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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오월의 정치사회학
  • 곽송연
  • 15,300원 (10%850)
  • 2023-05-10
  • : 421
이 글은 ‘어떤 죽음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남은 자들의 삶 속에서 재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억은 억압된 그리고 저항하는 개인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또 수용소 정치,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잇따른 총체적 권력의 횡포는 질식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애도하는 근거가 된다. 폭력의 그늘은 평화의 빛으로 더욱 밝게 반사되고, 이성을 회복하라는 국가의 경고는 내 이웃들의 희생에 기꺼이 공감하는 감성에 무력해진다.

5.18이 다가오기에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사실 매해 기념일마다 관련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 중요함과 가치를 망각하고 흘려보내기 쉬운 것 같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와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로 박사논문이 다름아닌 5.18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남도 부근에서 성장했으나 그때 쉬쉬하던 분위기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는 5.18에 대해 가해자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을지 질문한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이 한낮의 폭력을 전시한 잔인한 군인들과 지휘관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벌였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는 왜 고립된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이 책은 5.18에서 벌어진 학살의 실태, 그 원인과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물로 가해자에 대한 논의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5.18 가해자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5.18 당시 가해자들은 고위간부&지도자와 정규군(특히 특전사)으로 나뉜다. 고위간부&지도자는 안정, 안보, 발전에 따른 군부 권위주의 정권 담론에 기대 12.12와 5.17에 이르는 다단계 쿠데타를 기획하고 5.18에서 신군부 조직을 이용하여 실행했다. 정규군은 친위부대, 장기근속자 위주의 전문특수부대로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동료집단을 압박, 순응하는 시스템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한 제노사이드의 경험으로 인해 실행력이 더해졌다. 특히 5.18의 죽음은 정규군, 그중에서도 특전사 부대원들이 계엄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의 정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희생자의 특성’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과 의도’이다.

그렇다면 당시 대중은 왜 침묵했는가? 저자는 이를 스탠리코먼의 부인전략 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부인전략은 총기발사&자위권 발동의 전면적 부인, 완곡어법&책임전가의 해석적 부인, 필요성 강조&피해자의 존재부정&맥락화&자기중심적 대비인 함축적 부인이 있다. 먼저 5.18 당시 언론통제로 공식적인 논의 진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소문으로 떠도는 집단잔학행위에 대해 대중은 부인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은 사건을 방조하거나 협력했다. 사건에 대한 부인은 당시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람들 간 반목을 조장하고 사회와 국가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

학살 후 진실은 어떻게 은폐될 수 있었나? 국가는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망각하는 방식으로 국가 공식 역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오래도록 한민족이라는 기제는 민족의 통합이 당연하다는 논리 하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게 만들었고 여기에 남북한으로 정부가 나뉘면서 이념에 기반한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 신군부 정부는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여 운용함으로써 전체주의의 지배원리를 실현시키고 배제를 합법화하는 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이를 구체화시켰다. 이는 국가 공식 기제에 반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고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에 의하면 안정, 발전을 위해 안보는 필요하고 그 반대 급부로 민주주의는 극단적 민주론, 교조주의로 치부되었다.

보편/특수, 서양/동양, 선/악, 적/아我의 구분을 전제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구조는 이 시대의 지배 담론을 관통하는 인식론적 기저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명 교조주의, 극단적 민주론으로 지목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오는 위기를 자초하는 ‘혼란’이다. 이로 인해 ‘혼란’은 국가가 지목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인 동시에 시대를 진단하는 대표 키워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절대 악’으로 상정된다. 그 이유는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서구와는 다른 ‘특수’ 상황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안보와 안정,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망국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화문이 진단하는 이 시대는 “구시대”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맞이하는 일종의 “전환기” “분기점” “분수령”이며, 이를 위해 “총화” “단결” “단합” “통합”이 요구된다.

국가는 개인, 정당, 지역을 국가의 단결과 통합에 반대되는 사적인 이해 집합체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로 대비시킨다. 광주는 불순분자의 배후가 있는 진원지로 대표되며 지역주의의 실현 모델이 된다.

그렇다면 학살은 왜 일어날까? 집단 간 격렬한 갈등이 있을 때 반드시 학살로 이어지는가? 저자는 5.18이 정치적 학살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노사이드는 불평등이 민족, 종교, 인종, 사회경제적 차별 위에 중첩된 사회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정치적 학살은 여기에 국가의 성격과 의도가 포함된 형태다. 한국의 쿠데타(들)는(은) 대항세력에 의한 체제 전복 위기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발생했다. 이념 갈등에 의한 사회균열운 정치적 균열을 만들어내며 유신체제를 복원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화로 나아갈 것인가로 나뉘게 만들었다. 미국의 카터 집권 후반기 동북아 정책은 남한 정치의 국내 불안요소는 동북아 안정에 해가 된다 인식했고 이에 따라 5.18에 침묵(묵시적 동의)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5.18은 반공주의,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 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끝나지 않는 학살을 직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1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공포되었다고는 하나 전두환을 포함한 5.18 학살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현재도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 조작하고 이를 지역, 사회 갈등으로 만들어내려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반인권 범죄와 그 최극단인 학살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내면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의 배제의 문화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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