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탈식민화와 세계 냉전이 별개의 사태가 아니라, 동시에 상호 뒤엉켜 전개된 것으로 접근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탈식민 연구와 냉전연구 상호 간에 소통의 부재는 일종의 지역 편협주의의 산물이다. 냉전연구 내의 탈식민 연구의 공백이 유럽 중심의 편협함을 갖고 있다면, 탈식민 이론 내의 냉전연구의 공백은 또 다른 지역 중심의, 또 다른 성격의 편협함을 갖고 있다. … 지정학적 질서로서의 세계 냉전체제가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질서로서의 ‘냉전 반공체제’는 한국사회에 내재되어 있다. 문제시해야 할 것은 분단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강고한 사회적, 이념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냉전 반공체제’라고 할 수 있다. - P16~17
탈냉전의 바람이 불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섰는데도 냉전과 남북문제, 이념 논쟁에 골몰하고 집착하는 내가 어떨 때는 철지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무려 올해로 8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색깔론은 더 강화되는 것 같고 이념 논쟁은 그치질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그런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최근 한국의 냉전연구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체제의 종식 이후 해외 냉전사 연구의 작업 결과물과 연계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확장된 시선을 보여주는 성과를 낳았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앞선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탈식민화와 냉전에 의한 중층적 복잡성을 따지지 않은채 각각만 연구되었을 따름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냉전’ 자체에 대한 연구가 한국 역사계 내부에서 세계사적 인식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저자의 질문에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 호기심이 인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은 직접 발품을 팔아 책을 읽는 경우보다 어떤 책이나 자료를 읽다가 관련 참고 도서에 언급되어 읽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이 책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 후 냉전 논리가 한국 사회에 고착된 과정과 그 방식에 대해서 다룬다. 우리 사회를 형성한 냉전 담론에 대한 검토를 해보자는 것으로 냉전 담론이 등장한 뒤 확산되고, 그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을 확인해볼 수 있다.
2차 대전에서 민주주의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전후 세계는 민족과 민주주의 시대 열풍이 일었다. 해방 후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좌우 세력은 각자의 방식대로 민족과 민주주의를 담아내기 위해 골몰했다. 이때 좌우파의 이념의 기원은 식민지 시기부터 형성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제는 일찍부터 반소반공에 대한 이미지와 담론을 형성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사회주의의 허구성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925년 치안유지법을 만든 뒤로 소련의 침략성을 강조하는 등 흑색전선을 강화했고 1938년에는 조선방공협회를 설립하며 그 노선을 노골화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라는 기치를 내걸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파는 자유 민주주의, 좌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이라는 명칭을 내걸었다. 또 중도 좌우파 세력은 좌우파와는 결이 다른 민주주의론을 만들려고 했다. 해방 초기에는 우익 세력도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이 부분은 좀 놀랐다!).
어쨌든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은 친소련 국제주의 노선을 지향했다면 우익은 친미 노선을 지향했고, 중도 좌익이나 중도 우익은 모두 연합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중도 좌익은 미군정에 일정 정도 거리두기를 하면서 주체적 입장에 의한 신국가 건설 정치 노선을 표방했다면 중도 우익은 해방에 국제성을 부여하며 민족 운동의 역량이 중요함을 표방했다.
우익의 민주주의는 민족의 독립 없이는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이들은 민족에 방점을 찍었다. 좌익은 조선공산당의 국제 노선에 따라 먼저 민주개혁을 이루어야 독립국가 건설이 가능하다 주장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없이는 독립이 없다는 것이다.
1차 미소 공위의 결과에 따라 연합전선의 힘이 부상하자 우익은 강한 민족주의 정치 노선 연장선상에서 세력균형적 관점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때의 세력균형이란 미국과 서구 중심의 냉전논리로 소련의 팽창을 방어한다는 기조에 의한 것이었다. 좌익은 민주주의 개혁을 위해서는 파시즘 잔재와 금융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한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을 제거한 뒤 노동자 계급의 인민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초기 냉전 개념의 남한 사회로의 수용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초기에 그것이 당대인들의 세계에 대한 기정사실이나 고착화된 인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후 냉전의 사태는 협조와 평화노선에 대한 반대이자, “백열전쟁”이나 “사격전쟁”과 대비해서 전후 미소의 세력경쟁 양상을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당대인들에게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면서도, 때론 격렬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불안하고 유동적인 현실로 이해되었다. 때문에 타협과 조정에 기초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개입방식이 모색되었고, 양분된 세계의 추이를 둘러싼 여러 예측과 전망이 제시되었다. 남한 사회 역시 이러한 냉전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공유했다. - P210
2차 미소 공위의 협상에 차질이 생기고 트루먼 독트린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대외 정책이 발표되자 이승만과 한민당 세력 중심 세력은 단정 노선을 명확히 하게 된다. 반면 좌익은 2차 미소 공위가 결렬되고 유엔 총회에서 남북 총선거안이 가결되자 미국을 비판한다.
이승만 정부는 냉전 담론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 작업을 시작한다. 정부의 시책이나 활동, 내외 정세를 국민에게 선전하고 교양하기 위해 주보를 발행함으로써 냉전적 시각을 주입시키고 확산시켰다. 국가 보안법을 만들어 공산주의를 박멸하고 적색 분자를 퇴출하고자 했다. 남한 신문 보도의 인식도 이분법적 구도로 변화한다. 이런 작업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 우파 내 세력들(중도 우파 소장파)은 해당 노선에서 탈피한다(냉전 후에도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 시각 견지).
존립의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여순, 제주 4.3 사건 등) 한국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의 내재된 불안감이 폭발했다. 정부는 어떻게든 전시를 이용해 남한 체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사회 전반에 강제, 동원을 바탕으로 국민 국가를 만드는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실현적 장이 되었으며 정부는 개인을 국민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었다. 전방에서는 군인의 희생을 강요했다면 후방 주민에게는 자발적으로 전시 체제에 참여하도록 만들면서 그래야 국민의 일원이 된다는 식으로 강요했다. 이는 이승만 정부의 눈에 의하면 국민 주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할 수 있겠다. 이승만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이런 사상전을 벌인 것에는 피난을 간 부산에서까지 국민사상지도원을 설립하고 ‘사상’을 발행하며 전시 동원을 독려하고 선전 활동에 주력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전몰자 뿐 아니라 상이군을 애국자로 추앙하면서 지배 권력과 통치를 강화했다. 상이군을 위해 수용보호시설인 정양원을 설립하고 학비를 지원했으며 직장 알선 등을 제공하기까지 했다는데, 정작 전쟁으로 주민 대부분이 전재민이거나 군경원호대상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졌다. 상이군인과 그 가족의 상황은 이로 인해 더 악화되고 사회적 냉대만 커지는 악순환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남한 사회를 냉전 체제로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승만의 지배 안정화를 꾀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승만 정부는 전시 때 무능하고 부패하여 정치적으로 비판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칼날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1949년 무렵이 되면 이미 좌익의 기반이 거의 소멸된 남한에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한 냉전 민주주의는 비판 세력에게도 저항할 수 없는 기치가 되었다(는 것이 아쉽다). 4.19 때 이승만이 내려왔다지만 이후에도 냉전의 논리가 지속된 데는 이런 기원이 있었다 할 수 있겠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체제 내 비판세력이 주장했던 ‘자유민주주의론’은 ‘반공’에 긴박된 냉전적 민주주의였고 저항 역시 ‘반공’에 포섭된 저항이었다. 때문에 체제 내 비판세력은 ‘반공’에 기초한 이승만 정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었고 실제 1960년 4.19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는 가운데 붕괴시킬 수 있었지만, ‘반공’과 그것에 밀착된 ‘냉전적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논리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결과 ‘반공’과 ‘냉전적 자유 민주주의’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운데 한국 사회에 체제화되어갔다. -P380
이 책을 통해서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남한 정치 세력의 투쟁 양상을 확인하며 냉전 반공론이 자리잡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그저 미소와 서구 냉전 논리에 의한 입김에 그저 끌려간 것이 아니라 적극성을 띠며 정치 논리를 만들고 내재화시켰다. 다만 이 책에는 남한 기층 대중에 대한 투쟁 양상은 드러나 있지 않는다. 내용의 초점이 남한 정치 세력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임을 감안해야겠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