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申)"는 상하이의 별칭이다. 상하이는 전국시대 춘신군(春)의 봉지였기에 ‘신(申)‘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며, 진나라 때 사용된 낚시 도구인 ‘호(扈)‘와 연관된 우쑹강 하류의 별칭 ‘호독(扈瀆)‘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인 ‘호(滬)‘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송나라 말기에 상해진(上海鎭)이 설치되었으니, ‘신호‘는 더 이른 시기의 지명인 셈이다.
상하이는 1843년에 정식으로 개항되는데, 이는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1842년 난징 조약에 5개의 개항장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결과였다.- P96
바로 시베리아[西伯利亞]를 거쳐서 러시아 수도에 들어간다면 노정은 가까울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처럼 떠나는 대사의 일행이 지나는 길의 산천과 구미)의 국경을 겉으로라도 볼 겸하여 상하이에서 북미를 거쳐 서유럽으로부터 러시아 수도에 들어가는 길을 취하게 되었다. 4,000년 이래 갇혀 있던 조선의 깃발이 태평양 만리 창해에 흩날리고, 캐나다(加陀, 미국[合]에 흩날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의 수도를 지나 독일의 국경을 횡단하고 러시아의 관문에 들어서게 될 제 과연 역사의 변천과 세파(世)의추이에 금석현수(今昔懸의 감(感)이 없을 수 없었다.
- <별건곤> 제6호(1927. 4.)- P109
정오에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그저께 요코하마에 정박하니, 수려한산천, 견고하게 쌓은 부두, 높고 큰 건물, 잘 정비된 거리, 끊임없이 이어진전등과 가스등이 사람의 눈앞을 갑자기 환하게 했다. 동경에 들어가자 배치된 모든 것이 참으로 오묘한데, 정밀함에도 더욱 정밀하기를 구하고 날로또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이는 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 서양의 제도를 근면하게 배워서 이처럼 개명된 것이요, 남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니다."
-『환구일록』 4월 17일- P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