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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
  • 윌리엄 달림플
  • 33,300원 (10%1,850)
  • 2025-10-10
  • : 7,530

교역의 시대 동남아시아에 대한 책을 읽고 이어서 이후 인도를 배경으로 한 기업이 경제를 잠식하는 과정을 다룬 책을 읽게 되었다. 내 취향이 아닐까봐 우려했는데 이야기처럼 잘 읽혀서 진도를 빨리 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형 상업 기업과 제국적 권력과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기업이 국가(의 권력자), 제국주의와 결탁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 책은 긍정성보다 부정성에 더 초점을 맞춘다. 


1599년 동인도회사의 시작은 다른 기업들처럼 미약했다. 설립 후 100년이 넘어서도 상근 직원이 35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인도 등지에서 거둬들이는 물자와 세입을 바탕으로 한 부가 어마어마해진 상태였으니 그 수완이란 놀랍긴 하다. 1600년 12월 마지막 날 동인도회사는 칙허장을 통해 동인도와의 무역을 15년간 독점할 뿐 아니라 영토를 통치하고 군대를 일으킬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으며 인도를 향해 항해를 떠났다. ‘누구 맘대로. 허락한 적도 없는데…’ 그러니까 애초부터 동인도회사 권리는 지나치게 주어져 있었던 셈이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항해를 시작했을 때 남아시아에서는(특히 몰루카 제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미 이익을 선점한 상태였고 1602년 투자금 규모가 10배에 달했다. 투자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이득이 있어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무렵 인도는 무굴제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굴 제국은 직물 산업을 이용하여 어마어마한 수입을 끌어들였고 제국은 반짝였으며 무굴 황제는 세계적인 갑부였다. 동인도회사는 인도를 처음부터 무력으로 점령하려 하지 않고 이권 획득을 위한 협상 상대자로 삼고자 했다. 물론 뒤에서는 무굴 제국의 분열과 갈등을 이용하며 이권을 확장하며 인도 내에서 영향력을 넓혀 나간다. 무굴인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영악한 수단이고 기업가 마인드일지도. 마라타 연맹, 페르시아 나데르 샤가 무굴제국을 공격해 들어오면서 혼란이 가중되었고 중앙 재정은 바닥이 났으며 이에 지방은 제갈길을 찾는 형국이 된다. 


그들은 내분의 불협화음을 용의주도하게 부추기다가 최대한 신속히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중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소하려고 나서므로 그들의 행동이 이 같은 장기 전략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해 동안 고수해온 이런 행동 패턴으로 그들은 벵골 경계 너머로 많은 지역을 차지했고, … 그들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는 모습을 보이는 법 없이 전진하는 게임을 한다. 한마디로 말해 로마인들이 정치에서 따른 그 오랜 금언, 다시 말해 타키투스가 표현한 대로 백성을 노예 상태로 전락시키기는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현지의 세습] 군주들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금언을 열심히 실천한다. - P489


이때 인도에 발을 담그려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끼어든다(프랑스 동인도회사는 이후 인도가 영국 동인도회사에 완전히 이권을 내어줄 때까지 끊임없이 경쟁자로 나선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에서 7년 전쟁으로 제국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태였다(나중에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들어선 뒤 영국과 프랑스는 또 한 번 치열한 경쟁에). 

벵골의 은행가, 상인을 비롯한 유력 세력들은 동인도 회사에 힘을 쓰지 못하는 군벌에 등을 돌리고 오히려 동인도회사와 결탁한다. 여기에 군벌의 실정과 무능으로 인한 국고 바닥은 무굴 귀족의 불만을 키우게 된다(반면 인도 내에서 영국 상인은 세금을 안내고 벵골 경제를 잠식해간다). 

그렇지만 무굴 귀족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점점 자각해가고 있었을 것이다. 늘어만 가는 동인도회사의 이권에 자신의 밥그릇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렇게 각지에 있던 무굴 군벌들이 연합했고 이는 북사르 전투로 영국 동인도회사에 대항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알라 하바드 조약으로 인도 북동부 지역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수중에 완전히 들어가게 된다. 이어서 인도 남부를 차지하기 위한 폴릴루르 전투도 영국 동인도회사의 승리였다.

마라타 연맹과 샤 알람이 결합하여 동인도회사에 대항하고자 한 시도도 있었지만 지휘관이 사망한 뒤 일어난 내분과 폭정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지막 남은 인도의 마이소르 군벌 세력마저 1792년 일어난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동인도회사와 인도 내 질서는 확연히 한 쪽으로 기운채 회생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다. 

마이소르의 티푸가 프랑스 나폴레옹의 도움을 받아 델리전투가 벌어졌지만 이것은 사실 영국군 대 프랑스군의 전쟁이 아니었을까.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저자의 인물에 대한 평가와 묘사다. 이는 독자마다 나름의 해석과 판단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기억나거나 인상적인 인물만 몇 명 언급해보려 한다. 우선 영국 동인도회사의 클라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사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은데(출세와 명예에 욕심이 많았던 듯^^;) 몇 번이나 좌절되고 나서 동인도회사 회계원이란 작은 직책에서부터 시작하여 결국 벵골 제독으로 오르게 되는 사람이다. 이에 맞서 인도 벵골의 권력자로 시라지 우드다울라가 있었는데 그는 남아 있는 기록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악평과 혹평이 가득하다. 클라이브에게 결정적으로 진 탓이 크겠지만 폭정으로 공포정치를 했기 때문이 클 것이다. 사촌마저도 그를 강간범이자 사이코패스로 기록해놓은 걸 보면 정상인의 범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인물이 한참 뒤에 나오는데 쿨람 카디르다. 그도 황제인 샤 알람을 내쫓고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데 그와 관련한 기록이 너무 끔찍해서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다. 

승승장구했던 클라이브에 뒤를 이어 워런 헤이스팅스가 자리를 잇게 되는데 묘사가 굉장히 후한 편이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이전에 이루어졌던 권력 오남용(클라이브?)이 시정되고, 유용한 규정들이 정부의 모든 부문마다 제정되었다. 헤이스팅스는 클라이브와 달리 인도를 진심으로 좋아했기에…’(P361)는 것이다. 과연 인도를 진심으로 좋아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아무튼 프랜시스와 버크가 헤이스팅스를 법정에 세워 그를 탄핵하려고까지 한 것을 보면 인기를 시샘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샤 알람은 최후까지 살아 남은 사람인데 과연 그가 인도의 대부분의 이권이 동인도제국에 넘어간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책의 표현에 의하면 신체는 망가지고 종교에 귀의하여 속세를 떠난 사람 같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왠지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전투 과정과 결과보다는 전투 사이 벌어지는 인물들의 묘사와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또 에드워드 기번이나 웰즐리 같은 유명 인물을 책에서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이 책은 동인도회사라는 기업이 시작해서 인도에서 자리를 잡은 뒤 물러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거대 기업의 권력의 남용과 횡포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니 역사적 교훈을 삼을 만한 일이다. 


동인도회사의 도래가 18세기 인도에 가져온 파열은 그것을 다루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문학 장르가 발명될 정도였다. 이는 이브라트 나마, 즉 훈계서로 알려진 교훈을 이끌어내는 역사서 장르다. 이런 역사서의 교훈적 목적은 이 장르의 가장 유명한 저자인 카이르 우드딘 일라하바디가 간단명료하게 표현했다. “(이 같은 과거의 삶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대의 미래를 위해 유의하라)”. -P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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