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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1장

카노사 성은 이탈리아 중부에 광대한 영지를 갖고 있으며 개혁파의지지자로 알려진 마틸데 백작부인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그 성안, 큼직한 난로에서 불이 기세 좋게 타오르는 따뜻한 거실에서 승리감을만끽하는 쉰일곱 살의 교황. 한편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내려다보는가운데, 눈 속에 홀로 서 있는 스물일곱 살의 황제.
‘카노사의 굴욕‘은 서유럽 전역의 그리스도교도에게 교황의 권위와권력을 일깨운 일대 사건이 되었다. 파문은 풀렸으나 교황의 완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P15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어제까지 도적이었던 자가 그리스도 전사가 되고, 형제나 친지와 다투던 자가 이교도와의 정당한 싸움터에서 그 분노와 원한을 풀 날이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푼돈을 받고 하찮은 일을 하며 세월을 보내던자도, 이제부터는 신이 바라시는 사업에 참가하여 영원한 보수를 받게될 것이다."- P24
그 시대의 공작, 후작, 백작, 남작이란, 자기 힘으로 획득하고 자기힘으로 유지하는 영지의 주인이고, 그것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군사력으로, 핏줄로 이어진 일족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였다.
역사에서는 ‘귀족‘이라고 쓰지만 실상은 ‘호족‘이자 ‘부족‘이며, 스코틀랜드로 치면 ‘일가‘라는 뜻의 ‘클랜(Clan)‘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그들 모두 유래가 있는 문장(章)을 가지고, 행군할 때는 그것을그려넣은 깃발을 앞세웠으며, 전장에서는 그 각양각색의 깃발 아래 분- P50
투하게 된다.
교황 우르바누스가 십자군 전사는 누구나 가슴이나 등에 붉은 십자를 달라고 한 것도, 가지각색의 표시를 방치하게 되면 십자군으로서의통일성을 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 문장들을 모두 없애는 것도 비현실적이니 최소한 붉은 십자 표시로 통일성을 기하자는 의도도 있었다. 군웅할거 시대에 이러한 ‘영웅‘들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내보내는것은, 서유럽 그리스도교도의 최고 우두머리이기도 한 로마 교황에게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작이나 백작으로 호칭되지만 실상은 ‘클랜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십자군 원정이라는 모험에 나서겠다고 결정한이상 일족 무리는 그에 따라야 했다. 이것이 당시 남자들에게는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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