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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린 말과 오늘날 우리 예(藝)에 대한 인식

설핏 보았다는 풍문을 단서로 물어물어 문 앞에 당도하면,
"도둑질도 손 떼면 가만 두는데 왜 들추느냐" (1권 44쪽)

한 평생 가슴에 시린 한이 우물에서 건져 올려지는 듯하다. 가만히 잠재워 둘 것이지, 왜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느냐는 환청이 와락 덮쳐온다. 소름이 끼친다.

그의 글은 참 낯설다. 그는 '전통 예술이 상아탑으로 들어간 후, 무대의 명인은 묻히고 교육의 명인만 남은 듯'(29쪽)하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가 만나고, 그들의 삶을 다시 마중 나간 이들도 화려한 명성이라는 게, '유랑극단에서, 굿판에서, 환갑잔치 집에서 얻은 것'이 전부이지만 뼛속까지 '예(藝)'가 묻은 '개비'이다. 하지만 그 궁핍이 삶의 한 가운데 흐르고, 지방에 머무르니 쉬이 잊혀지고 먹고 살기 위해 권번에 든 것이 남 손가락질이 되니 다시 한으로 남는다. 그래서일까 '도둑질'이라는 비유어가 삿대질처럼 쏟아져 나온다. 울분이 머리보다 먼저 앞선다.

그의 글은 참 낯설다. 처음 문장을 읽어 가는데 매끄럽지도 못한 게 한 자 한 자 조심스레 발을 내딛고, 두 번째에는 예인에 대한 존중, 즉 '옛 명성을 접고 초야에 묻혀 근면한 촌부'로 남은 이들에 대한 겸허한 마음 가지일까 생각했는데, 모든 게 다 맞고, 모든 게 틀리다. 그의 글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신명나게 굿판을 벌린 이들에 대한 아픔을 그는 장이 끝난 다음에, 그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주워 담고 있다. 그는 책머리에서, '초야'에 묻힌 이들을 불러내어, 잊혀져 가는 그이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십사 하며 적은 글을 엮었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네들의 아픔을 들려주고 있다. 즉 그의 글에는 신명나게 춤추는 이와 이 신명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며 누구보다 아파하는 지은이가 앉아 있다. 나는 도서관에 앉아 150원 짜리 커피를 마시며,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무엇을 느끼고 책을 읽다 말고 밖으로 나와 높아만 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괜스레 눈물이 날 듯 한 가을 하늘이다.

책을 들어설 때에는 쪽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겠다고 자만했는데……. 이는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를 안다는 어리석음과 별개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예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분들의 춤을 단 한 번이라도 유심히 보았는가 내게 물어본다.

"'즉흥'은 흔히 이야기 하는 임기응변이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하게 그 무대만의 무언가를 조성하는, 까마득히 잊혀진 기법의 이름이 즉흥이었다. 특별히 크고 미적은 동작은 없다. "

즉흥, 이는 창조이다. 이는 틀을 깬 행위이기에 매번 같으면서 틀리다. 장자가 꿈을 깨고 난 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그는 사고하는 동물이 아닌, 자연(自然)이 되어있다. 글을 쓰는 이가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을 의식하지 않고 몸속에 녹이고 난 다음에 적듯, '즉흥'은 몸속에 녹아든 행위가 몸밖으로 들어남이다. 이는 지은이 말처럼 '해서'가 쓰기의 기본이라면 '초서'는 그 마침이고, 지은이의 춤은 초서의 다른 의미가 된다. 얼마나 깊이 춤을 보고, 그 드러남을 온몸으로 품어야 그이의 초서 춤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몇 개의 언어로 앎을 들어내고 지은이의 글을 읽지만 그네의 춤은, 분명 몇 권이고 보아도 '초서'인지 '해서'인지 모를 것이다. 이는 머리는 아는 앎과 몸으로 느끼는 앎 사의 괴리이다. 난 조금씩 지은이의 글을 읽어가며, 머리에서 몸으로 내린다.

책을 읽어가면서 조금 아쉬운 점은 한 예인의 삶을 통째로 들어놓으려 하다 보니, 방이 모자라고 이야기는 넘쳐난다는 느낌이다. 즉 선택과 집중 부분에서 크게 갈린다. 춤 하나를 이야기 하며 그 속에 서린 삶의 아련한 부분 만 그려주었으면 하는데, 여러 삶의 편린들이 흩날리고 있다. 짧은 글 속에 긴 삶이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난 그의 글을 읽으며, 글이 과연 얼마나 깊을 수가 있나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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