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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오키나와 스파이
  • 김숨
  • 17,100원 (10%950)
  • 2024-07-08
  • : 1,148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라면 한 권의 책에서 얻는 지식과 감동에서 그치지 않고 연계 활동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결과일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앞서 읽은 서경식의 나의 일본미술 순례 2권의 오키나와 전투도란 그림에 대한 관련 이야기를 접하면서다. 오키나와 전투도를 보면서 받은 충격이 적지 않았던데다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전투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니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김숨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문학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지만 그나마 역사 소설은 다른 소설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다만 진입 장벽은 낮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오히려 완독하고 나서도 좋은 인상을 받기란 더 어려운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뒤 어지러움을 동반한 혼란과 좌절을 느꼈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일까?'를 끊임없이 살피는 과정은 신체와 정신을 지치고 피폐하게 만들지 않을 리 없다. 자신과 가족이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며 그 결과 그들에게 타인은 의심을 넘어선 적시와 격멸의 대상이 되고 만다. 

군인들과 소년들의 입에서 “스파이!” 소리가 쉼 없이 내뱉어진다. 광분한 군인들과 소년들이 저마다 제 목소리로 외치는 “스파이” 소리는 합쳐져 신통력 있는 주술이 된다.

질문해보았다. 과연 스파이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일까?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스파이는 수사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그저 그 사람을 스파이로 규정하는 순간 스파이가 되고 방조라는 행위도 스파이로 둔갑되고 마는 것이다. 


일본 해군통신대가 오키나와에 들어온 이후 마을마다 치안을 명목으로 경방단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경방단은 치안을 빌미로 마을 사람들이 스파이 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부역에 강제 동원하며 일본 해군통신대의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일본군, 미군도 두려운 존재지만 경방단은 마을 사람들에게 인간사냥꾼으로 불렸다. 심지어 아직 어린 아이들이 그곳에 들어가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고 나아가 죽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잔혹하리만큼 끔찍했다.


북쪽 마을의 소목장에서 경방단장을 포함한 9명이 살해되었다. 그들은 일본 해군통신대에 협조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살해된 것이다. 소목장의 가장 어린 일꾼이었던 벤이 살해된 것을 들은 어머니는 괴로워 미쳐버렸다. 

요이시네는 본섬에서 미군의 힘을 경험하고 일본군 병사로 출전하여 총알받이가 된 형들을 떠올린다. 그는 일본군은 미군을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일본군에게 스파이로 몰린 그를 보고 처자식과 함께 오키나와를 떠나라 명한다.

사토는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대단하다. 그는 조선인이 몰래 미군을 만나고 다니며 일본군에 해가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일본이 전쟁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 책임을 조선인에게 다 지우려 생각하고 있다.


어느 시절, 어디에나 차별은 존재하지만 그 무렵 오키나와도 그런 시공간 중 하나였다. 오키나와인은 본섬에 사는 일본인에게 차별을 받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처지가 억울해서일까) 또 조선인을 차별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조선인이라고 다 같지 않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조선인도 있었겠지만 전쟁 때문에 본섬에 건너갔다 오키나와로 다시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인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낮은 차별의 대상이 된다. 


보험 외판원을 하던 조선인 고물상은 19살에 일을 구하러 오키나와에 왔다가 오키나와 출신인 후미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았다. 이제는 조선에서 산 시간보다 오키나와에서 산 시간이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인 죄로 미군 스파이로 취급당하는 자신의 현실이 그는 몸서리처진다. 그렇지만 섬을 탈출하고 싶다가도 오키나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자신의 터전이 이곳이기 때문에 차마 발길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자 먹을 것이 떨어져 군인들은 배가 고프다. 주머니칼로 새끼돼지마저 잡아야 할 실정이 되었다. 섬에 있는 것은 사람이고 물자고 남아나는 것이 없다. 3백 마리가 넘는 산양도 도살되버리고 만다. 


천황의 항복 라디오 음성이 나온 후 오키나와 섬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천황의 항복 선언이 분하고 슬퍼서 흐느껴 울었지만 한편에서는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안도하며 집으로 갔다.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어. 미국 세상이 됐으니 오늘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겠어.” 일본이 패전하고 난 뒤 사람들의 태세 전환은 생각보다 빨랐다. 하긴 해방 후 조선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지 않았나. 친일파는 태세 전환을 하고 친미반공의 흐름을 탔으니 말이다. 


미군 스파이 취급을 받던 요미치는 일본이 패망했으니 이제 더는 숨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하고 밖을 나섰으나 일본군 지시를 받은 족제비, 료타, 겐을 비롯한 인간 사냥꾼들은 요미치를 찾아내 기어코 죽이고 아내인 게이코와 아기까지 모조리 살해해버린다. 요미치의 아버지인 요이시네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탓을 하며 자결한다. 

계속 드는 생각은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진저리가 나고 징글징글하고 이쯤 되면 모든 인간들에게 혐오감이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 사냥꾼의 가족이 인간 사냥꾼을 바라보는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 겐의 어머니인 다미는 그가 한 짓을 마을 사람들에게 듣고 그 죄를 용서해달라며 빈다. 


미군에 손을 댄다는 명목으로 일본인 스파이가 죽임을 당했으니 조선인들이 무사할 리 없었다. 

일본군, 인간 사냥꾼, 경방단원들은 마침내 조선인 고물상 일가를 죽이러 찾아온다. 그 소식을 들은 조선인 고물상과 아들 히데오는 아내인 후미와 나머지 아이들과 헤어지고 사네요시 집에 가서 숨는다. 사네요시는 약한 마음에 조선인 고물상과 히데오를 받아줬지만 이내 후회한다. 그를 숨겨줬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조선인 가족의 끝은 참혹했다.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분위기를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군에 미군까지 상대해야 했던 마을 사람들, 거기에 서로를 고발하여 죽고 죽이는 상황이란 과연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역사적 상황이 그렇다고 하여 인간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선동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행위가 정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역시 남았다. 한편으론 가해자의 가족이 가해자의 행위를 대신하여 자신의 탓이라며 죄를 구하는 일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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