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 치킨게임 국면을 전혀 의외의 방식으로 통과했다.
삼성전자의 경영진은 업계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바로 다음 세대 제품(256Kb DRAM)의 공급량을 늘리는 공격적인 결정과 함께 그다음 세대(1Mb DRAM)의 선행기술 개발에 더 막대한 투자를 하는 역공법을취함으로써 역시장에 대응하였다.
즉, 이전 세대 기술을 채택한 제품에서 회수한 자금을 선순환시켜 다음 세대 기술 기반의 제품 라인을 만드는 종래의 방식이 아닌, 이전 세대 제품은 그냥 치킨게임의 희생물로 바치고 신규 투자로 바로 다음 세대 라인을 건설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삼성의 이러한 전략은 1987년 들어 반도체 사이클이 다시 호황으로 접어들고 1Mb DRAM이 주력이 되자 코너에 몰려 있던 삼성을 기사회생시킨, 말 그대로 신의 한 수였다.
물론 한국의 금성반도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후발주자들은 투자된 자금의 회수없이 신규 투자를 할 만큼 기초 체력이 튼튼하지 못해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고 시장에서 철수한 후였다.- P39
기본적으로 일본은 자국 반도체 시장의 쿼터를 미국과 합의한 수준으로 내주는 바람에 자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취하던 수익의 20퍼센트를 잃게 되었고, 그만큼의 수익을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여야 했으나, 해외시장은 후발주자들의 기술격차 단축과 원가 경쟁으로 인해 점유율 확장이 어려웠다.
또한 10년간의 반도체협정 기간은 장기적으로는 일본 반도체 산업이 매출과 기술 양면에서 초격차를 벌려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잃게 만드는 조치가 되기도 하였다. 수익률과 시장점유율, 그리고 기술격차 등 모든 면에서 수위권 수성이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과감한 투자나 기술개발보다는 수율과 품질의 극단적인 강화 방향으로 전략의 틀을 잡았던 일본 반도체 대기업들의 실착 탓이었다.
그 기간 동안 후발주자이던 한국의 삼성전자는 과감한 라인 증설과 선행기술 개발에 힘입어 무사히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DRAM 메모리반도체의 최상위권 글로벌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 역시본격적으로 파운드리 산업에서의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다.-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