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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모리스 로사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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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30
1235년 카라코룸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무렵, 몽골은 중앙아시아와 만주, 북중국의 많은 부분을 정복 및 점령했고 고려로도 진출했다. 우구데이 카안은 추가로 서방 원정을 계획했고, 이 원정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새로 획득한 영토를 약탈하기보다 이곳을 통치할 행정 중심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수도 건설은 몽골이 약탈자가 아니라 통치자로서 정통성을 한층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 본토는 여전히 이동하는 목축민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되지 않았다. - P16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시리즈 마지막에 왔다. 시리즈를 구입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3권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갖고 읽었다. 3권의 내용은 몽골 제국에 흡수되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통치된 지역과 당시 관계를 가진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시기 특정 지역에 어떤 국가가 세워지고 무너졌는지, 그리고 몽골이 행한 통치 방식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구데이는 제국 관리를 위해 카라코룸에 수도를 건설했으나, 이후 자연재해로 인한 환경적 요인, 카안을 둘러싼 권력 투쟁 등 내부 갈등으로 그가 다스리던 몽골 지역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구데이 가문과 차가다이 가문 간 충돌의 결과로 원 조정은 1307년 몽골 지역의 군인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새로운 행정기구를 마련했다. 이러한 관료 기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초원을 통치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목민 가구와 집단은 광활한 몽골지역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청(淸, 1644~1911)과 몽골인민공화국(1924~1992. 1928년부터 1932년까지 가축의 집산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도 목축민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몇몇 작은 마을들과 주변 지역, 그리고 거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앞으로 설명할 정책들을 따랐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게다가 조정에 있는 몽골인들은 원래 초원 출신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꽤 오랫동안 정주 세계에 거주했고 일부는 평생을 중국에서 보냈다. 그들은 유목민 사촌들과 연결이 끊겼고, 관심사와 정책 선호도도 달랐다. 이 몽골인들과 원 조정의 중국인 관료들이 고안한 행정기구가 과연 초원에서 효율적이었는지 여부를 규명하기는 어렵다(P34~35).

이후 권력을 잡은 쿠빌라이 카안은 원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주둔군을 배치하는 대신 관료와 군인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등 떡밥을 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비효율적이었고 관리는 부패했다. 거기에 경제적 불안정이 더해지면서 막판에는 통치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러 몽골 집단 사이의 충돌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서 귀환한 몽골인과 몽골 지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피난민은 그 정확한 수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10만 명에 달했다. 이 새로운 집단은 목초지, 물, 가축 무리를 놓고 거주민과 경쟁했다. 따라서 식량과 필수품이 부족해졌다. 1388년까지 계속된 명의 공격으로 사태가 더욱 심해졌는데, 카라코룸에 위치한 보급 본부뿐만 아니라 토지도 손상됐기 때문이다. 이어진 명조의 무역 제한으로 몽골은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 중국을 침략해야만 했다. 이와 동시에 몽골은 분열 상태였다. 서몽골 집단 중 하나이자 몽골의 혼인 동맹이었던 오이라트가 칭기스 가문과 이른바 동몽골에 도전했다. 그들이 아릭 부케의 후손들과 손을 잡으면서 북원이 중국에 대한 권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P44).

고려와 칭기스계 관계의 다른 측면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거의 30년(1231~1259) 가까운 파괴로 점철된 전쟁이 끝난 뒤 고려 황실은 1274년에 칭기스 가문 황제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이러한 관계는 한 세기 동안 지속됐다. 칭기스계는 일부 초기 동맹 세력 및 지방 군주(콩기라트와 위구르 등)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몇몇 정치체(금, 남송, 맘룩)와는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벌였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과 혼인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눈에 띄게 결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14세기 중반까지 고려는 동북아시아에서 칭기스계의 방벽이 됐고, 1380년대에는 정통성을 갖춘 국가로서 칭기스계의 지위를 인정하는 동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 P51
이후에도 1380년대 내내 고려는 가문, 외교, 군사 이해, 공동의 역사 등 공식적, 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원과 얽혀 있었다. 요동은 많은 고려 이주민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또 고려 이후 들어선 조선 왕조의 설립에 참여한 많은 주요 관료, 군인, 지식인이 몽골 치하에서 성장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중요도를 가진다. 그리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몽골 통치 시기 한반도는 중국을 넘어 유라시아 지역까지 더 넓은 네트워크에 연결되면서 많은 문화적 교류가 일어났다.

몽골은 1220년 코카서스 지역을 정복한 뒤 셋으로 나눠 노얀(지휘관)에게 분배하여 제국의 통제하에 두었다. 일 칸국(훌레구 울루스)이 성립한 이후 권력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하자 (몽골의) 코카시아에 대한 통치는 더욱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지 귀족에 의존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백성들의 보호를 위해 대체로 몽골에 협조했다. 몽골은 복속민의 군사 원정 참여를 강제하였기에 아르메니아, 조지아 귀족들은 주치 울루스와 훌레구 울루스 간 전쟁에 참여한다. 훌레구 울루스의 가잔 칸이 권력을 차지하고 이슬람을 국교화하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자 귀족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아부사이드 재위기 훌레구 울루스와 주치 울루스 사이 대립은 절정이었다. 조지아는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여기에 페스트까지 유행하자 지역은 쑥대밭이 되었고 티무르의 침입이 더해지면서 쇠락하였다.
몽골 제국의 탄생은 중세 국제 무역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캅카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몽골의 정복은 새로운 무역로를 열었고, 서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도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다. 몽골은 캅카스의 주요 경제 중심지를 수없이 파괴했지만, 생산과 교환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이전에 국제 무역에서 소외됐던 타브리즈와 마라가 같은 도시들을 성장시켰다. - P127

˝시베리아˝라는 지명은 13세기에 작성된 「몽골비사」에 처음 등장하는 시비르, 즉 오비강과 예니세이강 사이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5세기까지 러시아에서 시비르는 오비와 이르티시 지역을 가리켰고, 러시아가 동쪽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부터는 우랄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북쪽 지역 전체를 의미하게 됐다(P139).
몽골은 시베리아의 삼림 지대를 군사 자원의 원천으로 보아 복속을 시도했으며 원 조정은 캅카스 지역의 귀족들 상대로 한 것처럼 간접 통치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몽골이 루스에 정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를릭을 하사하고 공물을 받은 것에서 입증되듯 몽골은 루스를 지배했다(P203). 몽골의 통치권은 인구조사와 공물 납부, 그리고 루스 공작들의 몽골 군사 원정 참여를 통해서도 관철됐다. 일반 루스인들은 몽골군에 징집되거나 강제 노동에 동원될 수 있었고, 특히 숙련 장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공작들은 주치 울루스를 자주 방문했고, 때로는 수개월, 심지어 몇 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P180). 또 루스 공작들 중 몽골 지배층과 혼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럽, 아랍, 남아시아는 몽골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한 곳은 아니지만 이 시기 유라시아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연결된 만큼 서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외부 역사로 파트를 따로 다룬 이유다. 특히 무역과 상업, 종교, 과학과 기술 분야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유럽은 13세기 무서운 몽골 군대의 힘을 경험하면서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충격과 파괴에 대한 두려움을 받으며 몽골이 어떤 나라인지 비로소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은 몽골의 지속적인 위협을 받았으나 유럽인들은 몽골의 존재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몽골과 몇 차례 외교 소통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몽골의 내부 분열로 분권화하고 울루스들이 서로 다른 외교적 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잘 풀리지 않았지만 상업 경제적으로는 달랐다. 흑해에 이탈리아 해양 세력,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무역을 확대하자 러시아와 일 칸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유럽과 몽골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존재는 아마도 선교사와 상인일 것이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까지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기독교의 영향이 확산되었다. 초기에 몽골이 유럽을 침공했었으나 그 침략의 충격을 극복하고 나자, 둘은 정치적, 상업적, 종교적 측면에서 관계가 발전했다. 정치적, 외교적 계획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해양 세력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호혜적 무역을 위한 유라시아 대륙로를 열었고, 흑해 식민지와 지중해 동쪽 항구라는 결절점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했다. 하지만 상인과 선교사는 자신이 활동했던 사회로부터 매우 분리된 상태로 지내며 몽골 지배층 내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P238). 상인과 선교사가 유럽에서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고 몽골 내에 자리 잡고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몽골은 1219년 호레즘 왕국을 침공하면서 아랍 세계와 처음 맞닥뜨리게 되었다. 40년 뒤에는 이라크를 몽골 지배 하에 둔다. 또 1260, 1300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를 침공한다. 시리아는 몽골로부터 두 차례의 침공을 받았으나 몽골이 잠시 점령한 뒤 얼마 후 맘룩이 지배권을 되찾기 때문에 그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몽골이 아랍-중동에 진출한 이후, 사람들이 이라크, 자지라, 아나톨리아 등지로부터 시리아와 이집트로 이주하는 인구 변화가 발생했다. 맘룩-일 칸국(훌레구 울루스) 국경 지역에서는 일부, 어쩌면 상당한 정도의 문화 교류가 있었고, 이는 1320 년대 초 ‘평화 협상 과정‘과 함께 확실히 증가했다. 몽골이 아시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개방한 것은 확실히 이집트의 술탄국, 그리고 예멘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 가지 영향만 특별히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맘룩이 시리아를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몽골이 길을 닦았다는 점이다(P279). 몽골의 위협이 맘룩을 단결하게 했다니 아이러니다. 게다가 맘룩은 몽골에게 통치술을 배워 강력한 중앙집권적 성격의 왕조를 만들었다.
남아시아(특히 인더스 남동부 지역)는 유라시아 대부분과 달리 몽골 제국에 통합되지 않았다. 몽골의 칸국과 남아시아 간에 외교 소통은 자주 이루어졌다. 이는 13~14세기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더 활발해졌다. 무슬림, 힌두교도, 중국인 상인들이 운영한 상업 네트워크도 교류에 기여했다. 상업 교류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인도양의 해상 항로 뿐 아니라 미얀마와 티베트를 건너서 원으로 가는 육로, 델리와 이란을 연결하는 아프가니스탄 고개 길 등이 있었다. 은, 말, 향신료, 도자기, 직물, 노예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었는데 남아시아가 교역지이자 중개지의 역할을 했다.

몽골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통치할수는 없다˝는 중국의 유명한 클리셰를 반증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말을 탄 채 이동하며 통치하는 것은 단점이 없지 않았지만 매우 혁신적이었음이 입증됐다. 초기의 대규모 공격 이후에 몽골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활기, 유라시아 규모의 통합, 상업의 활성화, 기술, 과학, 예술의 혁신, 새로운 종교적, 종족적, 지정학적 지형, 초원과 정주 제국 모두가 받아들인 세련된 제도를 낳았다. 몽골은 그들의 파괴적 정복에서 기인하기도 했고, 근대 민족주의 정서의 부침에 의해 더욱 강화된 야만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 제국적 유목민들은 세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P363

이로써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읽기가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술된 점이 아쉽기는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욕심이었을까. 아무래도 남아 있는 사료들이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 많을 테니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생각한다. 모쪼록 관련 연구가 더 늘어나서 후속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봐야지. 이 시리즈 기획물은 몽골 제국의 역사적 흐름을 확인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조망할 수 있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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