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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전출처 : 마냐 > 맘에 드는 소리만 하는데, 심지어 재밌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폴 킹스노스라는 이 영국 젊은이(그는 72년생이다)를 따라 절망의 밑바닥에서 긍지와 희망의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그들을 만나고 왔다.

진보잡지에서 일하는 폴은 세계화와 싸우는 저항운동을 따라 8개월동안 5개 대륙을 누볐다. 멕시코 사빠띠스따의 성지 치아빠스부터 유혈 축제였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반세계화시위 현장, 초다국적기업으로부터 물의 권리를 되찾은 볼리비아의 작은 도시 등.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곳만 쫓아다닌 폴은 반세계화 운동을 유쾌한 기행문에 담았다.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느끼고 배운 이야기라 더 힘이 세다.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라크를 정복한 이후의 일을 살펴보라고 폴은 말한다. 은행과 통신 등 200여개의 기업이 민영화되면서 대부분 미국과 영국 기업으로 넘어갔다. 실상 세계에서 가장 잘산다는 G8 국가 외에는 비슷한 풍경이 어디서든 펼쳐졌다. 이라크처럼 총칼로 해결했느냐, 혹은 세계은행이나 IMF를 앞세웠느냐가 조금 다를 뿐. 결과도 꽤나 명료하다. 부유한 서구에 사는 세계인구의 20%는 40여년전 가난한 세계인 20%보다 30배 많이 벌었지만 오늘날엔 74배를 가져간다. 세계인구 28억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산다.

하지만 변화는 늘 절망속에서 모색되는 법. 치아빠스는 멕시코에서 가장 윤택한 지역이지만 가장 가난했다. 멕시코 전력의 20%를 생산하는데 정작 1/3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관광객 1000명당 7개의 호텔방이 있는데, 주민 1만명당 병원침대는 0.3개 밖에 없었다. 게릴라처럼 등장한 사빠띠스따가 수십만 지역주민의 환호를 얻은건 당연하다. 과거의 혁명가들은 권력의 쟁취를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권력을 해체해 지역사회에 돌려주자고 한다. 비록 정부와 협상이 결렬된뒤 게릴라들은 숲으로 들어갔지만 전세계 운동가들이 사빠띠스따의 신념을 따르고 있다.

볼리비아 꼬차밤바 시민들이 미국 벡텔사를 물리친 이야기는 다윗과 골리앗 스토리 이상 흥미롭다. 1999년 상수도시스템이 벡텔 자회사로 넘어간뒤 물값이 폭등했다. 월 60달러로 살던 이에게 15달러의 수도요금이 나왔다. 정부는 벡텔에게 40년간 `물에 대한 권리'가 있다며 외면했지만 저항은 거셌다. 결국 벡텔은 `직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받고 도망쳤다. 볼리비아 정부와 벡텔간 계약은 파기됐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알지만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가. 폴은 말한다. "이 운동이 해답이 없고, 대안이 없고, 목표가 없다는 미신은 그들이 퍼뜨리는 것 일뿐"이라고.

폴이 2002년 브라질 반세계화 포럼에서 만난 노엄 촘스키의 말을 빌려보자. 한 기자가 대안의 현실화 가능성을 물었다. 촘스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200년전에 똑같은 질문을 했다고 칩시다. 노예 없이 굴러가는 사회,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의 예를 들라고. 예를 들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대답했겠죠. 사람들은 정말 그런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비전이 있다면 열정이 생기죠."

바로 이런 열정으로 쓴 책이다. 혹 생각이 다르더라도 읽어볼만한 이유다.

원제는 `문제는 하나, 대답은 많다(One No, Many Yeses)'. 세계는 세계화라는 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해결방법은 지역사회마다 다르단다.

 

정말 유쾌하게 읽었다. 450쪽 중 사실 100여쪽을 못 읽고 리뷰했다. 그거 다 읽고난뒤 여기에다 올리겠다 했는데, 뭐 세상사 맘대로 되지 않으니 일단 올린다. 폴은 사빠띠스따의 강의를 듣다가도 "강의는 어느새 지루한 정치적 독백이 됐다. 사빠띠스따에도 따분한 인간이 있었군. 인간의 본성 중에는 혁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것이 있군"이라 중얼거린다. (난 이 대목에서 정말 많이 웃었다)

반세계화 시위현장에서 옷 색깔로 시위대의 성격이 구별되는데 과격한 `블랙 블록' 대신 `분홍색 은색그룹'을 쫓아다니던 이야기도 재밌었다. 분홍색 그룹의 특징은 전술적 가벼움을 견지. 최선을 다해 장벽 진입을 시도하지만 부상자가 생기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거다.. 이들은 제노바 시위에서 '역사를 창조했지만 기뻐하는 이는 없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의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한 탓이다. (선진국의 가면을 쓴 곳에서도 시위대에 발포하는 일은 마치 당연한듯 생긴다)

세계화에 대한 설명중에 이런 게 있다. 세계화로 이득을 보는 것은 기업. 세계 100대 경제단위 중에 51개가 기업이고 49개가 민족국가다. GM은 태국보다 크고, 미쯔비시는 남아공보다 크고 월마트는 베네수엘라보다 크다....명료하지 않은가?

세계화에 대한 전쟁은 현실과의 전쟁이다. 폴의 말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경제학자, 궤변론자, 계산기, IT전문가, 구두를 반질반질하게 닦아 신는 지식인, 합종연횡의 정치가, 콩알까지 세는 해적같은 기업...폴은 때로 침울해지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촘스키의 저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 저항은 그리 만만치않다. 98년 OECD가 비밀리에 작성했던 국제조약 문서가 샜단다. 다국적 투자자들이 국가 정부를 고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단 분만에 전세계에 공개됐고 신속한 동원이 시작됐다. 정부각료들은 조약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있을때...반대시위는 점점 커져갔다. 햇빛에 노출된 조약은 드라큘라처럼 쭈그러들었다. 인터넷의 아이러니다. 금융세계화, 기업세계화의 동력에서...저항세계화의 동력, 세계적 저항네트워크의 핵심도구가 되는 것.

책을 읽고 감동감동, 마구 떠들었더니 W가 자기도 노트북 하나 들고 훌쩍 떠나볼까, 괜히 염장을 지른다. 쳇. 샘부터 났다. 한심해라..하여간 폴이 부럽고 부럽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반세계화 저항의 현장을 누빈다. 또 부럽고 부럽다. 떠날 용기가 없는 자여, 그럼 그 자리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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