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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항의 행진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글을 쓴다. 우리의 많은 친구들이 2017년 1월 21일에 열릴 여성 행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신체 장애 때문에 직접적인 시위 참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물었다. 그리고 대규모 항의 시위가 워싱턴 DC와 전 세계 도시에서 열리기 일주일 전에 답을 찾았다. 우리는이 책을 함께 집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분위기에 깃든 열정은 치열했던 197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성인 여성들과 소녀들, 때로는 그 주변의 성인 남성들과 소년들의 변혁적이고 정치적인 자각이 일으킨 강력한 사회적 봉기를 영화 평론가 몰리 해스컬은- P11
당시의 흥분을 이렇게 포착했다. "우리는 과거를 거부했고 속박을 거부했고 우리의 어머니들이 살아온 방식을 거부했다. 마치 그동안 육지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던 종족이 절벽을 기어 올•라가 난생처음 광활한 바다를 본 것 같았다. (...) 모든 일이 가능했다. 
물론 2017년 1월 상황은 달랐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출중한자격을 갖추고 출마한 여성 대통령 후보자가 상스러운 데다 철저히 부적격자인 남성에게 패배하는 일)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시위가 확실히 페미니즘에 힘입어 일어났었다. 1970년대의 여성해방운동이 그토록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가 그토록 기막히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며, 항의 시위가 그토록 다급하게 필요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거대한 항의의 물결이 1970년대의 격앙된 시위 운동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 반대 운동이 다름 아닌 절망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곧바로 명백해졌다. 1970년대의 시위 행진자들이 멋진 신세계를 향해 나아간다고 느꼈다면, 2017년의 고소인들은 타락한 세계, 유아적이면서 악마적이고 타락한 인물이 지배하는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P12
하지만 정말 문화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와 우리의 많은 친구들은 여전히 미쳐 있을까? 격노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미쳤다는 것이다. 미친 듯 화가 나고 혼란스럽고반발감이 치솟는다는 의미에서 미쳤다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했다면 그 영역에서 백래시에 부딪칠 것이다.
당신이 유리 천장을 깨부수었다면 깨진 유리들을 밟고 가야 할것이다. 당신이 한껏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비틀거리며 넘어질지도 모른다.
"펜은 페니스의 은유일까?"라고 질문하며 우리가 함께한 첫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 집필을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흘렀다. 우리는 여성문학의 전통을 발굴하고자 수 세기에 걸쳐 진행되어온 권위와 남성성의 동일시 문제를 검토했다. 이제 우리는미국 정치와 젠더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면서, 이 문제와관련된 질문을 숙고하게 되었다. 몇몇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대통령 후보자로 나선 만큼 아마 좀 더 해방된 상황일지도 모르는지금 이 시점에도, 우리는 "대통령은 반드시 페니스가 달린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P15
물론 시민 한 명 한 명이 각자 한 표를 행사하고 다수의 의사가 선거인단 선거의 방해를 받지 않는 전통적인 민주주의 체제였다면, 주요 정당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 최초의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이 그 2016년 선거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학식 있고 경험 많은 그녀였다면 분명 트위터로 통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중대한 의학적 위협을 부정하지도 회피하지도 않고 자기 나라 시민들에게 반란을 부추기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리졸 살균제를 주입하라는 조언을 하지도 않고, 민권 시위자들을 진압하겠다고 군대를 동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휘말리게 된 무정부주의적 서사 구조에 상응하는 대항 역사 속에서라면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은 질서 정연하게 정부를운영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흠결이나 반대자들은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정부, 이를테면 앙겔라 메르켈의 정부와 매우 비슷한 정부를 운영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될 뻔했던 이 여성은 우리처럼 1970년대가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주요 정당의 지지를 받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자라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1970년대의 페미니즘이었다.
- P18
그녀는 또한 1970년대의 전형적 인물, 즉 여성해방운동의 원대한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본보기인 동시에 그 운동이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백래시의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1970년대에 클린턴은 법학전문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로댐이라는 결혼전성을 계속 사용하려 애썼으며 자신은 "내 남자 옆에 있는 그저 그런 작은 여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집 안에만 머무르면서쿠키를 굽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인권은 여성의 권리이며,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라는 유명한 선언을 했다. 남편이 대통령직을 떠난 뒤에는 퍼스트레이디 최초이자 여성 최초로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이후에는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며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주목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클린턴을 국가 정치 현장으로 쏘아올린 특별한 역사적 변화는 우리 세대를 전문 직종으로 나아가게 했던 변화와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이런 대변동은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동시대인들의 삶과 일을 변화시킨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P19
우리는 제2물결 페미니즘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정점에이르렀으며 세기말 전환기에 쇠퇴했다가 2016년 대선을 전후로 부활했다는 생각에 대해, 비록 그 역사가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하더라도 복잡하게 따져볼 것이다. 다만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회운동에서도 일어나는 법이다. 조용히 정지해 있거나 심지어 퇴행하고 있는 것만 같은 시기도 사실은 도전 의식을 북돋우며 미래에 필요한 전술을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나올 장호들에서 페미니즘은 하나의 욕망이고 비전이고 갈망이고 환상이며, 가끔은 현실과 불화하지만 가끔은 불가능해 보이는 대안적 현실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꿈이다. 우리는 지난 70년에 걸친 진화 과정 내내 페미니즘이 다양한 상상을 아우르는 심오한 상상적 노력으로 스스로를지탱해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P45
여자로 태어났다는 게 끔찍한 비극이다. 수태된 순간부터 나는 가슴이 솟아오르고 페니스나 음낭 대신 난소를 갖게 될 운명이었다. 내 모든 행동과 생각과 감정의 범위가 피할 길 없는 여성성에 의해 엄격하게 제약당할 운명이었다. 그래, 길거리의 패거리들, 선원들, 군인들, 술집 단골들 사이에 섞이고 싶다는 내절실한 욕망, (...) 그 모든 욕망이 내가 소녀라는 사실, 늘 공격당하거나 두들겨 맞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망쳐진다. 남자와 남자의 삶에 대한 내 절실한 호기심이, 빈번히도 그들을 유혹하려는 욕망이나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유인책으로 오해받는다. 오, 맙소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깊게,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데, 확 트인 벌판에 나가 잠을 자고, 서부를 마음대로 여행하고, 밤에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P56
『벨 자 를 써나갈 때, 플라스는 위와 같은 상황을 한층 더 극적으로 묘사했다. 그녀의 서술자/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남자 친구가 그녀에게 아기를 갖게 된다면 그녀가 시를 쓰고 싶지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결혼해서 아기를갖는 일이 세뇌를 당하는 일이나 같을 것이라는 주장, 그래서나중에는 사적 노예나 전체주의적 국가의 노예처럼 무력하게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온실 같은 패션 잡지의 세계에 구현된 1950년대의 문화를 점검한, 현존하는 플라스의 이 유일한 소설은 미국 소녀를인형으로 묘사하는 한편 사회가 그들에게 경쟁하라고 명령하며물려준 온갖 병폐를 탐구한다.- P57
분명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페이턴 플레이스>의 끈적한 에로티시즘, 프랭크 시나트라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노래, 엘비스 프레슬리의 섹시한 몸 흔들기,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제인맨스필드의 도발적인 연기 등에 매료되어 있던 당시의 문화에 호소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에로틱함을 향한 이런 집착은 프로이트의 성 심리 이론(성행위의 성공을 적절한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일과 동일시한 이론)만큼이나 골치 아픈 결과를 빚어냈을까? 휴 헤프너와 그가 이끈 플레이보이 클럽들이 킨제이의 연구의 오랜 지지자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프로이트 지지파와 킨제이 지지파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머리와 가슴이 아니라 "여성 성기"
와 남성 성기였다. 이렇게 섹시한 "연인"에게 점점 더 많은 찬사를 보내던 사회에서도 1950년대 말 무렵이 되면 아이가 있는여성 중 25퍼센트가 가정 바깥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가장부지런히 일하던 젊은 여성에게도 이 시기의 문화는 해결 곤란한 문제가 되었다.- P73
플라스와 리치가 스미스대학교와 래드클리프대학교에서 착실하게 공부하고 아이들을 낳고 한동안 자신들의 반항심을 억누르거나 비밀 일기에 몰래 드러내는 동안, 보헤미안족과 비트족과 흑인들은 세기 중반의 미국의 경건성에 항의하고 있었다.
1955년에 그들의 불만은 앨런 긴즈버그의 시 제목처럼 ‘포효‘ 상태에 이르렀다. 동성애자, 유대인, 좌파, 불만분자였던 앨런긴즈버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미국의 끔찍한 상황에대해 들려주었다.


몰록! 고독! 배설물! 추악함! 재떨이와 손에 넣을 수 없는 달러들! 계단 밑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아이들! 군대에 들어가 흐- P75
느끼는 소년들! 공원에서 울고 있는 노인들!
......
몰록! 몰록! 로봇 같은 아파트! 보이지 않는 교외! 해골 같은보물들! 눈먼 자본들! 악마 같은 산업들! 유령 같은 나라들! 천하무적 정신병원들! 화강암처럼 딱딱한 음경들! 괴물 같은 폭탄들!‘


하지만 긴즈버그의 포효가 점차 늘어가던 불만분자 집단을매료하기 전에 이미, 자신들을 영혼 없는 존재로 규정한 문화의마수에서 벗어나려고 분투하던 여성들이 있었다.- P76
음악계만 해도 찰리 파커, 텔로니어스 멍크,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같은 인물들이 지배했던 비밥과 재즈라는 새 장르와 함께 어느 때보다도 풍성해졌다. 루이 암스트롱도 트럼펫을 불며 계속 활동 중이었고, 해리 벨라폰테는 카리브 억양으로 <영리한 남자, 더 영리한 여자>를 불렀다. 여자 가수들도 뒤쳐지지 않았다. 빌리 홀리데이는 여전히 아이돌이었고, 엘라 피츠제럴드는 그녀 최고의 앨범 녹음을 막 시작한상태였다. 1958년에는 실비아 플라스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니나 시몬이 <리틀 걸 블루> 앨범을 내며 화려하면서도 저항적인 가수 이력을 시작했다.- P83
이런 노래들의 당김음 패턴 속에서 꾸준히 울려대는 드럼 소리처럼, 민권운동도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궨덜린 브룩스가 1950년 『애니 앨런』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후, 랠프엘리슨은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했고, 제임스 볼드윈은 『미국의 아들의 기록』을 출간했다. 1955년 마틴루서 킹 주니어는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고, 같은 해에 로자 파크스는 남부의 버스에 올라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라는명령을 거부했다. 흑인 극작가 로레인 핸스베리가 강렬한 극작품 <태양 아래 건포도>를 집필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였다. 이 작품은 1959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여 공전의 히트를치게 되었다.-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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