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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전출처 : 초콜렛 > 며느릿감 고르기

앞의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발상의 전환, 그것이 중요하겠지요.

옛날에 어떤 양반 집 아들이 장성하여 장가들 나이가 됐거든. 그런데 이 집 아들이 오대 독자야. 오대 독자니 좀 귀한 아들인가, 귀한 아들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웠더니 암사내가 돼 가지고 세상 물정을 몰라. 아버지가 가만히 보니까 저래 가지고는 장가를 보내도 살림이나 제대로 지키고 살 것 같지 않단 말이야. 그래서 며느리를 아주 똑똑하고 당찬 사람으로 구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어. 그래야 아들 녀석도 살림 지키고 사는 법을 배울 터니까.

그래서 며느릿감을 구하노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어. 어떻게 소문을 냈는고 하니, 누구든지 자기 집에 와서 쌀 한 말 가지고 세 식구가 석 달을 먹고 살면 며느리로 삼겠노라, 이렇게 했어. 그러니까 남자 종하고 여자 종을 하나씩 딸리고 쌀 한 말을 주면 그것으로 세 식구가 석 달을 먹고 살라는 말이야. 그렇게 소문을 내니 여기저기서 한다 하는 양반 집 처녀들이 며느리 되겠다고 왔어. 양반 집이고 살림도 넉넉하고 하니 혼처야 그만한 데가 없지. 그래서 많이들 왔는데, 처녀가 오면 남자 종과 여자 종을 하나씩 딸려서 따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쌀 한 말 갖다 놓고는 그만이야. 그걸로 석 달을 버텨 보란 말이지.

그런데 오는 처녀마다 석 달은커녕 한 달을 채 못 넘겨. 어른 하나가 못 먹어도 한 달에 한 말은 먹어야 사는데, 아무리 양을 줄여도 그것 가지고는 석 달을 못 버티겠거든. 쌀 한 줌씩 넣어 죽을 끓여 가지고 하루에 두 끼씩 먹어도 한 달 버티기가 힘들지. 그러니 오는 처녀마다 아껴아껴 먹다가 쌀 떨어지면 두 손 들고 가버리지 뭐 어떻게 해.

그런데 그 집 이웃 마을에 아주 가난 농사꾼이 살았어. 이 농사꾼한테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여태 시집을 못 보냈거든. 그 딸이 하루는 아버지한테,

"저 건너 양반 댁에서 쌀 한 말로 세 식구가 석 달을 먹으면 며느리 삼겠노라 한다던데,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하겠지. 그래서 아버지가,

"한다 하는 양반 집 규수들도 와 가지고 한 달을 못 버티고 돌아갔다는데 네가 무슨 재주로 석 달을 버티겠느냐?"

하고 말렸지. 그래도 딸은,

"염려 마시고 보내만 주십시오."

하거든. 그래서 보내 줬지.

이 처녀가 양반 집에 가니까, 참 종 내외를 딸려서 쌀을 딱 한 말 주고는 그만이야. 그런데 다른 사람 같으면 쌀을 한 홉씩 두 홉씩 내다가 죽을 쑨다 어쩐다 수선을 피울 텐데, 이 처녀는 무슨 생각이 있는지 첫날부터 쌀 한 되를 뚝딱 퍼서 밥을 푸지게 지어 놓고 먹자고 하네. 종들이 도리어 걱정이 돼서,

"아, 이렇게 먹어 가지고는 열흘을 못 넘깁니다."

해도 그저 아무 염려 말고 실컷 먹으라고 하네. 그 이틑날도 쌀 한 되 뚝딱 퍼서 밥을 지어 놓고 배를 두드려 가면서 먹고, 또 그 다음날도 그러고, 이렇게 한 사흘 지나니까 이 처녀가 종들을 불러 놓고,

"자, 이제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슬슬 일하러 나가자구요. 나하고 아주머니는 들에 가서 나물을 캐고, 아저씰랑 산에 가서 하루 한 짐씩 나무를 해 오면, 그걸 팔아서 양식을 사다 먹자구요."

이러는 거지. 그게 이 처녀 꿍꿍이속이야. 아, 가만히 앚아서 아무리 아껴 봐. 쌀이 줄지 어디를 늘기를 하나. 일을 하면 절로 돈도 생기고 쌀도 생기고 하니 무슨 걱정이 있어.

참, 그래서 그 날부터 세 식구가 일을 했어. 여자 둘은 나물을 캐다가 팔고, 남자는 나무를 해다가 팔고, 그 돈으로 쌀을 사다 들여놓으니 먹는 것보다 쌓이는 게 더 많아. 석 달 동안 실컷 먹고도 쌀이 한 가마나 남았어.

석 달이 지나서 주인 양반이 어떻게 됐나 하고 와 보니 쌀을 가마째로 쌓아 놓고 살고 있거든. 무릎을 탁 치지.

"옳거니. 너야말로 내 며느리로구나. 바로 날을 받아 혼례를 올리도록 하자."

이렇게 해서 처녀는 양반 집 며느리가 되었는데, 그 뒤로 자기도 억척같이 일하고 제 남편도 일을 고되게 시켜서 아주 듬직한 사내로 만들어 놨다네. 남정네고 아낙네고 간에 일 안 하고서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나.(서정오 지음,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현암사, 269~27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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