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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시칠리아, 사르데냐, 크레타 다음으로 큰 섬이다. 그러나 당시의 전략적 경제적인 가치에서 보면 시칠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섬이었다. 리처드는 불과 닷새 만에 이 키프로스 섬을 정복했다. 리처드와 궁지에 몰린 자칭 황제 두카스의 강화를 중개한 이는 병원 기사단 단장이었다. 두카스의 항복은 원만하게 정리되었다.
자칭 황제는 섬 중앙에 있는 니코시아 성으로 물러났고, 키프로스 섬의 영유권과 통치권은 영국 왕에게 귀속되었다. 또한 이후 키프로스는 배상으로 배 50척과 금화 3천5백 닢을, 중근동에서 이슬람 세력과싸우고 있는 그리스도교군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P87
리처드에 의해, 키프로스는 이제까지처럼 그리스정교파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가톨릭파 그리스도교도측으로 확실히 들어오게된 것이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사회에 이 사실의 중요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훗날 섬의 통치자가 뤼지냥 왕가에 이어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바뀐 뒤에도, 1570년까지 380년 동안 줄곧 키프로스가 가톨릭이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P88
아코의 전장에 도착한 뒤 한동안 리처드는 선두에 서서 적진 깊숙이쳐들어가는 식의 전투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지휘계통을 일원화하고그것을 기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의 저널리스트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뉴스를 쫓는 성향이강한 중세 연대기 작가의 글에는 그다지 많은 내용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다른 누구보다 늦게 전장에 도착한 리처드가 실시한 것은 다름아닌 이런 일들이었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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