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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천국의 가을
  • 스티븐 플랫
  • 37,800원 (10%2,100)
  • 2026-01-05
  • : 5,080

책의 제목에 오랜만에 감탄했다. 특히 '천국'은 기독교의 '천국'과 태평천국의 '천국'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것 같아서 그렇다. 그치만 가을을 붙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홍수전이 태평천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해는 1851년이지만 사실 운동의 시작은 1850년부터 주요 흐름으로만 따져도 4년여간 이어졌기 때문에 딱히 가을을 붙이기에는 애매함이 있지 않나 싶어서다. 


이 책은 태평천국운동(입장에 따라 운동이라는 글자 대신 다양하게 부르지만 그나마 운동이란 단어가 중립적인 것 같다)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논픽션이다. 중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이젠 제법 많아져서인지 다양한 저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논픽션은 사건을 그저 서술만 하지 않아 딱딱하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중요 사건은 좀 더 강조하여 마치 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역사서였다면 이 정도 페이지의 분량을 며칠은 걸려서 읽어야할텐데 덕분에 2~3일 투자해서 읽을 수 있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있던 시기 청은 대내외적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1842년 영국과 맺은 난징 조약을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등과도 관계를 맺으며 세계 경제 체제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부는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책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고 인물과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목을 끌었다가 다음엔 특정 사건(전투)을 설명하는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목차를 보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더 신선하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홍인간은 스웨덴 선교사인 테오도레 함베리에게 세례를 받았고 홍콩에 갔을 때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인 제임스 레그 등을 통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관련 책도 읽어서 서양 문화와 문물에 아주 익숙한 인물이었다. 외국어도 능숙했다니 재주가 있었던 인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레그는 홍인간에게 전도와 공부에 집중하라고 권했지만 홍인간은 정치적 욕망이 있었던지 뿌리치고 홍수전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홍수전이 신을 만난 이야기는 마치 무슨 신화나 전설처럼 많은 이야기가 떠도는데 어쨌든 배상제회를 중심으로 모인 신도들은 그를 영적인 지도자로 여겼고 이후 태평천국은 점점 확장되어 나갔다. 1851년 1월 홍수전은 기독교 개종과 만주족 타도를 기치로 태평천국을 수립하며 스스로 천왕이란 자리에 올랐고 홍인간에게는 간왕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홍인간은 이 무렵 논설을 통해 태평천국이 나아갈 방향이자 뚜렷한 목표로 근대 산업 강국으로 내세우며 비전을 제시했다. 사촌인 홍인간이 상대적으로 한 자리를 얻기 쉬웠다면 충왕인 이수성은 홍수전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바닥부터 무진장 노력하여 마침내 장군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태평천국운동 초기 영국은 청 정부군과 태평천국군 중 어느 한편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다만 당시 상하이에 있던 영국 최고위직 프레더릭 브루스는 청 정부군 고위직에 있던 '오후'의 부탁으로 청군을 지원하는 편에 섰다. 물론 상하이에 있던 영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인 지휘관인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는 중국인 상인 집단의 손을 잡고 외국인 중심의 민병대를 꾸려 태평천국군 편에 서서 청 정부군을 몰아내려 했다. 그리고 청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은 태평천국 편에 섰는데 중국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생각과 서양에 우호적인 방향성이 대체적으로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으로 다구포대에서 패배한 영국은 청에 설욕하기를 원했기에 중립 노선을 내려놓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와 프랑스 함대까지 동원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증국번은 청의 상비군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 군대를 새롭게 조직하였다. 자체 규율로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세뇌를 한데다 구성원이 마을, 가족 단위였기에 서로 서로 감시하는 역할까지 더해져 결속력이 강한 군대가 되었다. 덕분에 태평천국군에 승리하여 황제의 주목을 받았지만 함풍제는 얼마 후 사망하고 너무 어린 황제를 대신해 서태후(와 동태후)가 정치 무대에 메인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1861년 미국에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산 면직물 가격이 폭등하여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급감하는 등 실물 경제가 요동쳤다. 링컨이 남부연합의 모든 항구를 봉쇄하자 영국은 중국의 조약항들이 자신들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복이라도 하듯 영국이 미국 남부연합의 교전국 지위를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결과적으로 이는 태평천국의 주권도 인정하겠다는 꼴이 되었다. 태평천국군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홍장은 증국번의 군대와 비슷한 성격의 민병대를 안후이성에서 조직하기 시작했다(규칙까지 복붙). 서태후와 어린 황제는 증국번에게 정부군 지휘 책임을 맡겼는데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1862년이 되면 영국군과 프랑스군,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가 힘을 합해 태평천국군이 점령한 상하이를 탈환하기 위해 뛰어들며 접전이 벌어진다. 1863년에는 피난민이 몰려들어 상하이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다. 이는 톈진에서 베이징까지 확산되었고 군대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증국전의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위화타이의 석축 요새를 점령한 이후 청군은 계속 세력을 뻗어나가며 태평천국군이 빠져나갈 출구를 장악해나갔다. 1864년 홍수전은 이미 병으로 사망한 뒤였던 때 좌종당 부대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항저우를 탈환하고 이수성이 증국번에 의해 잡히고 난 뒤 사실상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수성은 태평천국군의 거의 마지막을 지휘한 반면 홍인간은 이때가 되면 초기의 진취적인 기운도 없어졌다는 식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앞서도 설명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홍수전의 사촌이자 태평천국에서 간왕 노릇을 한 홍인간과 충왕 이수성에 대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동안 사실 홍인간에 대해서는 뚜렷한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홍수전은 오히려 약간 뒷배경처럼 배후 같게 그려지고 홍인간이 메인에서 지휘를 이끄는 실세처럼 그려져 있다. 충왕 이수성의 역할도 제법 비중 있게 다뤄진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나 축소를 감안해야겠지만 태평천국운동을 조금 더 상세히 뜯어볼 수 있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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