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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야외수목원에 다녀왔다. 대개 저녁식사 후에 산책을 하는데, 가을까지는 그것도 괜찮지만 추워지면서부터는 깜깜한 겨울밤 속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며칠째 "밝은 낮에 산책하기"를 벼르던 터. 용산가족공원 대신 야외수목원에 가기로 한 것은 모처럼 밝은 낮에 나무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지난 월요일까지만 해도 황금빛 가을이다가 밤 사이 내린 폭설로 하루 아침에 겨울이 되어버렸으니... 어떤 풍경일까. 


산에는 아직 가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 수북히 깔린 갈잎 하며, 뭔가 분위기가 다른데? 하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꺾어진 소나무 가지들. 베어낸 것이 아니라 원줄기에서 찢어져 꺾이고 땅에 떨어진 가지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소나무가 많은 쪽으로 갈수록 굵은 가지들, 심지어 원줄기까지 찢어진 생살, 생나무속이 날카롭게 시야를 파고들었다. 아, 상록수여서였구나. 푸른 잎을 수북히 달고 있는 만큼 눈이 많이 쌓였겠구나. 어떤 곳에는 큰 나무의 줄기가 부러지면서 옆의 작은 나무를 덮쳐 작은 나무까지 쓰러지고 찢어진 것도 보였다. 세상에! 눈 무게가 이 정도라니! 눈이 많이 쌓였을 때는 걸음이 불안해 올 수도 없었지만, 그날 숲에 온 사람이 있었다면 나무들이 연신 꺾이고 찢기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며칠 전 신문 기사가 생각났다. 설해목이라는 것. 나무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꺾인다는 것. 그래서 일본의 눈이 많은 지역에서는 나뭇가지들에 줄을 매어 우산처럼 버텨준다는 것. 


신문을 뒤져 다시 찾아보았다. 유키즈리(雪吊, 설적)라고 하는구나. 기사를 대강 읽고는 나뭇가지들을 서로서로 얽어매 두는 정도로 상상했었는데,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나무마다 이렇게 실제로 우산 살대 같은 것을 씌워주는 것이다! (어떤 사진을 보고 살대를 따로 만들어 파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고 이렇게 일일이 줄을 매어주는 모양이다). 




우리는 어느 세월에 이런 데까지 신경쓰게 되려나. 나무건 사람이건 상하지 않고 온전히 제 모습대로 서게 하는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앞서 가던 어떤 이가 걸음을 멈추더니 휘어진 나뭇가지에서 잔가지들을 꺾어내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지? 관리직원인가? 그가 지나간 자리에 이르러 보니, 잔뜩 휘어진 가지가 아직 부러지지 않은 채였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어내주려고 그랬구나. 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나무에 대해 뭔가 아는 걸까. 아니면 그저 측은지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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