓을 용기를 냈습니다. 음, 솔직히말하면 그가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장기간을 싸우고, 대뜸 트럭에 올라 몇주고 어디론가 떠나는 대목에서는 너무 부럽기도 했습니다. 만약에 그가 기혼 유자녀 여성이었다면 집안과 밥상에서 전투를 치르는 이야기도 멋지게 써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닛이 쓴 밥 이야기를 읽었다면, 나는 내 삶의 지배자 노릇을 하는 ‘밥‘에 끌려다니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내가 바라는 건 명절 철폐도 아버지와 밥 먹지 않기도 아닙니다. 집을 밥의 즐거움을 되찾는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엄마 제사를 간소화하자는 제안을 수용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나도 가족의 구성원이자 상 차리는 당사자로서 권한을 갖고 있음을 차분하게 말하고 싶은 거죠. 끊어내지 않고 연결하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싶습니다. 솔닛이 말한 작가의 책무인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 P37
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302) 일을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두번 읽었습니다. 한번은 솔닛은 어떻게 오늘의 솔닛이 되었나를 생각하며 읽었고, 한번은 그의 삶에 빗대어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나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전진한 것은 후퇴할 수도 있고, 닫힌 것이 다시 열리기도 한다는것. 한 사람의 긴 강물 같은 삶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보여주있습니다.
다시 써야겠습니다. 우리의 핵심 도구는 이야기니까요. "낮은 곳들로부터 벗어날 때 사다리로 쓴 논리와 서사를 다른 이들에게도 건네주고 싶"(15면)다는 솔닛의 자상함이 내 막힌 글을 뚫어주고 이야기를 끌어내주었듯이, 내 이야기도 누군가의 말문을 틔우는 입김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P38
‘가족‘이 삶의 화두가 됐다. 마치 공기처럼 삶에서 한번도분리된 적 없는 그것. ‘보호‘보단 ‘제약‘이 연상되는 단어.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나를 자극했다. 모두가느끼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금기가 들어 있을 것 같았지. 예감대로였다. 저자는 가족의 폐단을 세가지로 꼽는다.
첫째, 부와 빈곤을 세습하는 것. 둘째, 사생활권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갈등을 은폐하는것. 셋째,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여성을 속박하는 것.
난 한줄한줄 빨려들었다. 흙수저·금수저란 말도 있듯이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된다. ‘계급 배치의 강력한 기관‘으로 가족이 기능하지.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은 뉴스의 단골 소재잖아. 부모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통제하고 간섭하지.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다고들 말하지만, 가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한 게 현실이다.
특히 가족이 ‘여성을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속박한다‘- P41
는 내용에 아무래도 난 공감했다. 너희들 성장을 지켜보는일은 과한 축복이자 더없는 행복이었지만 그 일상을 떠받치는 노동과 일상은 혹독했다. 육아는 퇴근과 퇴직도 없다고 하는데, 그 피할 길 없음과 미룰 수 없음이 가장 억압적인점이었다. 어떤 좋은 직업도 자기 의지로 쉬거나 그만둘 수없다면 끔찍하겠지.
어쩌면 너희들에겐 엄마의 손길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는 체력이 달려서 양육에 전념하지 못했지만, 어떤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건 아니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엄마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떨쳐지지 않으니까. 읽고 쓰고 강의하는 순간순간에도 불쑥 엄마 자아가 튀어나와 당황하곤 했다. 엄마 일과 작가 일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느라 어느 하나도 제대로 누리기 어려웠지.
내가 ‘자취‘를 해볼까 하고 결심한 이유다. 실은 너희들이 자취 이야기를 할 때 힌트를 얻었어. 흔히 자녀들이 다 커서 독립하면 중년 여성은 집에서 홀로 ‘빈둥지증후군‘을 겪- P42
는다고들 하잖아.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어. 왜 엄마는 꼭 남겨진 자의 역할이어야 하는가? 나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들었고, 떠나보고 싶었다. 젊어서 누리지 못한자유를 이제라도 되찾고 싶은 마음 같은 거야. 내가 세운 자취의 목표는 두가지다. 인간에게 마땅히 필요한 ‘고요한 단독자‘의 시간을 늦게라도 살아보는 것. 그리고 반사회적 가족』을 교본 삼아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중산층 가족을 가족 외부에서 비판적으로 사유해볼 기회를 갖는 것.
늘 현실은 이론보다 앞선다. 요즘 한국사회도 혈연 중심의 가족에 대한 신비화와 과대평가가 사라지고 있지. 이미 독신, 생활공동체, 동성가구 등 다양한 가구 형태가 늘어나고 있고, 굳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만들고 연결되고자하는 인간의 열망은 더 기발하고 긴밀해지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내 가족도 못 챙기는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내가족만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렵다. 우선 가족 바깥을 향해 몸을 틀어본다.- P43
『욕구들』에서 저자는 ‘딸‘의 목소리로 묻습니다. "어머니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어?"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뻥 뚫리는 말입니다. ‘하지 마‘ 의 세계에서 엄마를 구원하는 멋진 문장이죠. 사랑눈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중에‘라는 시간은 영영 도래하지 않으며 지금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증여이고, 원함에 관해 아이들이 본받을만한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에 비해 모자람 없는 어머니의 일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