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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사이드에게 「코시 판 투테」는 특별히 중요한 작품이었다.
「코시판 투테」는 한층 더 과감하게 ‘남부유럽적이다. 나폴김배경의 등장인물 모두가 정직하지 못하고 쾌락을 좇으며, 몇몇예외적인 순간을 제외하면 자기중심적이고, 「피델리오」의 기준으로보자면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죄의식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코시 판 투테」에서는 변장과 그 변장이 가져오는 마음의 동요나 미혹이야말로 정상적이며, 굳은 지조나 수미일관성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조소의 대상이 된다."(에드워드 사이드, 앞의 책)
‘정말로 그렇겠구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 번이나 「코시판투테」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이 경쾌한 희극의 위트를 즐겼지만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이 오페라를보았을 때, 피날레곡인 6중창 여자는 다 그래」에 이르자 예기치않게 불의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재미있으면서도 서글프다‘고해야할까, 정체 모를 ‘인간의 부조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 탓이다. 이상하고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사이드- P213
가 말한대로 나 자신이 아이덴티티의 수미일관성"이라는 내적규율에 속박된 근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물론, 이런 점을 지적한 사이드 역시 대단한 존재다. 사이드가 지녔던 착종된 아이덴티티를 함께 생각해본다면 그의 「코시 판 투테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충분히 납득이된다.
사이드라면, 내가 이번에 본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문득 넓은 객석 어딘가에 그가앉아 있는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P215
9.11 이후 정서적 애국주의가 미국 전역을 뒤덮었다. 사건이일어나고 일주일 정도 지나 사이드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애국주의에 휘말린 호전적인 집단 열광에 몸을 맡기지 말고, ‘이슬람대서구‘라는 단순화된 대립 구도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테러 방지에 필요한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인내와 교육에 투자하는 일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성의 목소리‘는 감쪽같이 지워졌고 세계는 ‘전쟁‘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출구 없는 대립 구도 속으로 눈사태처럼 휘말려 들어가고 말았다. 세계 최강의부자 나라 미국이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과 하나가 되어, 최빈국아프가니스탄에 빗발처럼 폭탄을 퍼붓는 일이 벌어졌다.- P223
그의 부음을 접한 후 이런 생각이 나날이 커졌다. 나는사이드의 좋은 독자는 아니었다. 그의 저작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내가 만약 1990년대에도 사이드를 읽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해본적이 있다.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심하게 정신적으로 방황했을 테고 분명 혼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즐겨 읽은 그의 글은 오리엔탈리즘이나 『문화와 제국주의』와 같은 학술적 저술이 아니다. 펜과 칼은 그리 눈에 띄지않는 작은 책이고 그다지 팔리지도 않았다고들었지만, 내게는 결정적이라 할 만큼 중요했다. 이 책은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 데이비드버사미언David Barsamian (1945~)이 사이드를 다섯 차례 인터뷰한내용을 담았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관한 가장 좋은 입문서임은 분명하지만, 펜과 칼의 가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참에 책장을 펼쳐보니 여기저기 밑줄이 그어져 있다. 모두 다인용하고 싶지만, 우선 두 단락 정도만 소개해보려 한다.- P229
우리가 지금 와 있는곳이 마지막 변방이며, 정말로 하늘의 끝자락을 보는 듯이 느껴집니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남아있는 파멸을 향해 갈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P229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묻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지?" 우리는 또 다른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싶습니다. "너희들은 죽었다."라는 사망선고를 들었다고 그저 납득하고 체념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입니다.(에드워드 W. 사이드 · 데이비드 버사미언, 펜과 칼』, 헤이마켓북스,2010년(초판 1994년), 한국어판은 장호연 옮김, 마티, 2011년)


(학자로서 누릴 수 있는 편하고 안락한 삶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지않았는가. 왜 실천적인 정치 참여처럼 강단과는 다른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는가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자)- P231
내게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967년 이후의 어느 순간에 당연한 어떤 ‘부름‘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 이어 어느 순간 사태의 전체적 의미가훨씬 큰 차원에서 보이게 되었습니다. 단지 나의 민족적인 출신 배경에서 유래한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팔레스타인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관여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뿐만 아니라 미국의 아프로-아메리칸, 라틴계 연대 그룹,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단체와- P231
도 함께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교류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투쟁이 이런 여러 운동 가운데 핵심이었던 까닭은 그 투쟁이 정의에 관해 되묻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문제였습니다.

(에드워드 W. 사이드 · 데이비드 버사미언, 앞의 책- P233
"파멸을 향해 갈 운명임을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한편의 시와 같다.
사람은 승리를 약속받았기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불의가 승리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되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에 진실을 위해 싸운다. 단적으로 말해 사이드는 우리에게 현대를 살아가는자에게 있어 도덕의 거처는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전 지구적 시장 경제, 세계 전쟁의 시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본래 귀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떼어놓았다. 모어, 모문화, 역사로부터 추방된 수많은 디아스포라가 지구상을 유랑하고 있다.- P233
디아스포라 문학은 이렇게나 성립하기 어렵지만, 그중에서매우 예외적인 성공사례가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이다. 이 책은 인류사의 현시점까지 나온 디아스포라문학의 최고 걸작이라고나는 확신한다.
팔레스타인 아랍인,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도, 게다가 아버지세대부터 미합중국의 국적 보유자인사이드는 예루살렘, 베이루트, 카이로를 연결하는 지역을 오가며 성장했고 인생 후반기를미국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거기서 삶을 마쳤다.‘라고 덧붙여야만 한다. 책의 첫머리를 조금 인용해보자.


하지만 항상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마땅한 어떤상태로부터 내 자신은 언제나 벗어나 있다는 감각이었다. ‘사이드‘라는 누가봐도 명백한 아랍계 성에 무리하게 이어 붙인,
우스울만큼 영국풍인 이름‘에드워드‘ 내가 여기에 순응하기까지, 아니 정확히는 그다지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되기까지는 5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다.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빈티지, 2000년(초판 1999년), 한국어판은 김석희 옮김, 살림,2001년)- P236
다니엘 바렌보임과 나눈 대담집 평행과 역설』에는 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다. 유대인이면서 아르헨티나에서 자랐던바렌보임은 그의 좋은 대화상대였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에는 일종의 기억상실증이 만연합니다. 미합중국이 진정한 이민 사회이며 언제나 계속 그래왔다는사실을 망각하는 병이지요. 미국은 오직 하나이며, 다른 대안은 없다는 생각, 미국의 전통과 규범은 무엇인지, 단일한 미국의 면모는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최근 일어난 논쟁을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무척 불안해집니다. 일종의 ‘수입된 내셔널리즘‘, 다시 말해 "독일적인 것은 무엇인가? 영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식으로 변용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민족주의는 심하게 변덕스럽고 파란으로 가득 차 있기에 제게너무도 매력적인 미국의 모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말- P247
이죠. 제가 이 나라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측면은 어떤 규정으로 정해져 완전히 굳어버린 사회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항상 불안정하게 동요하는 사회라는 점입니다.(『평행과 역설, 빈티지, 2004년)


트럼프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했던 발언이다. 하지만 ‘미국우선 America First‘을 부르짖고 이민규제 강화를 주장했던 트럼프정권을 미국 국민이 절반가까이 지지한다는끔찍한 현실을 떠올리면, 사이드의 진단은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이드를 낳고기르고, 사이드가 사랑했던 ‘아메리카, 물론 언제나 미국의 한측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조차도 영원 속으로 사라진걸까.
(이 글을 마무리한 날은 2020년 11월 9일이며, 드디어 어제 민주당 조바이든 후보가 대통령 선거 승리 선언을 마친 참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항전의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기에 장래는여전히 불투명하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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