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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기획
  • 18,000원 (10%1,000)
  • 2017-08-31
  • : 155

'『국체의 본의』는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나 천황기관설 등의 대항 사상을 배척하고 메이지의 왕정복고에 내재된 신화적 국가관을 전면적으로 전개하여 국가 공인 사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내세운다. 1937년 이 책이 간행된 해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며 국가총동원체제가 이어졌기에 시점이 절묘하다고밖에 없다. 

신화적 국체관을 받들고 세계대전으로 향한 일본 체제는 패전으로 붕괴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주류사회는 헌법 개정을 통해 내부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며 평화 헌법을 부정하고 보통 국가라는 허명 아래 전쟁 국가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극우정권을 후원하는 단체인 일본회의는 국체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전형적인 예다. 

1945년 12월 15일 GHQ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던 이 책은 2009년 사토 마사루의 『일본국가의 신수: 금서 「국체의 본의」를 해독하다』가 출간된 이후 해설서와 번역서, 관련 저서 등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다. 언론과 미디어도 이에 호응하며 과거의 영광을 복기하고자 한다.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도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책을 읽으면 '무슨 헛소리야'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분노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선 식민지 체제의 영향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고 극우 파시즘이 판을 치는 지금의 시기에 미루지 않고 읽어야 한다고 여겼다.


책이 출간될 무렵의 배경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일본은 서양 문물의 급격한 흡수로 인해 전통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했다. 서양의 개인주의, 자아 주장, 자유 주의를 비판하며 집단(그러니까 가족, 국가)을 강조한다. 가정에서는 집이 나라이고 충효는 모든 선의 근본이라 주장한다.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에 송(宋)학이 수입되고 선(禪)학이 유행하면서 대의 명분론과 국체론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주자학을 채용하면서 신도사상을 바탕으로 한 국학이 성립하고 발전하는 배경이 되었다. 


신을 받드는 것, 정치를 행하는 일의 근본은 같다.

천황을 만세일계의 황통에서 나와 신민이 천황을 섬기는 것은 의무도, 힘에 굴복하는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추앙과 순종이다.

충효는 천황을 섬기는 관계에 핵심이며 일본은 가족국가이고 황실은 신민의 종가다. 

신심은 죄와 부정을 씻고 사를 버리고 공에 합치되어 개인을 버리고 국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참된 자기를 살리며 국가에 봉사로써 남을 동화시키는 힘을 키워야 한다(몰아동화).

무사도는 정직, 근본, 바른 모습을 지닌 사람이다.


간단히 책의 핵심 내용만 추리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더 많지만 말만 바뀌었지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


스진 천황(10대) 시대에 사도장군을 지방으로 보낼 때 다음과 같은 조칙이 나와 있다.

"... 도읍에서 멀리 떨어져 천황의 위엄이 미치지 않는 지방의 백성들은 아직 법도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아직 왕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이에 경들을 선발하여 사방으로 보내니 짐의 법도를 알리라." - P48

국토 경영의 정신이라며 천황의 위엄이 퍼지지 않은 곳은 이를 교화시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교묘한 숨은 논리에 날이 설 수 밖에 없다.


읽으면서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무사도는 정직, 근본, 바른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남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는데 과연 그런 것인지. 그들이 말하는 국민성과 국민 정신은 진심과 조화라는데 과연 그런 진심이 어디에 표출되었는지 말이다. 힘에 굴복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따져 묻게 된다. 


마지막 인용구가 나는 참으로 의미 심장했다. 공교롭게도 메이지 유신에 관한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으니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폭력과 전쟁을 향수로 미화하려는 시도를 앞으로도 계속 경계해야 할 것이다.

창조는 항상 회고와 하나가 되고, 복고는 항상 유신의 원동력이 된다. - P131


충은 천황을 중심으로 받들고 천황에게 절대 순종하는 길이다. 절대 순종은 나를 버리고 사사로움을 멀리하여 오로지 천황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이 충의 길을 행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유일한 살 길이고 모든 힘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이른바 자기 희생이 아니고, 소아를 버리고 크신 능위에 살면서 국민으로서의 참 생명을 떨쳐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 - P55
효는 동양 도덕의 특색이지만, 그것이 나아가 충과 하나가 되는 점에 우리나라 도덕의 특색이 있고, 세계에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무사의 선언이 그 집안이 황실에서 나온 것을 선언하고, 또한 가헌이나 가훈이 황실을 섬기는 관계를 그 먼 기원으로 삼은 것은 완전히 동일한 도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 P67
우리 무의 정신은 살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활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전쟁은 그 의미에서 결코 남을 파괴하고 압도하고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도리에 따라 창조의 역할을 하고, 큰 조화 즉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쇼와 천황 즉위식의 칙어는 다음과 같다.

"황조황종께서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실 때, 나라를 집으로 삼고 백성을 보기를 자식처럼 여겼다. 역대 천황은 대대로 그것을 이어받아 어진 정치는 온 천하에 고루 퍼지고, 만민이 서로 이끌며 군주를 공경하고 충성을 다하는 미풍으로 위를 섬기고, 상하가 진심으로 서로 느끼며 군주와 신민이 일체가 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국체의 정화이고, 천지와 함께 영원 무궁히 존재해야 하는 바이다."- P76
우리나라의 신에 대한 숭경은 나라를 시작하신 정신에 바탕을 둔 국민적 신앙으로 서양의 신앙처럼 하늘이나, 천국, 피안, 이념과 같은 인간 세계에서 초월한 신앙이 아니고, 역사적 국민생활에서 나온 섬김의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제사는 지극히 넓은 의의를 가지는 한편, 완전히 국가적이고 현실생활적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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