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시세로 맺은 거래조차도 강세장에서는 상당한 수익원이됐다. 대부분의 원자재 계약이 통상적으로 다소간의 물량 과부족‘을허용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원자재 중개 업체가 실제로 구매·공급하는 물량이 계약상 물량보다 많거나 적다는 뜻이다. 이런 관행업계용어로는 ‘임의성) 덕분에 어느 정도의 물량 차이는 계약 불이행이 아니었다. 대규모 물류 산업에서는 용인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니 그 물량 차이가 엄청나게 귀중한의미를 가졌다. 과거 트레이더는 수요가 많을 땐 공급자로부터 원자재를 ‘조금 더 많이 사들였었다. 그러나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하려는 매수자가 있을 때는 계약상 매수자에게 물량을 ‘조금 더 적게‘ 인도할 수도 있었다. 이 임의성을 통해 원자재 중개 업체는 공급자와 매수자 사이에서 이익을 취했다.
여기서 시나리오를 하나 써 보자. 한 트레이더가 석유 생산자에게 매달 100만 배럴을 사들여 구매자에게 매달 100만 배럴을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맺는다 치자. 여기서 매수와 매도 가격은 같다(여기선해당 월의 평균 가격이라고 치겠다). 그동안 업계 관행상 두 계약에서는 트레이더에게 10퍼센트의 과부족을 허용한다. 그러니 유가 변동이 없다면 트레이더에겐 이익이 나지 않는다. 사들인 가격 그대로 팔아야하니 중간에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실제로 운송비와 금융 비용을 감안한다면 결국 손해다.
그렇지만 유가가 상승한다면 어떨까? 여기서는 계약의 임의성을이용해 이익을 볼 여지가 생긴다. 생산자로부터는 계약상 최대 물량, 즉 계약 물량에 10퍼센트를 더한 110만 배럴을 사들이겠지만 소비자에게는 계약이 보장하는 최소 물량, 즉 계약 물량에서 10퍼센트를 뺀90만 배럴을 공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트레이더가 되팔수 있는 원유 20만 배럴이 생긴다. 만약 시장이 상승세라면 월말 가격이 월평균보다 높을 테고, 트레이더는 그 20만 배럴을 팔아 이익을본다.
그런데 2000년대까지 원자재 공급자나 구매자 그 누구도 이런관행이 트레이더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슈퍼사이클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기 전까지 임의성의 의미는 있으나마나였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반등하니 그 임의성은 돈 복사기가 됐다.
카길과 골드만삭스에서 석유 트레이더로 일했던 톤 클롬프Ton Klomy에 의하면, 과거 원자재 중개 업체는 상당한 폭의 임의성을 활용해 돈을 벌었다고 한다.- 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