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 변신한 여자 이야기-나이트비치
가영 2024/04/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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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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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 데뷔작이자 자전적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저자가 아이를 낳고 이 삼년간 전혀 글을 쓰지 못했던 경험을 토대로 했다. 책 속 나이트비치 역시 전도유망한 예술가였으나 아이를 낳고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하게 된다. 먹고자고싸고 기본적 욕구 해결은 물론이며 예술의 'ㅇ'도 생각할 틈이 없다. 출산 이전의 자신의 모습과 큰 괴리감을 느끼며 자괴감에 빠진다. 남편은 주말 제외 매주 출장중이고 혼자 아이와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이상함을 감지한다. 목덜미에 수북히 돋아난 까만 털과 부쩍 자란듯 뾰족한 송곳니가 눈에 띈다.
🔖P20당신 말이야. 남편은 여전히 망설이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어젯밤 한마디로 개(bitch)같았어.
자조적인 농담을 하던 여자는 몸의 변화와 더불어 어느날 밤 완전히 나이트비치로 각성하게 된다. 이를테면 온몸에 진흙을 묻힌 채 밤 거리를 뒹굴고 달리며 동물을 물어 죽이기도 한다. 야성과 원초적인 본능에 눈 뜨게 된 나이트 비치.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불안하지만 거침없다. "개"로 변신한 후에야 억눌려 있던 자존감, 활력, 창조성을 되찾는다. 자신의 열망과 마음에 귀 기울인 나이트 비치는 다시 태어난 거나 다름없다.
책에선 처음부터 끝 장까지 여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 혹은 나이트 비치로 등장한다. 개로 각성한 후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실제 그 과정만큼이나 여성에게 주어지는 출산, 육아를 포함한 관습의 무게는 다분히 폭력적이다.) 그렇지만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이라면 , 이름과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사회와 관습이 요구해온 여성성, 모성의 기존 관념에 억눌린 경험이 있다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 '이라 말한다. 견디다 못해 개로 변신한다는 설정이 정말 신박했다. 읽어나갈수록 이야기를 정말 잘 만들어내는 작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직접 경험할 수 없다면 그 경험의 방식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신비롭고 숭고해서 그러므로 기꺼이 (군말없이) 감수해야 하는 기존의 모성성을 조각조각 해체한 이 소설이 반가운 이유다.
-책속 한줄
🔖P90 난 지금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 됐어요. 이 현실을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도 몰라요. 현실에 만족하고 싶지만 , 내가 만든 감옥 안에 갇혀 나 자신을 계속 괴롭히다가 한밤중에 무화과 쿠키를 폭식하며 울음을 참아요. 사회적 규범, 성 역할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정말 짜증날 정도로 무딘 생물학이 날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물론 내가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기도 힘들지만요. 그냥 늘 화가 나요. 언젠가는 이 모든 고뇌를 보여 준 현대의 사회체계를 내 작품으로 비평하고 싶지만, 더는 뇌가 아기를 낳기 전처럼 돌아가지 않아요. 지금 난 정말 바보가 됐어요. 다시는 똑똑하지도, 행복하지도 , 마르지도 않을 것 같아요. 자꾸 내가 개로 변할까 두렵기만 해요.
🔖P138 제겐 엄마 노릇만큼이나 예술도 필수적으로 보인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해답이 없습니다. 나 자신으로 살려면 예술은 필수적이니까요. 예술이 없다면 전 아마 사람이 되는걸 그만둬야 할겁니다.
🔖P139여자는 개가 된다는 생각이 좋았다. 짖거나 으르렁거릴 수 있고, 그것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으니까.
🔖P154 남편이 자기역량을 발휘하는 동안, 나이트비치는 얼마나 화가 나고 지쳤는지, 직장에서 멀어지고 경력이 보류되고 예술이 보류되고, 인생도 무기한 보류된 채 지금 집에만 있다는게 얼마나 씁쓸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P255 얼마나 많은 세대의 여자들이 자기네의 위대함을 뒤로한 채 시간을 허비하며 결국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방치한 걸까?
🔖P320 자기 일을 자연스럽게 평가절하한 탓에, 일주일 내내 일하는 남편에게 주말에는 집안일 좀 도우라고 말하는 것조차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가 된건 잘했어. 가서 네 할일이나 해, 솔직히 그렇게 어렵진 않아 라는 문화적 관념을 주입당해왔더라는 걸 깨달았다. 똑똑하거나 흥미가 있는게 아니더라도 엄마노릇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서평단 활동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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