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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정혜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아무튼, 메모」, 「앞으로 올 사랑」, 「슬픈 세상의 기쁜 말」,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등이 있다. 기후위기시대 예술창작집단 이동시 (이야기와 동물과 시) 일원이다.
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지난 4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에 부딪힌 나는 3미터를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부서진 치아조각들을 손에 들고 무릎을 꿇고 땅에 앉아 있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구급차와 경찰차가 달려왔다. 꼭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한 구절처럼 사방이 고요했다.
한 달이 지나자 나는 어렵지만 양손으로 세수를 할수 있게 되었다. 한 달 반이 지나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봄이 한창이었다. 나는 병원 정문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처음으로 안양천에 가봤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노란 나비들이 꽃 사이를 팔랑거리며 날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야생의 생명력이 가슴으로 흘러들어 왔다. "너무 예뻐!"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자연과 그늘 없는 관계를 맺었다. 많은 것이 그리워졌- P5
다. 스페인 내전에서 총상을 당한 뒤 조지 오웰이 한 말이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은 세상이었다. 회복되려면 슬플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앞으로 또 슬픈 일을 겪게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기쁨을위해 태어났다. 나는 이 상처투성이 지구를 엉뚱하게도 회복의 장소로 경험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교통사고가 난 날은 겸손을 배우기 딱 좋은 날이었다. 내가 무엇을 누리든 그것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많은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또 한 번 주어졌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가, 변화하는 것이 중요한가. 나를 통해 묻는 사건이 일어난 것만 같다. 경이롭게 재생할수 있다면 나를 위해 슬퍼해준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 될 것이다.- P6
시간이 흐를수록 ‘반복‘이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나는 어렵게 세수를 배웠고 어렵게 이를 닦는 것을 배웠고어렵게 샤워를 하는 것을 배웠다. 어렵게 등 지퍼를 올려원피스를 입고(이것은 아직도 힘들다) 반복적으로 재활훈련을 하고 어렵게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소중했다. 밀란 쿤데라의 말- P6
이 생각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살고 있다는것을 알아야 인간적인 것이다."
카탈루냐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수십 년간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로 바흐의 푸가를 두 곡씩 연주하곤 했다. 그것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었다. 그는 그것은 집을 축복하는 방식이자 세계를 재발견하는 방식이고 그 일부가 되는 기쁨을 누리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파블로 카잘스의 이 말을 읽은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잊은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유리컵에 찬물을 한 잔 마실 때마다, 똑같은 빨간 컵에 커피를한 잔 마실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나곤 했다. 일을 할 때도책을 읽을 때도 생각이 났다.- P7
사고가 나기 전, 나는 그의 말에 영향을 받아 「삶의발명』이라는 책을 거의 완성한 상태였다. 우리에게는 유일무이한 삶, 고유한 삶, 대체 불가능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창조의 에너지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사는 개별적인 존재이면서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정과 존중을, 사랑과 우정과 의미를 원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누군가를, 공동체를찾아 헤맨다. 나는 이것을 관계의 에너지라고 부른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관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P7
가 쓰던 책 「삶의 발명은 창조의 에너지와 관계의 에너지가 균형 있게 만나 기쁘게 이 세계의 일부분이 되는 존재 방식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였다.

지난 몇 년간 내 열정의 대상이 바뀌면서 관계의 범위도 확장되었다. 오로지 인간, 인간, 인간만 생각하고 있던 내가 동물과 야생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동물의 눈에 담긴 다른 세상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열정은 힘이 강해서 읽는 책, 듣고 싶은 이야기, 가고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레이첼 카슨의 말 같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행복해질 거예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 해돋이와 해넘이, 만에 비치는 달빛, 음악, 좋은 책, 지빠귀의 노랫소리, 지나가는 야생 거위의 울음소리를 함께 즐길 거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자연에 빠져들 때가 기후위기와 동물 대멸종 시대이기도 했다. 이 말은 매 순간 아름답고 고유한 것이 사라지는 중이라는 뜻이다. 자연은 나를 웃게도 울게도 만들었다. 그래서 삶의 발명」은 기후위기와 동물 대멸종의 시대에 기쁘게 인간이 될 방법을 찾고 지구에서의 삶을 깊고 풍요롭게 누리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까?- P8
삶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고 모든 생명체는 모두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언젠가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다.
내 평생 가장 많이 해온 말이 있다.
"그 이야기 참 좋다."
이 말의 힘을 나는 백 퍼센트 믿는다. 이야기가 좋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면서 마음이 환해진다. 감탄할 때현실이 달리 보였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란 게 분명존재한다고 느껴졌고, 사는 것이 더 재미있어지고 더 좋아지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알 것 같았다. 그때는 세상은따라 해야 할 일투성이로 보였고 세상 또한 사랑할 만한것으로 보였다. 감탄 속에 있을 때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힘이 필요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다르게 시작하는 이야기가 있어."
공허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야기가 필요해."
지겨울 때도 그렇게 말했다. 변화가 필요할 때도 그렇게 말했다.
선택이 어려울 때는?- P9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말을 해야 할 때는?
"어떤 이야기를 살아 있게 하고 싶어?"
가장 삭막한 사이는?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는 사이"
사랑한다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는 것"
나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걸 빼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
행복할 때는?
"내가 찾고 기다리던 이야기를 만나는 것."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곳은?
"좋은 이야기 속."
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법은?
"적어도 내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안다."(나는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선의 나로 사는 법은?
"감탄한 이야기에 나를 결합시키는 것."
사는 동안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만나고 만드는 것"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동물로 진화한 데는 분명히 이- P10
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면 우리에게 일어났던일을 이해하고 나눌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야기하는 공동체로서 좋은 이야기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야기하는 공동체로서 좋은 이야기를 돌려줄 수 있는 것보다더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들려주는이야기는 내적 정체성의 핵심이다.
나에게 삶은 좋은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마음으로 언제나 불러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에너지로 변해 나를 내 자아 바깥으로 끌고 나오고 움직이고 살아 있게 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 에너지는 이야기가 변신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향을 받는 이야기, 의미를 두는 이야기가 바뀌면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고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면 삶의 방향도 바뀐다. 창조성은 다른 것이 아니라 뭔가에 의미를 둘 줄 안다는 뜻이니까.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더 나은‘, ‘더 좋은‘, ‘더 새로운‘
이라는 단어만 넣으면 삶은 갑자기 도전할 가치가 있는모험으로 변한다. 이것도 삶의 발명이다. 이럴 때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어렵게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자 다시 꺼낸 원고가 바로 이 책 『삶의 발명이다. 무엇이 나를 만들- P11
어왔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언제 기쁨을 느끼는지 아는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순간들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은 세상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고 사랑할까라는 오래된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하는 존재로서, 장미는 장미로서, 새는 새로서, 고래는 고래로서, 별은 별로서 존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변화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우선 모든 생명이 지금보다 더 햇살과바람을 즐겼으면 한다. 모든 생명이 지금보다 더 존중받고 자부심을 느끼고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모든 생명이 자신의 힘을 찾고 자기 자신이 되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나는 이 글에 에너지를 쏟아부어보려고 한다. 물론 이야기들이 변신한 에너지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동안 하나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수년 전 어느 비 오는 날 서귀포의 호텔에 묵었던적이 있다. 새벽 네 시와 다섯 시 사이 어디쯤에 눈을 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 창가에 앉아 아침이 오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비가 약간 뜸해지자 서귀포 걸매생- P12
태공원 뒷산 상공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검은 새 무리였다. 새들은 무리를 지어 돌고 돌면서 나선형으로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새들의 선회였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그 순간 행복했다.
일상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반복 속에서도 나를 조금더 앞으로 가보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마음이 흔들릴 때도 많았지만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있었다. 어두운 날도 저 밑바닥까지 어둡지는 않았다. 내가지금부터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편의상 제목을 달긴 했지만 앎, 우정, 사랑, 연결, 회복, 경이로움, 아름다움, 자부심, 기쁨과 슬픔, 희망같이 우리에게 대체 불가능한가치를 갖는 단어들이 이렇게 저렇게 섞여 있는 이야기들이다. 내가 돌려주는 이야기들이 기쁘게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더 나은 존재 방식을 원하고 만들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고 힘이 된다면 행복할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이야기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다.- P13
그 대화를 나눈 지도 벌써 3년은 흘렀다. 내 친구가 바빴던 것은 그때 만난 카리푸나족 추장의 형을 리스본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카리푸나족과 아마존의 운명을 어깨에 걸머진 추장의 형은 리스본 대학에서 두 차례 강연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카리푸나족의 리스본 방문은 어땠어? 사람들이 질문 많이 했어?"
내 친구는 3년 전에 나에게 한 말을 거의 똑같이 들려주었다.
"세상에 원주민이 있어서 다행이야. 숲을 지키는 것은그들이야. 그래도 리스본 사람들이 카리푸나족이란 부족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야. 카리푸나족이 우리 앎의 지도, 인식의 지도 안에 들어왔어."
그러고 나서 우리는 브라질 대통령이 바뀌면 아마존의 상황이 나아질까 같은 대화들을 조금 더 나눴다. 그런데어쩐지 내 마음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까 네가 한 말 중에 앎의 지도라는 말 있잖아. 그말 네가 만들었어?"
"뭐, 그냥 지금 생각났어."- P21
"그런데 네 말을 들으니 앎의 지도가 보물섬 지도 같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앎의 지도‘라는 말이 자꾸만 궛가에 맴돌았다. 카리푸나족이 앎의 지도 안에 들어왔다고 말하던 친구의 목소리는 얼마나 힘이 넘쳤던가?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평소에 "추해지지 말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내 친구는 원주민의 삶에서 우리가 아직 모르는 아름다움을 봤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들의 삶은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내 생각에 아름다움이야말로 시간을 들여서 알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류를 멸종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없애면 된다. 우리 인류는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추함을 견디지 못한다. 아름다움은 죽음만큼 오래되고 영원한 것이다.
어쨌든 앎의 지도라는 말을 들으니 소설가 존 쿳시가 생각이 난다. 그가 자주 쓰는 문장 중에 "앎을 살아낸다"는 문장이 있다. 그에게 삶은 그냥 삶이 아니고 어떤 앎과- P22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아침 사과가 건강에 좋다는 앎을 살아내고 양배추가 위장에 좋다는 앎을 살아낸다. 소고기를 지금처럼 먹으면 아마존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앎을 살아내고 오래가는 사랑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앎을 살아낸다. 그런데 이 ‘앎‘이라는 단어 뒤에 ‘지도‘라는 단어가 붙으니 어떤 ‘앎‘은 우리를 중요한 곳으로 데려다줄 단서처럼 느껴진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어떤 앎은 길을 잃게 만든다. 덫이 되고수렁에 빠지게 한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약해지게 만든다. 사실 내 친구처럼 뭔가를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한 인간이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힘이다. 그런 일이일어난다면 우리 삶은 방향을 바꾸게 된다. 가만히 있는것보단 사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사랑할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길을 떠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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